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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괭이질

펜과잉크 2005. 6. 30. 09:34

 

곡괭이!

내 비록 전방 소읍에 와서 이 글을 쓰고 있지만 곡괭이에 대해 몇 자 긁어야겠다는 사명감엔 변함이 없다. 곡괭이는 딱 말해서 투박하게 생겼다. '당돌하다' '우직하다'는 표현도 가능할 것 같다.

한 방 찍으면 차돌멩이 바윗돌도 '팍' 쪼개질 것 같은 연장이다. 괭잇날이 'ㄱ'자(字) 형태를 가진다면 곡괭이는 영어 'T'를 연상케 한다. 양쪽 날 끝이 살짝 고개 숙인 형태를 상상해보라. 하긴 굳이 'T'자(字)까지 강조하지 않아도 이해를 하겠지만 말이다.

곡괭이는 삽과 괭이가 도전할 수 없는 박토를 찍을 때 쓰인다. 땅에 박힌 이따만한 돌뿌리를 캐어낸다든가 할 때 동원시킨다. 돌의 틈새를 노려 잘 휘둘러 찍어 뿌리를 뽑아 내는 것이다. 중량감 있는 연장이라 어지간한 장정은 몇 번 휘두르다 힘에 부치기 쉽다.
따라서 곡괭이는 몇 번을 찍어도 확실히 찍어야 진가를 얻는다.  

군대에서는 곡괭이를 다용도로 사용했다. 침상 바닥이나 천정속에 감췄다가 기합을 시킬 때도 써 먹었기도 했다. 엎드려 뻗쳐를 시켜놓고 곡괭이자루로 엉덩이를 두들겨 팬다. 곡괭이자루라고 하니 겁부터 먹을까 싶지만 실상 곡괭이자루는 마대자루나 기타 몽둥이보다 통증이 떨어진다.

 

곡괭이자루가 엉덩이를 향해 내려올 때 엉덩이를 살짝 조율하면 통증을 반감시킬 수 있다. 말하자면 매질의 율동을 타는 셈이다.상당한 기술이 필요하지만 수시로 얻어맞다 보면 일종의 요령으로 정착되기 마련이다. 곡괭이자루를 5파운드 어쩌고 하는 얘기가 군대에서 시초된 걸로 안다.

그러나 무엇보다 군대에서 곡괭이를 다룰 기회는 진지 보수를 하거나 야외 훈련일 경우가 많다. 황무지에다 24인용 텐트를 구축하려면 야전삽부터 곡괭이까지 총동원시켜야 하니까. 야전삽은 군장에 붙이고(달고) 다닐 정도로 간편하지만 곡괭이는 부식을 추진하는 트럭 짐짝에 실려 별도로 옮겨진다.

참고로, 야전삽 얘기가 나와서 부연한다. 야전삽을 숫돌에 정성스레 갈면 칼처럼 날카롭다. 어지간한 나무뿌랭이(뿌리)는 한 방에 싹뚝 잘려나간다. 땔감을 할 때 소나무 가지를 향해 대각으로 내리찍으면 한 방에 잘린다. 물론 이 짓도 시골 출신들이 단연 유리하
다. 도시 아이들은 버벅거린다. 나무에서 떨어지질 않나...

군인들이 허리춤에 차고 다니는 대검이 평소엔 뭉뚝하여 감자 껍질 하나 제대로 벗길 수 없지만 숫돌에 잘 갈아놓으면 그만한 칼이 없다. 나도 한 번 해보고 깜짝 놀랐다. 정말 예리하다. 섬뜩할 정도다.

앞서 괭이를 얘기했는데 밭에서 쓰고 집안 마당에 내던진 괭이는 무심코 노는 아이들이 밟을 경우 자루가 '부웅' 일어서며 마빡을 '따악' 때리는 수가 있으니 가급적이면 연장간에 걸어 두는 게 좋다. 뒤통수같은 데 맞으면 몇 시간동안 아무 정신이 없다. 말이 믿기지 않으면 한 번 해보라. 괭이를 마당에 놓고 괭잇날을 밟는 것이다. 그럼 땅바닥에 있던 자루가 부웅 뜨면서 어디를 '따악' 때릴 것이다.

곡괭이는 삽이나 괭이처럼 다방면으로 쓰이는 연장이 아니지만 꼭 써야할 때 없으면 동네를 뒤져서라도 빌려와야 직성이 풀리는 묘한 연장이다. 산언덕을 개간하다가 흙속에 묻힌 돌을 골라낼 때 요긴하게 쓰인다. 논에선 하나 쓸모없는 연장임. 그러니 곡괭이 메고 물꼬 본다고 논으로 향하지 말 것. 사람들이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