餘談/음악의 세계

음악의 시대성 혹은 역사성

펜과잉크 2008. 3. 4. 21:19


첨부파일 월남에서돌아온김상사.wma


 




대중들에게 인기를 누린 곡을 듣노라면 그 안에 시대성과 역사성이 공존해있는 경우를 흔히 본다. 당장 떠오르는 팝송으로 페티 페이지의「I went to your wedding」이 있다. 이 곡은 1950년대 초 한국전의 비극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신의 결혼식에 갔었지요’라는 뜻이 한국전에 참전한 미군 병사의 사랑의 상처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병사가 고국으로 돌아가 사랑하는 연인을 찾았을 때 그 연인은 애인이 전장에서 죽은 줄 알고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된다는 사연을 담고 있다. 아마 그녀는 부모의 강요에 못 이겨 다른 남자와 결혼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영웅주의에 물든 미국식 정서대로 진실을 왜곡시켜 풀이한 것이고 실제 사연은 다음과 같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결혼을 약속한 사이였다. 불행의 씨앗은 청년이 한국전에 참전하면서 시작된다. 미 공군으로 한국전에 참전한 청년은 원산만 공격 때 다리 한 쪽을 절단하는 부상을 입는다. 청년은 한국의 야전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미국에 있는 애인에게 모든 사실을 알린다. 청년의 편지를 받은 애인과 그녀의 부모는 큰 충격과 함께 눈물을 흘린다. 부모는 옛 언약을 운명으로 받아들여 딸에게 청년과 결혼하라 이르지만 딸은 다리 한 쪽 없는 남자와는 살 수 없다면서 부모의 뜻을 거역하고 다른 남자와 결혼하게 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청년이 목발에 몸을 의지한 채 절뚝거리며 결혼식장을 찾게 되는데 그 사연을 담은 곡이 바로「I went to your wedding」인 것이다.


가사를 보면 ‘너를 잊어야 한다 하면서도 나는 너의 결혼식장에 갔다. 꿈이 깨어졌다는 듯이 오르간소리가 내 가슴을 울렸다. 너의 꿈, 너의 꿈은 옳았다’라고 나온다. 옛 연인이 목발을 짚고 와 있는 줄도 모른 채 웃음 띤 얼굴로 입장하는 신부…. 주인공은 사랑하는 연인의 모습에 눈물지으며 ‘안녕’ ‘안녕’을 되뇐다. 가사는 다음으로 넘어간다. ‘your mother was crying/ your father was crying/ And I was crying, too'라고…. ‘당신의 어머니가 울고, 당신의 아버지가 울고, 그리고 나 역시 울고…. ‘because we were losing you' 왜냐하면 우리는 당신을 잃었으니까.


은방울자매의「마포종점」을 들어보면 ‘밤 깊은 마포종점’은 ‘갈 곳 없는 밤 전차’의 종점(終點)이다. 마포의 전차종점에서는 ‘강 건너 영등포’가 보이고, ‘여의도 비행장’과 ‘당인리 발전소’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그 곡이 유행하던 때가 언제였나? 내 기억엔 초등학교 1학년이던 1968년도 경 아닐까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 시절, 집집마다 기둥에 붙은 스피커에서 이 노래가 이틀이 멀다하고 나왔고, 그런 현상은 가령 깊은 산골 처녀들의 허파에도 바람이 들어 산 너머 어떤 처녀들은 우리 마을 뒷산봉우리에 올라 몇 시간 씩 노래 연습을 하곤 했다. 끊길 듯 들려오던 고운 음색의 노랫소리…. 들판에서 일하다가 깨금발로 올려다보는 산봉우리엔 꽃 같은 처녀 둘이 다정히 손을 잡고「섬마을 선생님」「동백아가씨」「여자의 一生」같은 가락을 꾀꼬리마냥 뽑아댔다.


밭을 매는 어른들의 화제로도 적절했다.

“소리 좋고….”

“후제 가수로 대성 헐 처녀들이여.”

“엊그제 검산골 고랑서 가재 잡던 처녀들 같네유.”

“검산골 갔었어?”

“소 접 붙이러 가면서 봤유.”

“오른쪽이는 김가 네 셋째 딸이란 말이 있더먼. 저 처녀가 선 본 것만 50회가 넘을 거라. 원래부텀 이뻤댜. 남동생도 깎아놓은 밤처럼 단정히 허고 다니더먼.”

“지 엄니는 호박인디….” 


당시 유행했던「동백아가씨」「여자의 一生」은 파월(派越)의 정서가 남녀의 애환으로 이어진 곡이기도 하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기다림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라는 부분이 전선의 임을 그리는 여인의 한(恨)을 대신하고,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하고’ 사는 설움이 막연히 ‘여성의 팔자’에 그치지 않고 사랑하면서 겪게 되는 시련과 애증, 번민, 운명 같은 것들을 포함하고 있다. 


