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살면 지금보다 마음의 여유을 누릴 기회가 많으리라.
그 옛날, 백석이 최정희에게 보냈다는 달개비꽃 잉크로 긴 편지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최정희가 김동환과 결혼하기 이전의 일이 아닐까 싶다.
오디즙은 어떨까?
무심히 입고 출근한 남방셔쓰에서 고향집에 머물며 묻은 오디물을 본 기억이 있다.
버찌도 괜찮을 것이다.
펜촉에 한방울 '콕' 묻혀 하얀 지면에 대고 사각사각 쓰면 평화가 따로 없을 것 같다.
아아, 나는 언제 고향으로 돌아가
반딧불이 지천의 유월에 달개비꽃 잉크로 시(詩)를 쓸까?
산뽕나무 잎에 밤이슬 타닥타닥 듣는 밤,
염주비둘기(山鳩) 사는 숲 변두리에 붙은 집의 방 한 칸...
서색(鼠色) 하늘에 별은 산창(山窓)에 벌고 무심중(無心中) 밤꽃 향기 알싸하리라.
언젠가
인천문협 사무실에 다녀오다가 수봉공원 언덕에 핀 달개비꽃을 보았다.
문득 백석 시인의 청년 시절 일화가 떠올라
나도 한 번 달개비꽃물로 글을 써 봐야겠다는 발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풀섶을 뒤져 꽃을 찾기 시작했다.
꽃잎은 보라색보다는 연청색에 가까웠다.
잉크로 말하면 로얄블루쪽이었다.
꽃잎을 조심스레 따서 준비해간 편지 봉투에 담았다.
*수봉공원 언덕의 달개비꽃
시간이 없어 꽃을 충분히 따지 못했다. 하지만 저것도 한 시간 가까이 딴 것이다. 무척 속도가 느린 작업이었다.
* 꽃이피리 분류
접시에 미지근한 물을 조금 따라 달개비꽃을 담궜다. 금세 꽃잎에서 푸른 물이 배어나왔다. 빈 잉크병을 깨끗이 닦아 즙을 걸러 받을 준비를 했다.
* 달개비꽃물
거름종이 대신 명주천을 이용했다. 잉크병 위에 잘 설치해놓고 접시의 물을 따르니 확 번졌다. 하지만 대부분은 잉크병 아래로 걸러 떨었졌다.
* 꽃물을 걸러내는 작업
* 달개비꽃물 잉크
자, 이제 글을 쓰는 것이다. 순간 묘한 흥분이 일었다. 어떤 색일까? 펜으로 찍어 종이에 놀리자 푸른 잉크 글씨가 써지는 것이었다. 글씨 색깔은 로얄블루보다 블루블랙에 가까웠다.
* 달개비꽃물 잉크 글씨.
물과 희석해서인지 점도가 약하게 나왔다.
달개비꽃보다는 버찌가 짙은 색을 보여주지 않을까 싶다. 버찌가 익으면 한 번 시도해볼 계획이다.
순수한 꽃물만으로 글을 쓰면 얼마든지 잉크와 다름없는 효과를 거두리라 기대되는 달개비꽃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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