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살면 꽃잎 으깨어 잉크 대신 편지를 쓸 수 있으리라. 그 옛날, 백석이 최정희에게 보냈다는 달개비꽃 잉크로 긴 편지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오디즙은 어떨까? 무심히 입고 출근한 어제의 남방셔쓰에서 고향집에 머물며 묻은 오디물을 보았다.
달개비꽃 뿐이랴? 벚도 괜찮을 것이다. 펜촉에 한방울 '콕' 묻혀 하얀 지면에 대고 사각사각 쓰면 세상의 평화가 다시 없을 것 같다. 아아, 나는 언제 고향으로 돌아가 빈딧불이 성군(成群) 지천의 유월밤에 달개비꽃 잉크로 시(詩)를 쓸까? 산뽕나무 잎에 밤이슬 타닥타닥 듣는 밤, 염주비둘기(山鳩) 사는 숲 변두리에 붙은 집의 방 한 칸...
서색(鼠色) 하늘에 별은 산창(山窓)에 벌고 무심중(無心中) 산천 밤꽃 향기 알싸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