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새면 고향에 다녀올 것이다.
청양 선산 아버지 산소 들러 고향집 가서 어머니를 뵙고 오련다. 가중리교회 목사님도 뵙고 싶은데 시간이 될지... 오후 세시에 인천 올림푸스호텔에서 한중 문학인 행사가 있다. 그 안에 올라와야 한다. 아침 일찍 출발 예정... 추석날 당직이라 어쩔 수 없구나!
-移
새로운 음악이 태동하던 1970년대 중반 신촌엔 당시 엄인호, 이정선, 김의철 등이 활동을 하고 있었다. 카페에서 음악을 듣고, 노래 부르고… 그렇게 자유롭게 취미로 시작한 음악을 한영애는 직업처럼 생각하지 않았다. 그 시절부터 천성이던 거친(?) 특유의 허스키 보이스… 당시 신촌 일대에서 이름을 떨치던 김의철에 의해 "해바라기" 멤버로 발탁되어 정식적인 음악세계로 발을 들여 놓기 시작한다.
"해바라기"의 리더였던 김의철이 건강의 악화로 탈퇴하면서 또 한명의 거물인 이정선에게 바통을 넘긴 통기타 그룹 "해바라기"는 1집과 2집을 발표하게 되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가 담긴 음반을 내게 된 것이다.
이 시기와 비슷하게 한영애는 자신의 솔로 앨범을 내지만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정식 발매되지 못했다. 후에 모 음반사에 의해 자신의 허락없이 무단 발매된 음반 역시 실패하게 된다. 이때가 1978년 즈음…. 한영애는 가수활동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고 친구의 대학 연극 졸업작품 뒷풀이 마당에서 우연히 연극무대 제의를 받게 된다. 한영애의 연극인으로의 활동은 극단 "자유극장"에서 시작되었다. 무려 6년 동안 가수 활동을 중단한 채 연극에만 몰두했던 것이다. 그 후 3년 동안 휴식기간을 가지며 한영애는 음악을 잊지 못해 결국 가수의 무대로 돌아 오게 된다.
1986년,
"여울목", "건널 수 없는 강" 등의 노래를 담은 "한영애 솔로 1집"을 발표하여 큰 호응을 얻으면서 가수로 복귀한 한영애는 수많은 개인 발표회와 신촌블루스 모임에 참가하며 각종 콘서트 활동을 한다. 2집을 거쳐 3집까지 공식 앨범을 발표하고 그녀는 63빌딩에서 아.우.성이라는 개인 발표회를 갖고 이 콘서트 실황을 앨범으로 발표하였다.
한영애는 이 시점을 그 전까지 자신의 음악에 획을 그은 시기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새로운 음악적 전기를 맞고 싶어했다. 이후 한영애는 그녀의 의지대로 심플한 음악을 시도하였다. 어느새 한영애는 중견의 소리를 들어도 될 정도의 음악활동을 해왔다.
아.우.성 앨범을 기준으로 그 전의 험난한(?) 그녀의 음악활동에서 한영애는 긴 터널을 통과해 왔다. 힘들었다면 힘들었을 그녀의 음악은 이제 쉼을 얻었다. 음악을 아는, 음악활동을 할 줄 아는 한영애의 음악은 이제 넉넉함 과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아.우.성 앨범을 발표한 후 개인 콘서트, 다수의 연극과 옴니버스 위주로 활동하는 그녀는 이제 한국 블루스계의 여성 보컬로서 굵은 한줄기가 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웹에서-
완행열차 - 한영애
특급열차 타고 싶지만
왠지 쑥쓰러워서
완행열차 타고서 간다
그리운 고향집으로
차가운 바람 맞으니
두눈이 뜨거워지네
고향으로 가는 이 마음
이 기차는 알고 있겠지
말 못할 눈물은
차창밖에 버리고 가자
차창밖에 버리고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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