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솔로몬악기사 자리엔 원래 찬양악기가 있었다. 찬양악기는 김덕환 사장이 운영했는데, 그는 나보다 몇 살 아래였고, 술을 폭주하는 버릇이 있었다. '언제 술 한 잔 하셔야지요?'했던 그가 원주 치악산의 기도원으로 요양을 갔다가 끝내 술병이 도져 죽은 지도 몇 년이 흘렀다. 공교롭게도 찬양악기사에서 레슨을 맡아 생계를 꾸려가던 한기성 씨도 김덕환 씨가 죽은 3년 후에 술병으로 뒤를 따랐다. 한기성 씨는 악기에 대한 지식이 많아 감정, 평가, 수리, 레슨을 도맡은 몸이었다.
새음악기사의 박대식 사장도 생각난다. 그는 미국을 이웃처럼 드나들었는데 수완이 아주 뛰어난 사람이었다. 한 번은 내게 실리얼 넘버
14593( )번의 빈티지 뉴욕 셀마 태너 색소폰이 있어 신품과 바꾸려고 새음악기사를 찾으니 한꺼번에 셀마 신형 태너와 알토 두 대를 내놓는
것이었다.
색소폰의 명기 셀마 신형 두 대를 소장했다는 자부심이 얼마나 컸던지 이튿날 주변에 전화를 걸어 자랑하기에 바빴다. 그랬더니 색소폰에 조예가
깊은 한 분으로부터 악기를 보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그 분은 내가 전에 가지고 있던 악기에 대해서도 아시는 분이었다. 난 두 대의 색소폰을
차에 싣고 가서 보여드렸다.
그 악기는 1996년 인천지방OO청 강력과에 근무할 당시 강당에서 연습을 하다가 떨어뜨려 네크의 일부가 찌그러지는 바람에 다른 모델과 바꾸게 되었다.
낙원상가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제일은행 쪽 계단으로 내려가 탑골공원 방향 인도를 걸으면 돼지머리껍데기를 삶아 파는 집이 나온다. 비릿한 냄새가 풍기는 탁자에 앉아 투가리 돼지머리껍데기 국밥 한 그릇 먹노라면 그 맛이 그렇게 진미일 수가 없었다. 비 오는 날, 창 밖을 내다보며 소주 안주 삼아 먹기 딱 좋은 메뉴가 아닌가? 제일은행 반대편 인사동쪽으로 있는 '신성옥' 간판의 식당도 설렁탕만큼은 아주 맛있게 끓인다.
현재 잠시 색소폰을 접어둔 상태다. 그래도 악기는 수시로 꺼내 만져본다. 닦아줘야 할 부분도 있고 해서…. 언제 다시 색소폰을 목에 걸고 아름다운 멜로디로 연주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되면 낙원상가에 오르내리는 일이 재현될 것이다. 연습실 멤버들은 수시로 전화를 걸어 얼굴 좀 보자 한다. 볼 날이 있겠지. 나 또한 연습실에 투자한 게 있고, 시설물 중에도 내 장비들이 있으니 말이다. 나중에 들렀을 때 '그동안 들어온 수익금이오' 하면서 돈이나 듬뿍 보여준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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