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게질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짐을 얹어 나르는 식이고, 다른 하나는 물이나 똥을 양철통에 담아 들어 올려 운반하는 식입니다. 두 가지 다 요령을 꿰야 하는데요, 두 번째로 말한 물지게나 똥지게질이 훨씬 힘듭니다. 짐을 얹어 가는 식은 균형만 잡으면 끝나지만 물지게나 똥지게는 균형 감각 외에 율동을 탈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넘쳐요! 그냥 넘치는 게 아니라 튀어 오릅니다. 똥물이 튀면 심각합니다. 신발 등이나 바지자락에 묻으니까요.
모든 일엔 순리가 있듯이 지게질도 물지게를 통해 견습을 거친 자가 똥지게질도 잘 합니다. 견습 과정이라는 게 기껏 우물 물 길어 부뚜막 물독을 채우는 일이지만 말입니다. 일찍부터 상수도가 있었던 저희 고향도 어쩔 수 없이 물지게를 지어야 할 상황이 있었습니다.
이장이 방송을 하죠.
“에, 주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다음 주에 담배 비료가 나온다 합니다. 호당 신청 량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시고…. 에, 다름 아니라 가뭄이 길어져 용난골 상수도 저수고가 바닥나기 직전입니다. 그러므로 부득불 한시 급수를 할 수 밖에 없사오니 이 점 양해 바라오며 내일 정오까지는 수고스럽지만 마을 큰우물에서 식수를 길어다 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것도 저것도 안 되는 분들은 내일 정오까지 참고 지둘려 주세요. 네에.”
그럴 땐 벽에 걸어놓은 물지게를 내려야 했습니다. 마을 큰우물로 물을 길러 가야했던 것입니다.
물지게에 길들여진 몸은 똥지게를 지어도 무난했습니다. 오직 제 입장에서 ‘똥지게질’에 관해 정의하자면, 양철동이에 똥을 퍼 담아 채운 후 지게 고리를 걸어 지고 목적지까지 운반하는 일입니다. 양철동이에 채우고 그냥 나르면 안 되고 쑤세미 형태의 지푸라기를 띄워야만 수월했습니다. 똥물 넘치는 걸 막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원래 푸세식 똥독은 양조장 술독만한 크기로 집집마다 땅 속에 묻어 간살대를 얹은 식이었습니다. 간살대 위에서 오금을 까 내리고 앉아 배설해 저장해두었다가 마늘 싹 틀 무렵 밭고랑에 내다 뿌렸습니다. 똥바가지는 쇠스랑 자루만한 막대기 끝에 양키부대 애들이 빼돌린 철모를 꿰어 매단 거였습니다. 그걸 똥독 속에 깊숙이 넣어 한 바가지 퍼 올리는 것입니다. 똥독엔 푹신 발효된(反, 부패된) 내용물이 가득했는데 더러 쥐가 헛발을 딛고 죽어 퉁퉁 불어난 주검으로 떠오르기도 했지요. 봄철엔 연대 병력과 맞먹는 구더기들이 우글거리는 똥독이었습니다. 뿐인가요? 밑 닦을 때 찢어 쓴 선데이서울 종잇장도 끌어올려졌습니다.
그럴 경우 혼자 생각하는 게 있었어요.
‘해병대 출신 남진 멋져! 똥독에 몇 달을 처박혔어도 사진 뽀대 하나는 여전하구먼. 윤복희가 좋아할 만 혀. 볼 때마다 싱글벙글이라니께…. 용두산 엘레지 나훈아는 눈만 부릅뜰 줄 알았지, 독 밖으로 나와도 몰골이 썩어 아이스게기 장사가 따로 없다이. 에라, 이 똥폼아!’
똥지게를 지면 물지게 지었을 때완 달리 긴장감이 척추를 쩌르르 울렸습니다.
‘음, 내리막길을 잘 통과해야 헐텐데….’
곧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몸의 율동을 타야 합니다. 걸음이 불안하면 똥통이 앞뒤로 흔들려서 똥물이 넘칩니다. 몸을 움직이되 양철동이 내용물이 평온을 유지하도록 해야 합니다. 가능하냐고요? 진작에 요령, 율동이 필요하다는 얘길 했잖습니까. 똥통을 지고 걷다 보면 물지게 때완 달리 묘한 율동이 요구되는 바, 상체를 고정시키고 걸음만 총총 옮기는 보폭이어야 합니다. 결국 목적지 밭고랑까지 무사히 도착합니다.
목적지에 이르러 다시 똥바가지가 필요합니다. 밭고랑에 훠이훠이 뿌려야 하니까요. 채 갈아엎지 않은 밭고랑에 마음껏 뿌려 거름이 되도록 합니다. 갓 밭이나 딸기밭 고랑엔 조심스레 뿌려 양분으로 거듭나게 합니다. 마침내 똥발 받은 옥토에서 새순이 돋아 욱어 우리 몸의 에너지로 식단에 오르지요. 아욱, 갓, 마늘, 파, 상추, 가지, 고추 같은 것들이 다 똥발 받고 자라 푸짐한 반찬이 됩니다. 결국 저는 똥내 맡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리하여 똥지게 얘기가 전혀 낯설지 않아요.
지난 시절, 아버지는 다음과 같은 말씀도 하셨을 것입니다. 기억을 못할 뿐이지만 말이죠.
“종호야, 물지게는 부엌 가차운 곳에 놓고 똥지게는 변솟간 가차운 곳에다 두거라이. 물지게랑 똥지게를 구별 못하면 똥지게에 물통 거는 일이 있고, 물지게에 똥통 거는 일이 있을지니…. 똥통이랑 물통도 잘 구별해서 둬야 바쁠 때 헷갈리지 않는다. 똥통에 물 떠다 먹는 낭패는 없어야 하지 않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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