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4. 15
며칠 전, 광명에 결혼식이 있어 들린 차에 일행과 서강대교 인근 카페에서 2차 만나기로 하여 차를 몰고 가다가, 금천교 인근 방죽 언덕에 줄지어 늘어선 개나리 군락을 보게 되었다. 나른한 봄 햇살을 쬐며 어디선가 더펄개 한 마리 어슬렁거릴 것 같은 환상이 일면서 고향의 온 산을 핏물로 붉게 일어 설 꽃무리들을 생각하였다. 두령(頭領)으로 우뚝 솟은 주봉(主峰) 산자락부터 불 타오를 꽃은 이맘때의 진달래꽃이다.
시처위(時處位) 가림없이 온 산 자욱히 물들이던 꽃. 꽃은 가지 끝에 있어 바람으로 흔들리다가 간혹 앙증맞은 손아귀에 잡혀 뭉덩진 채 어느 빈촐한 차양집 마루에 며칠간 꽂혀 있기도 하였다. 어머니 갓묶단 이고 장에 가신 날은 담 너머 목 빼물며 심심풀이로 씹고, 한 식경 졸음 겨우면 또 한 잎 떼어 질근거리며 시름 달래던 봄날의 추억이여!
다보록한 꽃무덤은 이 손 저 손에 몸 주고, 더러 섬돌까지 넘보는 암탉 부리에도 뜯기면서 차양 끝 마루에서 그렇게 앓다가 갔다. 토광 문짝이 떨어져 볍씨 거스러기 한톨 보이지 않던 봄날 춘삼월…….
산간 양지를 무리 짓던 진달래꽃은 어느날 아버지의 푸작나무 지게 꼭대기에서 낭창거리기도 하였다. 철 이른 나비 몰고 하늘대던 꽃……. 혹간 두견화(杜鵑花)로 불리며 두견주(杜鵑酒)로 빚어지기도 하였고, 흔히 소쩍새라고 하는 두견이(--鳥)의 슬픈 사연으로 이어져서 아슴한 동정심까지 우러나게 하였다. 그러면서 내 어릴 적 멍석에 말려 산으로 업혀 간 인복이 누님 같은 넋이 그려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봄은 또 가이없이 우리 곁을 지나 낱장 추억 속으로 밀려 날 것이다. 그러나 먼 옛적, 온 산을 물들이던 꽃들의 아우성은 여전히 살아 만개한 꽃잎 그대로 기억의 뇌(腦)에 흐드러지리.
[졸작]
진달래
살이 썩는다
땅이 썩는다
썩은 살로
썩은 땅으로
꽃은 가서
피어 오른다
확실한 빛깔로
확실한 예감으로
썩은 살 위에
썩은 땅 위에
꽃은 진다
썩어 돌아갈 날
벙시레 가늠하며
불구대천의 땅
피로 깨운다
--- 發表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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