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장마철 '좌우지간 보상금'

펜과잉크 2005. 6. 29. 13:11


장마철입니다. 폭우가 내린 곳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얼마 전, 부산에선 스물셋 처녀가 빗속을 가다가 전봇대 전류에 감전되어 죽었다고 하네요. 30mm 비에 그런 사고가 생기는 우리나라에서 마음 편히 숨 붙이고 산다는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장마철 폭우가 내리면 산사태의 위험이 있고 개천의 범람이 우려됩니다. 커다란 흙무덤의 산사태는 일순간에 아래를 쓸어버립니다. 산사태가 지나간 자리엔 온전한 게 없어요. 이따만한 나무도 납짝쿵 됩니다. 가령 집을 덮쳐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몰살시키기도 하지요.

폭우는 개울 둑방을 끊어놓기도 합니다. 둑이 무너지면 일대 들판은 온통 탁류로 뒤덮입니다. 남아나는 게 없어요. 수박, 참외, 토마토, 가지, 고추밭까지 엉망이 됩니다. 열매는 물에 잠기는 순간부터 가치를 상실하게 됩니다. 벼도 마찬가지입니다. 생명체의 생존원리는 하나로 통하기 때문에 그것이 마비되면 죽은 거나 다름없지요.

폭우가 지나가고 사람들이 일어섭니다. 척박한 대지에 명(命) 붙이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재해는 오히려 미래에 대한 또 다른 희망이기도 합니다.

이장이 방송을 합니다. 일단 김난영의 '목포의 눈물' 일절이 끝나게 한 뒤
"음, 음... 이장 권춘복이여유. 다름이 아니오라 지난번 빗줄기에 잘려나간 수렁들 뚝방, 그거 땜에 방송을 허게 되었습니다. 좌우지간 무슨 피해가 발생허먼 우선적으로 정부 보조금 문제라는 게 거론되고, 최대한 빠른 수순을 밟아 올리는 부락부텀 보상이 지급되었던 그간의 사정을 감안혀볼 때, 이번이두 부락민들께서 일사불란허게 협조혀주실 필요가 있겄다, 이런 말씀을 요약적으루다가 우선 드리는 바입니다. 그러니 방송 듣는 가정에서는 오전 중으루 인감 도장 하나씩을 저희 집으로 가져다 주시먼 감사허겄습니다. 지난번 지가 농협 이자빚 얻을 적에 보증 서주신 이춘길, 박병문 씨는 도장이 아직 저한티 있으니께 제외허시구, 나머지 분들은 잊지 마시구 꼬옥 갖다 주시먼 감사허겄어유. 지가 오전에 잠깐 음지골 밭뙈기 고춧대 부러진 거 보구 올지두 모르구, 안식구가 자릴 비워 집에 아무도 없을지라두 마루 끄트머리 걸레 뭉쳐놓은 밑에다 살짝 놓고 가시먼 지가 밭에서 싸게 오는대루 하자없이 챙길 것이니께유. 그리들 아시구, 좌우지간 이번 비에 별 피해없게 각자 철저히 대비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이장이었습니다."

이장집으로 간 도장은 곧 면사무소로 가서 담당 직원에게 건네집니다. 거기서 기안된 문서에 찍혀 상부로 가면 한참 있다가 보상금이 내려오는 것이지요. 며칠 전 글에서도 살짝 언급했던 부분입니다.
"좌우지간 저희 부락은 수렁들 뚝방 외엔 무너진 게 없습니다유."
"이장님, 무슨 말씀여유? 아니 수렁들 뚝방 말고도 욕골, 절골, 감나무골, 중말 입구 죄다 무너진 거 아녀유? 좌우지간 무너진 거 아녀유?"
"글쎄, 그게... 음..."
"홍산리 이장님은 되게 눈치가 더디시네... 황우석 박사 나온 고을이 왜 저려? 면민이 합심혀서 정부 보상금을 타자는 이치인데두 그걸 모르시네..."
"양심적으루 사는 것이 맘 편허긴 혀유. 군이나 도에서 실사라도 나오면 어쩌시려구..."
"아니 누가 이장님더러 군청, 도청 실사반 걱정허랬유? 공사다망하신 실사반 분들은 저희들이 곧장 오리탕집으로 모시먼 해결되는 것이구, 이장님은 좌우지간 무너진 뚝방만 줄줄 외우고 있으면 되는 것이래두유. 제 말 뜻을 아시겄남유?"
"야~"
누이 좋고 매부 좋게 척척 진행이 됩니다. 좌우지간 진행됩니다.

요즘은 시골도 달라져서 비 30mm 정도에 뚝방 잘려나가는 일은 없을 것으로 믿습니다. 300mm 폭우도 끄떡없을 걸요?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부산 같은 대도시에서 30mm 비에 감전되어 죽는 일 말고는 말입니다.

 

인천시 전동에서도 길을 가던 여학생이 한전 맨홀 뚜껑을 밟고 감전사했다고 합니다. 장마철 대비가 필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