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Pen 혹은 文學

반추 2

펜과잉크 2007. 6. 17. 10:33

 

학익동 신동아아파트 앞 삼거리 코너 지하에 '알프스까페'란 지하 술집이 있었다. 장종권 형이 인천문협에서 무슨 직을 맡고 있을 때 회원들을 소집하여 행사를 갖곤 했던 업소이다. 참고로 종권 형님의 당시 거주지는 근처 신동아아파트였다.

 

그곳 까페가 행사 적임지라 하여 가끔 갔던 기억이 난다. 주인이 포크송을 잘하는 사람 같았다. 김영승 시인 출판기념회가 거기서 한 번 열렸던가? 박익흥 형님의 출판기념회도 있었던 곳이다. 작지만 아담했고, 적은 돈으로 점령(?)하기 좋은 위치여서 활용가치가 높았던 곳으로 믿어진다. 화장실이 안쪽 계단을 통해 지상으로 올라야 했는데 추운 겨울날 변기가 터져 얼음이 바위덩어리만큼 얼어붙은 위에다 오줌을 반쯤 갈기고, 다시 끊었다가 밖으로 나가 공터에다 나머지 여량을 대충 털어 배설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가 언제였던가? 장종권 형님이 인천문협에서 직책을 맡았던 그때…. 고(故) 이병화 어른께서 지회장으로 계셨을 때이다. 이병화 회장께선 말이 없으셨고, 어느 날 행사 전에 무대에 있는 피아노 앞에 앉아 정숙한 표정으로 즉흥연주를 하시던 모습이 인상적으로 기억된다. 말하자면 장종권 형님은 그 분을 보좌하는 사무장인가 하는 직책이었다. 사무국장이었던가? 물론 변호사협회 사무장과는 다르지만 말이다.

 

알프스 주점을 나온 무리들은 곧장 귀가하지 않고 인근의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기거나 택시에 분승하고 구월동 모래내 시장 곱창집 같은 데로 향했다. 곱창집에서 서동익 전 지회장님이 '인천문협 회원들이 작고하면 유족으로부터 유골의 일부를 얻어 인천대공원 같은 부지에 시비 공원이라도 만들자'는 열변을 토하기도 하셨다. 서동익 회장님과 이항복(소설가, 現 충주ㅊ신문사 부장) 형님의 일절이 끝나면 한 시간이 훌쩍 흘러 더러는 꾸벅꾸벅 조는 이도 생겼다.

 

그 경(頃), 고(故) 이재숙 소설가도 연대를 함께 했었다. 튀는 말발이었지만, 그래서 개성적이었고, 결론적으로 그 분 나름의 긍정적인 부분들이 깊게 각인되어 떠오르기도 한다. 간단히 짚자면 그 분 주변엔 언제가 그 분의 경쟁자가 한 두 명은 늘 상존해왔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잠시 방향을 선회했다가 오기로 한다.

 

과거 인천을 시끄럽게 했던 조직폭력배 중 송ㅊㅂ이란 사람이 있었다. 당시 인천에서 잘 나가는 나이트클럽의 사장이었다. 그리하여 그 세계에선 '송 회장'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 사람이 어떻게 됐냐 하면, 죽었다! 왜 죽었냐? 칼을 맞았다! 어디서? 노름판에서!

 

나이를 먹어 벌어놓은 돈으로 노름판 꽁지를 지원했던 모양인데 노름판에서 판돈을 빌려달라는 친구에게 무시하는 말을 했다가 칼에 찔렸다. 도박개장 집 부엌에 있는 식칼로 한 방 질렸는데 그 한 방이 결정적이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법의학(法醫學) 용어로 실혈사(失血死사)한 셈이다. 사실 신체 혈액은 15% 가량을 잃으면 사망에 이르는 걸로 알려져 있다.

"피 나오는 부위를 손으로 막으면 되겠군요."
그러는 사람도 있는데 일단 신체조직이 파괴되면 혈액은 끊임없이 흐르게 되므로, 이럴 경우 역시 법의학 용어로 복강내(腹腔內) 실혈(失血)로 이어진다. 결국 빨리 병원으로 후송하여 지혈(止血) 과정을 밟는 수밖에 없다. 위 송ㅊㅂ 씨도 그런 과정들이 늦어져 사망에 이른 게 아닌가 추정되는 바이다.

 

주안4동 어느 미용실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발화 원인이 부부싸움 중 남편의 소행에 의한 것이었는데 우리가 현장에 갔을 때만 해도 남편이 런닝 차림으로 인도에 앉아 있었다. 배우자를 묻는 질문에 '저쪽에 있어요'라고 대답하는 그의 앞자락이 피로 얼룩져 보니 목에 상처가 나있는 것이었다. 급히 응급차에 실려 보내긴 했으되 중간에 사망했다는 병원 측의 연락이 있었던 바, 이 경우에도 '과도한 실혈에 의한 사망'으로 추정된다. 경동맥(頸動脈) 실혈(失血)인 것이다.

 

1983년, 필자의 소속 부대가 새벽에 최전방 작전을 펴다가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일이 있었다. 현장에서 2명의 전우가 즉사하고 나머지는 부상자였는데 그 중 한 명은 파편 한 발이 복부를 관통한 정도였다. 그는 우리의 무릎에 앉혀져 속초로 후송되면서 끊임없이 정신을 놓지 않으려 하였으나 끝내 도중에 생명의 끈을 놓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전우 역시 실혈사였다.

 

말이 길어졌지만 아무튼 예기치 못한 사고에 직면하여 피를 흘리게 되면 맨 먼저 응급조치부터 선행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앞서 언급했던 부분, 그러니까 15%라는 의미는 '몸 속의 혈액 15%'를 말하는 것으로 '몸뚱이 15%'와는 개념 자체가 다름을 사족 해둔다. 사람에 따라 혈액 15%는 보시그릇 한 종지 분량일 수도 있으니….

장종권 형님이 인천문협 사무국장을 역임하던 때가 언제였던가? 10년 세월이 흐른 것 같다. 훌쩍 흘렀다. 그 세월 속에 함께 묻어 사라져간 이름들이 몇이던가? 더러는 운명을 달리하였고, 주거지를 이동하였으며, 자의 혹은 타의로 회원 자격을 면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필자가 1991년 인천문협에 가입하여 지금까지 오는 동안 함께 '동행'해온 이들은 극히 제한적이라는 인식이다. 그때 알았던 이름들이 앞으로도 함께 동지 문인으로서 동행하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시간 날 때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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