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Pen 혹은 文學

시집 <바다에 남겨 놓은 것들>의 '면회'에 관한 소회

펜과잉크 2012. 2. 19. 12:58

 

 





문학 도서에서, 특히 시집이 기억에 남는 건 시라는 장르가 읽을 때마다 매번 그 느낌이나 울림이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젊은시절 전혜린(故)의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를 한 번 이상 읽지 않은 분은 없을 거예요. 개인적으로 영화 <닥터 지바고>를 일곱번 넘게 보고도 지금도 어느 장면을 떠올리면 그토록 간절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며 윤동주의 <序詩>를 수없이 떠올리잖습니까? 저는 최민식이 음악 선생님으로 분한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도 그렇게 애뜻할 수가 없더군요. 


집에서 일요일 오전을 보내면서 연수원에서 받은 박경순 선생님 시집을 펼쳤습니다. 천천히 다시 읽은 거지요. 시집은 연거푸 세 번을 읽어도 지루하지가 않습니다. 처음 읽을 때 느끼지 못했던 특별한 감흥으로 다가오는 시어가 있는가 하면 단순히 상징적으로만 해석되다가 좀 더 밀도있게 다가오는 문장도 있습니다. 그래 읽을 때마다 맛이 다릅니다.


저는 박경순 선생님 부군과도 아는 사이입니다. 통화도 여러번 오갔구요. 문협 행사에 그 분이 참석하실 때마다 함께 각별히 인사를 나누는 건 이런 구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집의 말미에 실린 <면회>에서 박경순 선생님이 어린아이 손을 잡고 인천문협 행사에 왔던 기억이 되짚어졌습니다. 그때의 '어린아이'가 오늘날 현역 일병의 아드님이 아닌가 싶네요. 추정컨대 <면회>가 시집 말미에 실린 점으로 미루어 창작 시점이 아마도 작년 늦은가을로 보입니다. 




    이제 

    떠나갈 시간

    알려주는 

    저 찬란한 예고豫告


    단풍은

    내 가슴보다도 붉었다


    손톱 끝

    새까맣게 때 낀 것을 

    애써 감추려 하는

    일병 아들은 

    헤어진 여자친구

    이야기를 감히 꺼내지 못하게 했다


    밤새 

    동초를 서며 

    얼마나 가슴 쓰려했을까

 

    면회 마치고

    돌아오는

    양평엔

    준비도 없는 첫눈이

    내렸다

                                                                              <면회> 全文




'단풍은 / 내 가슴보다도 / 붉었다'

'아들'은 일병 계급장을 달고 밤새 동초[動哨 : 일정한 구역을 왔다갔다하면서 망을 보는 일]을 서기도 합니다. 아드님이 복무하는 양평을 떠올리니 '5사단'과 '열쇠부대' 같은 용어들이 생각나네요. 용문사 입구에서 대형 한정식당을 운영하는 친구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과거 경기도의 연천 포천(연포천)과 청평 가평(청가평) 지역은 공무원과 군인들의 기피지역이었습니다. 동두천과 양평도 다르지 않았지요. 겨울이면 춥고 눈이 많이 내리기로 유명합니다. 서울과의 연계도 불분명해서 -서울로 진입하기까지의 노선 등- 편리함을 꿈꾸는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어떻게 변했습니까? 과거의 기피지역이 선호지역으로 바뀌었습니다. 공기 맑은 데에서 근무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 좋은 거지요. 양평 용문사 입구에서 한정식당을 운영하는 친구도 주말이면 대기표를 나눠줄 정도랍니다. 그만큼 찾는 사람이 많다는 뜻입니다. 지역마다 고속도로와 연계되어 서울이든 부산이든 마음만 먹으면 당일로 가능한 세상이 됐습니다. 


