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사진

고향의 봄

펜과잉크 2009. 4. 15. 16:27

 

 

 

 

고향에 다녀왔다.

아버지 49재(齋)가 있었다.

원래는 오늘(4월 15일)이지만

어머니께서 평일을 피해 며칠 앞당기셔서  

지난 주말 고향 선산에서 위패를 태우는 등의 절차를 밟았다.

마침 휴가를 얻어 충분한 여유가 가능했다.

 

고향에 머무는 동안

산에 올라 란(蘭)도 채집했다.

숲이 우거져 란(蘭) 찾기가 쉽지 않았다.

 

마을 뒷산에 올라 내려다 보니 마을이 산에 가려졌다.  

우리 어릴 때 담배로 가득했던 밭들이

십 수 년 전부터 밤나무 단지로 변해 지금은 오직 밤나무 뿐이다.

온 산이 밤나무로 뒤덮혔다.

 

밤나무가 활엽수인 탓으로

겨울엔 사진과 같이 황량하기 그지 없다.

반면 녹음기엔 온통 숲으로 바뀐다.

 

신기한 건 저 높은 산꼭대기까지 차가 오르내린다는 점이다.

난 무서워 한 번도 올라가지 못했다.

노파심이지만,

고향의 가파른 밤나무 길을 다니는 트럭이

브레이크 파열로 사고 나지 않을까 매우 우려되는 부분이다.

사진을 클릭해보면

밤나무 단지 구석구석까지 거마 도로가 나 있다.

 

 

붉은 색으로 표시된 지점이 '용난골'이란 지명이다.

1971년경,

새마을 운동이 한창일 때

저곳에 상수도 시설을 하여 모든 집이 수도 혜택을 누렸다.

한 집도 빠지지 않았다.  

 

 

마을 뒷산의 벚나무 군락에도 봄 향기가 충만하다.

 

 

  

숲엔 짐승의 길도 있다.

산토끼인지, 너구리인지,

고라니인지 뻔질나게 오간 흔적이 역력하다.  

 

 

 

아래쪽에서

토끼 한 마리가 후다닥 뛰어 도망치길래 다가가니

낮잠을 자던 중인가 보다. 

아늑한 보금자리... 

미안하다. 토끼야!

 

  

 

토끼 보금자리 근처에서 산란(山蘭)을 찾았다.

무엇이 뜯어놓고 새똥이 묻어 몰골이 추레하다.

 

 

 

딱다구리인지,

박새인지

고사목에 사는 벌레들을 잡아먹기 위해 쪼아놓은 흔적들이다.

 

 

 

산 속의 작은 연못엔

놀랍게도 고기들이 한가로이 헤엄치고 있었다. 

역시 생명은 위대한 것이다. 

 

 

 

물 속의 고기들.... 

 

 

 

고향집 거실엔

어머니께서 기르시는 화초들이 있다.

란(蘭)도 있다.

거실 한쪽에 덩그마니 있는 빈의자에서

아버지의 부재가 가슴 아픈 현실로 다가온다.

저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거나 음악을 들으시며 휴식을 취하시던 아버지 모습이 떠오른다.

영영 다시 뵐 수 없다.

 

 

 

어머니께서 심은 란(蘭)에 꽃이 피었다.

화분갈이를 한다면 열 그루도 가능하겠다.   

 

 

 

언젠가 내가 심은 란(蘭)은

꽃이 피기 전에 죽어버렸다.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마사토로만 심은 탓이란다. 

중간에 배양토를 넣어야 튼실한 뿌리를 기대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화초들...

 

 

 

할미꽃...

 

 

 

 

자정 넘어

아들이랑 차를 몰고 금강에 나가 낚시질을 했다.

몇 시간 자리를 옮기면서 열심히 낚시에 임했지만 한 마디도 올리지 못했다.

집에 돌아오니

고기 담으려 가지고 간 그릇과 어망을 강가에 놓고 온 것이었다.

그냥 포기함.

 

술 깨고 생각하니

밤중에 강으로 낚시질 간 게 후회되었다.

아버지는 우리가 물가에 나가는 걸 아주 싫어하셨다.

더구나

나는 1979년 친구랑 저 강을 건너다 친구가 익사 당하는 사고로

물에 대해 민감하다.

마음 속으로 아버지께 용서를 빌었다.

 

 

 

 

젊은 시절

즐겨 읽던 시집 중에서 

정희성 님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꺼내 옮겨보았다.

행복했던 고향의 봄 한철이 눈 깜짝할 새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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