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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白石) 시인과 국수 삶는 여인숙에 관한 단상

펜과잉크 2005. 6. 30. 09:08


시인 백석(白石)에 관한 글에서 납북 이후 시인이 현지에서 결혼하여 가족과 찍은 사진을 공개하여 본 적이 있다. 한때 최정희씨(소설가 김지원, 김채원의 모친, 작고)에게 잉크 대신 달개비꽃을 으깨어 편지를 썼다는 백석 시인은, 그러나 북에선 당의 미움을 산 나머지 오지로 귀양당하다시피 하여 살았다고 한다. 흑백사진에 나타난 그의 모습은 평범한 가장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며 청년시절의 도발적인 헤어스타일도 없었다. 부인과 앉아 등 뒤에 남매를 세워놓고 찍은 사진을 바라보며 낭만과 서정을 한 몸에 지녔던 천재 시인을 떠올렸다.

백석의 詩를 읽다 보면 국수 삶는 여인숙에 관한 부분이 나온다. 그의 詩에 나오는 여인숙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도심의 것이 아니라 산골의 소박한 객숙(客宿) 전용의 온돌방을 연상케 한다. 백석의 詩『山宿』을 보라. 첫 행(行) '旅人宿이라도 국수집이다' 라는 부분부터 어린 시절의 기억을 불러 일으키며 두뇌 열선들을 자극한다.

『山宿』의 국수엔 필경 꿩고기가 올라올 것이다. 국수 그릇에 떡살 몇 점과 고기 몇 점이 살짝 섞일 것이다. 꿩고기엔 육질의 비린내라는 게 없다. 어릴 적, 마을 장정이 잡아온 장끼를 열탕에 넣어 털을 뽑고 배를 갈라 내용물을 제거한 후 요리하곤 했는데 그 맛이 담백하기 이를데 없었다.

 

떡살 같은 건 없어도 좋다. 김이 나는 그릇에 몇 점의 꿩고기를 넣고 계란말이 채썰이와 검붉은 실고추를 띄워 마무리한 국수는 젓가락으로 말아올려 한 입으로 후루루룩 빨아들이기엔 아까울 정도로 맛이 났다.

장끼의 털을 뽑기 전, 긴 꼬리털을 따로 가려내어 아이들에게 주면 중세 유럽의 백작처럼 몸에 붙이고 다니며 폼을 재곤 했다. 산골 출신 중엔 자라면서 장끼 꼬리털 때문에 싸워본 경험이 있는 축도 있을 것이다. 칠갑산 자락의 양지쪽 솔밭에서 장끼가 날아오르면 김이 모락모락 피는 국수맛이 생각나곤 했다.

백석의 『山宿』과 내 고향의 정서는 어떻게 다를까? 메밀국수를 뽑던 어린 시절의 '분틀'을 백석의 詩에서 읽고 콧등이 시큰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북관(北關)'은 함경도 지방 산곡(山谷)의 낯설음이 아니라 충청 내륙의 칠갑산 자락에 깃든 정든 고향이 아닐까? 정주(定州)가 곧 부여다. 문득 잔솔밭에서 꿩이 푸드득 날아오르는 환상이 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