김추자의「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는 어떨까? 템포가 언뜻 개선행진곡처럼 들리는 이 곡은 신중현이란 악성(樂聖)에 의해 빚어져 마치 대국민 계몽곡 같은 냄새가 풍긴다. 몇 년 전 스포츠 일간지에 연재된 바 있는 신중현의 자전(自傳)에서 자신은 정권의 협박에도 국민 계몽곡을 짓지 않았다 했지만 개선장군의 발걸음을 연상시키는 전주(前奏)의 드럼마치는 단순히 유행가의 범위를 넘어 다양한 방면으로 상상력을 유도한다. 뭐, 국가시책에 부응한 곡이면 어떠냐? ‘삐딱일변도’의 뿔각 자세가 좋은 게 아니니….  


「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는 60년대의 시대성과 역사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 청취자들은 라디오를 통해 노래를 들었고, 톤이 높고 강렬한 김추자의 정열적인 이미지에 어울려 젊은층의 호응이 높았다. 노랫말의 김 상사는 원래 ‘김 총각’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말썽 많은 김 총각’이라 불렀다. 하지만 그는 이제 ‘이기고 돌아온 김 상사’로 미화되어 있다. ‘의젓하게 훈장 달고 돌아온 김 상사’ 아닌가. 미국의 요청과 통수권자의 결단으로 이루어진 월남 파병은 많은 전투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지만 반대로 사상자 또한 속출하는 상황이었다. ‘군인과 여자’ 혹은 ‘전쟁과 여성’을 따로 논하기 어렵듯이 국군의 사기문제는 어쩌면 지휘부의 큰 고민거리였을지도 모른다. 흔히 연예인들의 군부대 위문공연은 바로 이러한 사기앙양책의 일환에서 이루어진다. 미국의 섹스 심벌로 존 에프 케네디와의 염문설이 나돈 마린 먼로가 6.25 전쟁 중 피아간 격전지 양구 펀치볼까지 날아와 공연을 갖은 것도 유사한 계략에서 비롯된 조치이다.  


아까 ‘군인과 여자’ ‘전쟁과 여성’ 문제를 얘기했는데 세계 전쟁사를 보면 적지를 탈환한 병사들은 여성을 강간하는 일이 많았다. 어느 작가는 임진왜란 중의 ‘동래’(釜山市) 지명을 묘사함에 있어 야산에서 목을 매어 죽은 여인들의 사체가 즐비했다 한다. 해적이나 다름없는 왜구들은 육지에 오르자마자 성욕(性慾)부터 채우려 발악을 떨었고 어린아이든 노인이든 가리지 않았다. 보스니아 내전에서도 ‘인종청소’란 말이 나올 정도로 상대 민족을 탄압했는바 여기서도 여성에 대한 반인륜적 범죄가 여러 라인으로 국제사회에 고발됐다. *‘발트해로 쳐들어가 콱 거머쥐고, 북극해로 쳐들어가 확 잡아먹고….’


반대로 동남아전쟁 중의 일본 상황처럼 국내에서 문제가 곪아 터진 예도 있다. 남편을 전장으로 떠나보낸 여인이 외로움을 참지 못하고 외간남자를 집안으로 끌어들여 간통을 저지르는 것이다. 이런 사례들은 전장의 군인들에게 심각한 사기 저하를 가져왔다. 결국 간통죄가 없는 일본 정부가 고민 끝에 주거에 대한 부부의 권리를 각 50%로 따져 남편의 허락 없이 주거에 침입(?)한 배우의 상간자(相姦者)를 주거침입죄로 처벌했던 것이다.


아무튼「월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는 김추자의 미니스커트만큼이나 독보적인 음률로 히트의 반열에 오른다. 전주 및 간주에 참여하는 악기는 군대 행진곡에서 빼놓을 수 없는 타악기 드럼으로 그 효과를 충분히 가미하여 곡의 특성을 극대화시켰다. 요즘 디지털 음악에선 듣기 어려운 아날로그의 생생한 선율도 이 곡이 갖고 있는 시대성이요 역사성이 틀림없다.

    

곡을 감상하노라면 정글의 나라 베트남에서 숨져간 수많은 영혼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서 *마당 수돗가에 앉아 월남 중위의 편지를 읽던 큰 누님의 젖은 눈빛이 교차된다. 어쩌면 시대가 낳은 비극적 산물이지만 그들의 희생으로 우리네 질적인 삶이 앞당겨진 건 아닐까 믿는 바이다.





* 인용 : 김지하 『南』

 * 필자의 고향은 1970년부터 전(全) 가구가 상수도 혜택을 받음  


 

 


2008. 03. 04   仁川文協  류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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