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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사는 법

펜과잉크 2005. 5. 31. 14:12
1. 제목이 거창해보이지만 내용은 평범하거나 유치한 글일 수 있음을 미리 고지합니다. 점심 식사를 하고 사무실로 돌아와 커피 한 잔 하면서 쓰는 글입니다. 중간에 호출이나 용무가 생기면 자리를 떴다가 올 수 있으니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어린시절을 회상하면 비위가 아주 약했습니다. 비오는 날, 동물의 배설물이 쌓인 퇴비장엔 근처도 가지 않았습니다. 가령 동네 한길에 소의 배설물이 보이면 눈을 지그시 감고 시야를 흐리게 하여 지나치곤 했습니다. 똥을 보기 싫어서였습니다. 코를 꼬옥 막는 것도 잊지 않았지요. 사실 전 농삿일에 익숙하지만 발을 걷고 첨벙거리는 물논에 들어가 일을 해본 건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물속에 무엇이 있을지 몰라 한참을 망설였고, 설령 모를 심거나 때우고 온 날은 마당 수돗가에 앉아 못쓰는 칫솔로 손톱 틈에 낀 미세한 불순물을 씻어내느라 용을 썼습니다. 그런 일로 어머님께 지청구도 많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오후엔 다시 일을 해야 할 것을 그 정도까지 씻느냐는 거였지요. 하지만 제 입장에선 손톱 틈에 이물질이 있는 상태로는 밥도 편히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시골 머슴아치곤 아주 깔끔했습니다. 지나치게 깔끔을 떨었어요. 여름에도 반바지를 입고 외출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풀섶에 들어갈 경우 모기나 해충에 물릴 것을 우려했던 때문이지요. 정말 깔끔하게 살았던 것 같아요.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혼자 교복을 다려 입었습니다. 어머님이 다려주신 걸 2-3일 입고 나서 밤에 몰래 숯불다리미를 만들어 다시 주름을 잡았습니다. 그래서 엘리트사 교복은 언제나 다리미질 광택으로 반들반들했어요. 깔끔을 떠는 남학생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여학생도 많았던 것 같네요. 2. 어디까지나 제 경우에 해당되는 얘기입니다. 제 입장에서 삶을 살면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돈이 경조사비입니다. 정말 무시못할 액수입니다. 오늘도 두 군데에 조문을 가야 합니다. 한 집은 3만원을 넣었고, 한 집은 5만원을 넣었습니다. 지난 주말엔 13만원을 경조사비로 썼습니다. 불과 며칠만에 21만원을 쓰는 셈입니다. 한 달 평균 수 십만원의 돈이 이런 식으로 유출이 됩니다. 별 얘기를 다 한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소릴 하면 누군가 '쪼잔한 사람'이라고 흉을 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제 입장에서 한 달 수 십만원이란 경조사비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닙니다. 특히 마땅히 돈을 쓸 게 없는 저로선 더욱 그렇습니다. 지갑도 없이 바지 뒷주머니에 10만원을 반으로 접어 넣어가지고 다니면 아주 오래 갑니다. 담배를 사는 것도 아니고, 술을 마시는 것도 아니고, 누구를 만나 차를 마실 일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근무중 식사도 직원들과 함께 하니 개인 돈이 들어갈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경조사비는 다릅니다. 요즘은 봉투에 2만원을 못 넣겠습니다. 낯이 뜨거워져요. 최소한 3만원을 넣어야 도리를 한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저만 그러는 게 아니라 직원들 대부분이 비슷합니다. 문제가 횟수가 잦다는 데에 있습니다. 결혼이나 상가(喪家)야 당연한 노릇이지만, 아이의 백일, 돐(돌)은 물론 장인의 칠순과 장모의 팔순까지 청첩장을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이의 백일 안내문을 직장 벽보판에 붙이는 세상이니 덩달이 장모의 팔순 잔치 안내장을 붙이는 직원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각별한 사이에 무시할 수도 없습니다. 무시하면 나중에 눈이 마주칠 때 죄를 지은 것처럼 미안해요. 사회생활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전 퇴근 후의 일로 인하여 용돈벌이쯤은 하는 형편입니다. 아내도 벌이를 하는 몸이구요. 그럼에도 청첩장과 부고장에 짜증이 날 때가 있습니다. "돈도 없는데 왜 자꾸 결혼을 하지? 죽을 때도 꼭 돈 없을 때만 골라 죽어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게 돼요. 3. 인터넷에서 황우석 교수 생가를 복원한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이미 많은 외지인들이 황 교수 생가를 찾는다고 합니다. 부모님과의 통화에서도 확인된 부분입니다. 식당 같은 곳이 호재를 부르고 있다고 하더군요. 황 교수 고향을 가보신 분이라면 천혜의 아름다운 시골 풍경에 놀랄 것입니다. 마을이 온통 숲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숲은 가파른 산세를 짙은 신록으로 우거져 있습니다. 쭉쭉 뻗은 나무마다 아름드리 밑둥으로 치솟아 있습니다. 마을 건너편 산중턱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거리- 을 가만히 보면 빽빽한 수림으로 길이 나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길이 바로 제가 고향에 갈 적마다 혼자 차를 몰고 오프로드를 즐기는 '폴란드의 숲길'입니다. 오래 전에 만들어진 산악도로는 산불 예방용으로 건설되었다고 합니다. 오래된 길엔 이끼낀 습지가 있고, 그늘에 가려져 낙엽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음지도 있습니다. 그 숲엔 별의 별 짐승들이 다 삽니다. 호랑이 사자 원숭이 기린 같은 것들만 보이지 않을 뿐, 노루 고라니 멧돼지 오소리 너구리 살쾡이(야생고양이) 족제비 토끼 청설모 다람쥐 독사 살모사 꿩 산비둘기 참새 맵새 같은 것들의 터전입니다. 조금만 숲으로 들어가도 노루와 고라니가 다니는 길이 나 있습니다. 외지인들이 드나들면 고향의 모습도 차츰 변해갈 것입니다. 이미 부여군에선 황 교수 생가 주변을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산교육장으로 가꿔나갈 방침이라고 발표했습니다. '황 교수 생가 주변'이란 결국 빽빽히 우거진 숲을 뜻하는 것입니다. 한편 안타까운 마음이 입니다. 외지인들을 불러 뭘 얻겠다는 것인지... 종극엔 잃는 게 많을 것입니다. 오래도록 전해 내려온 고향의 모습들이 변질되지 않을까, 저는 참으로 걱정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