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Sheaffer Balance 만년필의 즐거움

펜과잉크 2009. 11. 23. 15:51

 

 

 

 

 

 

 

 

살면서 좋은 펜 하나 얻는 것도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에 쏘옥 드는 사람 드물듯이, 같은 모델 만년필도 필감이 조금씩 다르지요. 그래 저는 만년필을 살 때 반드시 시필 가능한 매장을 찾아 직접 써보고 가장 마음에 드는 펜을 구입합니다. 시필하면서 펜의 굵기, 펜촉의 느낌 같은 것들을 직접 느껴보는 거지요. 그렇게 구입한 펜은 오랫동안 고이 간직할 수 있습니다.

 

며칠 전,

인터넷 만년필 까페에서 바카쓰님이 올린 Sheaffer Balance fine nib을 보는 순간 눈이 번쩍 뜨이는 것이었습니다. 느낌이라는 게 있지요. 매물로 뜬지 얼마 안되는 시각에 덧글로 구입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예전에 써본 Sheaffer Balance 모델에 지나지 않았지요.

 

하지만 펜을 받아본 순간, 기쁨은 형언할 수가 없었습니다. 일단 색상부터 마음에 들었지요. 닙의 균형 여부는 이미 접사 사진으로 확인하였기에 큰 문제가 안됐습니다. 사실 루페를 통해 보는 접사사진의 정확도는 육안으로 확인하는 것 이상이지요. 

 

 

 

* 바카쓰님이 매물로 올린 Sheaffer Balance(퍼옴) 

 

 

 

 

 

바카쓰님이 보내온 펜엔 파카 퀸크 로얄 블루 잉크가 들어있는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굳이 교체하고 싶지 않았어요. 제가 애용하는 펜은 대부분 블루블랙 잉크로 채워진 상태라 한 자루쯤 로얄블루 잉크로 대체하고 싶었습니다.

 

 

* Sheaffer Balance 파카 퀸크 로얄블루 잉크

 

 

바카쓰님은 2구짜리 펜 케이스도 보내주셨습니다. 전 언제나 바카쓰님께 신세를 질 뿐입니다. 사실 지금까지 박카쓰님이 남자분인지 여성분인지, 무얼 하시는 분인지 아무 것도 모릅니다. 다만 서초3동 사시는 분이라는 것만... 트럼펫을 점검하러 종종 서초3동주민자치센타(서초3동사무소) 근처에 다녀오곤 해서 일대를 알지요. 서초3동자치센타 이웃건물 3층에 트럼펫샵이라고, 국내 제일의 장인이신 임어당님 작업실이 있습니다.   

 

 

* 가죽 펜 케이스  

 

 

 

 

 

 

Sheaffer Balance 글씨입니다. 잉크 흐름이 좋고 닙의 강성도 적당해서 제 마음에 쏘옥 듭니다. 역시 만년필은 가격으로 따질 게 못되는 것 같아요. 어디까지나 제 지론이지만 변함없는 지론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값비싼 제품이라도 실용도가 떨어지면 스트레스만 쌓일 뿐이지요. 

 

  

 

 

 

어제 청양 칠갑산 집안 시제에 가면서도 상의 주머니에 꽂고 갔습니다. 작년 시제 때 저는 아버지를 모시고 쇠밭(금전리) 선산 숲길을 올랐지요. 아버지는 금년 2월 26일 뜻하지 않은 병환으로 저희 곁을 떠나셨습니다. 고향집 근처 9천평 가량의 밤나무 단지를 동네 형님께 위탁영농케 하고, 전답도 모두 위탁영농을 맡긴 상태입니다. 고향집엔 여전히 아버지가 신으시던 장화며 아끼시던 연장과 농기구들이 나란히 살을 맞대고 있는데 주인은 영원히 오시지 못할 곳으로 가셨습니다. 

 

어제 고향집 들러 별채 창고 문을 여니 작년에 수확한 벼가 아직도 쌓여 있더군요. 그걸 보는 순간 눈물이 나왔습니다. 아버지 계시면 볏자루들이 벌써 방아 찧어져 자식들 혹은 친척들 집으로 보내졌을텐데... 

 

고향 인심도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는 걸 느꼈습니다. 하긴 옛날부터 인심이 그리 좋은 동네가 아니었어요. 저희 전주 류가(全州 柳家) 집안과 전주 이씨 집안이 수십년을 으르릉대며 비방하길 그칠 줄 모릅니다. 동네 완장직을 뽑을 때에도 집안끼리 신경전을 벌입니다. 서로 자신들이 추천한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저희 집안과 전주 이씨로 양분된 것만이 아닙니다. 피아간을 중심으로 보이지 않는 파벌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일부는 저희 집안을 두둔하고, 일부는 전주 이씨 집안을 두둔합니다. 당최 바뀔 줄을 몰라요.  

 

길바닥 50미터를 놓고 두 집안이 송사에 휘말리기도 했습니다. 수십 년 간 밭둑 도로를 다녔으니 앞으로는 사용료를 내라 소송을 건 거지요. 그뿐 아닙니다. 칠순 넘은 노인들이 간통을 하고 경찰서 다니며 조사를 받는가 하면 할머니들끼리 이성문제로 머리끄댕이 잡고 폭행 당했다면서 맞고소도 했습니다. 해당 집안 자손들이 모두 공무원들이라 중간에서 끈질기게 중재했지만 끝내 경찰서까지 갔어요.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그 분들이 합의했다고 진정 합의했겠습니까? 합의서 말미에 사인하고 경찰서 문을 나서 이를 갈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전 옛날부터 그런 정서가 싫었습니다. 그래 훗날 어쩌면 고향으로 돌아가기보다 청양 칠갑산 기슭 오룡리쪽으로 안주할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그쪽 선산을 매입하여 분할 등기를 내고 집 지어 사는 거지요. 청양댐이 지척이고 칠갑산 터널을 지나면 산정호수와 닿습니다. 평생 으르릉대며 뒤통수에다 '니기미 쑥떡'이나 내지르는 고향 마을은 별로 정이 가지 않아요. 그리고 모든 산세가 밤나무 천지라 겨울이면 동네 풍경이 을씨년스럽기 이를데 없습니다. 밤나무 특성이 활엽수라 잎이 무성한 녹음기엔 온 동네가 그야말로 그림 같지만 잎이 떨어지는 가을부터 이듬해 5-6월까진 황량하기 그지 없습니다.

 

칠갑산 선산 숲길을 걷다가 써봤습니다. 어제는 절기상 小雪이기도 했습니다. 마침 눈이 내려 그늘진 곳엔 잔설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산공기가 차갑더군요.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면내에 자자한 성품이셨지요.

 

  

 

 

 

 

 

 

 

 

 

'雜記 > 이 생각 저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 창가에서   (0) 2009.11.25
태너 색소폰의 즐거움   (0) 2009.11.24
筆痕 - Seaffer Fountainpen Balance   (0) 2009.11.21
窓外三更雨   (0) 2009.11.21
秋夜千里心  (0) 2009.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