'밤새 / 동초를 서며 / 얼마나 가슴 쓰려했을까'

자식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사랑이 가득 담겨있습니다. 저는 또 이 부분에서 그 옛날 강원도 양구까지 이틀 걸려 면회를 오셨던 부모님 생각이 나더군요. 충남 부여군 은산면 산골 마을에서 4킬로를 걸어나오셔서 면소재지 버스 정류장에서 부여행 버스를 타시고, 다시 부여 금남여객터미널에서 용산시외버스터미널까지, 용산역에서 동마장버스터미널까지, 동마장버스터미널에서 금강여객시외버스로 양구까지, 양구에서 목적지인 남면 구암리까지 - 구암리 : 당시의 복무지. 훗날 설악산으로 차출되어 특수훈련 수료 후 미시령으로 이동하여 잔기복무함- 이틀 걸려 오셨습니다. 동마장버스터미널에서 양구까지 시외버스로 네시간 삼십분 가량 소요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날 밤, 어머니는 보따리에 싸오신 암탉의 살점을 뜯어주시고 검붉은 탕약(湯藥)을 가득 따라 주셨지요. 

'인삼과 대추... 좋다는 걸 모아 끓였는데 오는동안 변하지 않았나 모르겠구나.'

그 날의 말씀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이튿날, 부모님을 배웅해드리고 부대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느라 홀로 다방 창가에 앉았을 때에도 눈이 내렸지요. 간헐적으로 뿌리는 눈발속으로 부모님 타신 버스가 사라진 후 가슴은 휑하니 비어있었습니다. 그 때 아버지가 입으셨던 검은 가죽잠바와 어머니의 베이지색 양장외투가 지금도 눈에 선히 밟히곤 합니다. 


<면회>의 3연에서 '...아들은 / 헤어진 여자친구 / 이야기를 감히 꺼내지 못하게 했다'라고 술회합니다. 안타깝지만 청춘 남녀의 이별은 남자의 군 입대로 결정될 때가 많습니다. 제한된 환경에 얽매인 남자는 마음으로만 그리워하며 애태웁니다. 여자는 남자의 현실을 백프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일단 여자는 꾸준히 참고 기다리는 인내에 한계가 있습니다. 기다림엔 의지가 수반되는데 미래의 불확실성과 정체성의 혼돈으로 의지가 꺾이게 되지요. 그렇게 되어 '고무신을 거꾸로 신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상병이나 병장이 될 때까지 올곧이 한 여성과 교제하는 장병은 흔치 않습니다. 거의 떠나갑니다. 어느덧 그의 관물대 액자엔 사랑하는 연인의 사진이 사라지고 지극히 인간적이고 평범한 가족사진이나 하이틴 배우 '임예진'의 얼굴로 대체되기도 합니다. 


'면회 마치고 / 돌아오는 / 양평엔/ 준비도 없는 첫눈이 / 내렸다'

시는 그렇게 끝나고 있습니다. 단풍의 계절, 아들의 면회를 마치고 오는 길에 첫눈이 내리는 것입니다. 시를 읽고, 그녀가 인천으로 갔을까 동해로 갔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어디로 향했던 가슴엔 차마 떨칠 수 없는 그리움으로 가득했으리라 믿습니다. 지금 이 순간, 동해의 망망바다에서 함정을 지휘하고 있을지도 모를 그녀, 한가한 일요일 정오를 함장실에서 '전국노래자랑'을 시청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가누가 더 크나 / 소금쟁이 지나간 자리 / 내 물수제비 지나간 자리 / 초록빛 여름'의 옛시절을 회상하며 바다 끝 육지를 그리워할지도... 


<출항1> 혹은 <입항1> 등 연작시 31편을 포함한 총66편의 작품에 갈매기가 두 번만 등장하는 것도 시집 <바다에 남겨놓은 것들>의 특별함이라 하겠습니다. 아주 특별한 감상의 기회를 누릴 수 있는 시집이었습니다. 





* 박경순

   1962년 인천 출생. 인하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졸업. 1991년 <詩와 意識>으로 등단. <한국수필> 신인상, <인천예총 예술상> 등 수상. <인천문인협회> <현대시인협회> 회원. <내항> 동인으로 활동. 시집 <새는 앉아 또 하나의 詩를 쓰고>1997. <이제 창문 내는 일만 남았다>2002. <바다에 남겨놓은 것들>2012. 현재 동해해양경찰청 근무(경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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