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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준에 대하여

펜과잉크 2005. 6. 3. 11:29

 

'존경'이라는 말을 남발하고 싶지 않지만 각별한 마음으로 생각하는 분 중 '정세훈 시인' -이하 '정세훈 형님'으로 표기함- 이 있습니다. 충남 홍성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20년 가까이 공장 노동자로 전전해온 분이십니다. 공장살이를 그만 둔 이후 다년간 종교 신문사 편집부장으로 근무하셨지요.

 

한때는 <부평문학>지(誌)에 작품을 게재하기도 하셨습니다. <부평문학>지엔 이숙, 변해명 선생님 글이 실리기도 했지요. 최근 지병이 있다고 들었는데 어떠신지 궁금하네요. 전화를 드리면 참 좋아하셨는데... 정세훈 형님의 시(詩) <수준 차이>가 생각납니다. 학교에서 온 아이가 잘 사는 급우들 얘기를 하는 걸 듣고 쓰신 작품이라고 합니다.

 

훗날 그 '아이'가 공익요원이 되어 인천지하철공사인가 하는 데서 근무한다고 들었는데, 무사히 마쳤는지에 대해서도 궁금한 마음이 이네요. 형님의 작품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수준 차이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저희 직장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창 교육이 많을 땐 부평과 충주 학교에서 몇 주(週)씩 합숙을 하기도 했는데 이 경우 '수준 차이'를 절실히 경험했습니다. 대체적으로 이 직장의 수준은 대도시이냐 소도시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서울특별시 이하 7개 광역시 근무자들은 대개 표시가 납니다. 어딘가 달라요. 업무에 채여 사는 사람들이지만 급박한 환경에 길들여진 눈매라든가 화술은 '반짝거린다'는 표현이 부족하지 않습니다. 눈치도 빨라요. 용모도 단정합니다. 면도를 비롯한 위생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사람들이 깨끗해요. 시골에서 올라온 직원들은 개선할 점이 많다고 봅니다.

 

한번은 경북 영주에서 온 직원이랑 합숙을 하게 됐는데 -대개 1실(室)의 내무반에 20명 정도 숙식- 한마디로 수준 차이가 나더군요. 머리를 기르는 게 무슨 멋이라고 목덜미까지 덮은 모발이 돼지털마냥 무성하고, 정복은 바래어 꼭 개간하다가 온 사람과 같았습니다. 이해가 어려우면 가끔 TV에서 보여주는 시베리아 벌목장의 북한 노동자를 연상하십시오. 대도시 직원들은 교육을 자청해서 오는 경우가 많은데 시골에 있는 직원들은 떠밀려 왔다면서 투덜대는 것이었습니다. 어지간한 시골에선 컴퓨터 자판 두들길 일도 없다고 해요. 그러니 수준 차이가 느껴지는 것입니다.

 

부평에서 2주 합숙을 할 땐 지방에서 온 직원들이 '인천에 계신 분이 한 턱 쏘라'고 해서 주안으로 안내하여 진짜 한 턱 멋있게 냈습니다. 제가 돈을 쓸 땐 겁이 없거든요. 2차로 <나사나이트클럽>에 가서 테이블이 무너지라고 주문해놓고 마시는데, 입체적으로 동작하는 무대 시설을 보곤 입이 떠억 벌어지는 직원도 있었습니다. 서울특별시 서초나 강남에서 온 직원들이야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습니다만...

 

요점은 이렇습니다. 제발 '노가다 순사'라는 말은 듣지 말자는 것이지요. 까만 정복에 막걸리 자국 묻히고 자전거 페달이나 밟으며 세월아 네월아 사는 사람들은 문제가 많다고 봐요. 눈이 멀면 마음이 멀다고, 마음이 나태해지면 몸도 게을러서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습니다.

 

"어이, 유 사장님, 모는 얼추 심으셨남유?"

"으하하, 강 순경님 나오셨유?"

"야~, 슬슬 나와봤는디, 나올 적이는 날이 꾸물거리더니 다리 지나면서부텀 꽤 더워쌌네유."

"자전거 겄다가 받쳐놓구 얼릉 일루 건너 오셔유. 막걸리 한 잔 드시고 담배나 몇 대 굽고 가셔유. 지가 강 순경님 오실 줄 믿구 물꼬 웅덩이에다 막걸리 주전자 담가놓구서 대기혔다는 거 아녀유. 돌멩이로 꾹 눌러 놨으니께 지금쯤 오장이 시원해지겄지유?"

"이쪽 관내 분들은 생각이 착착 맞는다니께..."

그러면서 해가 서녘으로 가는지 풀섶으로 자빠지는지도 모르고 취해 종내는 자전거 하나도 못 붙들고 핸들에 끌려 겨우 걷는 꼴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흥청거리지 말고 수준좀 지키며 살자는 말을 끝으로 이 글을 맺습니다. 누가 멀리로 밥 먹으러 가자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