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기 돌리는 일로 아직 못 자고 있습니다. 빨래거리가 많네요. 버튼을 누른지가 제법 되었는데 아직 벨이 울리지 않고 있습니다. 평소엔 아내가 세탁기를 돌리는데 오늘은 제가 맡았습니다.
아내는 현충일을 맞아 아침 일찍 동작동 묘역에 갈 예정이랍니다. 둘째 처남이랑 처남댁이랑 함께 간다고 해요. 지금까지 현충일 날 빠짐없이 동작동에 갔습니다. 어떤 이는 '아이들과 친척들만 가게 할 것이지, 남의 여자가 되어 뭐하러 줄기차게 다니느냐?'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전 뭐가 뭔지 정확히 몰라 그냥 내버려 두고 있습니다. 가면 가고, 오면 오고... 그런데 가끔 예민한 생각이 들긴 해요. 훗날 다함께 하늘나라에서 만나게 되면 아내는 누구를 더 사랑해줄까 생각하게 합니다. 두 남자 다 사랑할까요? 혹시 제가 채이는 건 아닌지... 둘이 합십해서 절 두들겨 패진 않을까요? 경험있는 분이 계시면 좀 알려주세요.
아, 답이 나오네요. 아내더러 훗날 먼저 죽으라고 해야겠습니다. 먼저 가서 그 분이랑 함께 있다가 제가 도착하면 저한테 오라고 해야겠어요. 그게 공평할 것 같습니다. 만일 그 분이 양보를 못하겠다면 다시 한 번 더 죽어달라고 해야겠습니다. 그럼 또 저희들은 이승에서처럼 살 수 있을테니까요.
현충일 혹은 명절날 혼자 집에 있으면 소외감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죽은 사람이 부러워지곤 합니다. 이해 안 가시지요? 제 입장이 되면 이해하실지도 모릅니다. 저도 훗날 죽으면 누군가 찾아와 장미꽃송이 놓고 흐느껴줄까요? 태, 경, 옥... 그들 모두 다녀갈까요? 그렇다면 저는 영혼이나마 하늘에서 참 행복할 것 같습니다. 땅에 있는 놈(?) 못지 않게 행복할 거예요.
어제 서산의 아우를 만나고 오면서 고향집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어머님, 이런 말씀 드리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솔직히 아버님보다는 어머님이 오래 사셨으면 합니다. 이런 말씀, 참으로 비통한 심정이지만, 어머님이 먼저 돌아가시면 아버님께서 혹시 다른 여자분을 집으로 들일지 모른다는 예감이 들곤 합니다. 그렇게 되면... 만일 그런 일이 생기면 제 성격에 그냥 있지 못할 것 같아요. 고향집으로 내려가 그 아주머니더러 '당장 나가세요. 꺼져요'하면서 소리지를 것 같습니다. 그리곤 어머니를 찾아가 하루종일 울다가 쓰러져 죽을 것 같아요. 그러니 어머니... 오래 사세요!" 전 중간에 말이 끊겼습니다.
밤이 깊어 클래식 기타로 친 <섬집 아기>만이 고요한 선율로 울릴 뿐입니다. 두 곡 더 올리겠습니다. 다음부턴 음악방에 올릴게요. 꼭 올릴 필요가 있으면 말입니다. 세탁물 꺼내 널고 잘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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