餘談/음악의 세계

Selmer 마크 식스에 관하여

펜과잉크 2010. 9. 18. 10:05

 

 

  1. 색소폰의 약사(略史)

 

 


수업의 첫 시간은 색소폰의 간략한 역사부터 시작하자.  

밸기에 태생의 프랑스인 Adolphe Sax(1814-1894)가 처음 발명하였기 때문에 색소폰(Saxophone)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매혹적인 악기는 지금으로부터 164년 전인 1842년에 최초로 제작되었다.(우리는 장죽이나 지게 작대기를 두드리며 흥타령을 읊던 시절에 코큰 사람들은 이렇게 앞서갔다)  

아버지가 악기제조상이었던 관계로 일찍부터 다양한 악기를 제작하고 Test 하곤 했던 Sax는 현악기의 유연함과 목관악기의 다양한 음색 그리고 금관악기의 풍부한 음량을 고루 갖춘 악기를 만들고자 많은 실험을 하였다.

힘든 고생 끝에 1842년의 어느 날, 마침내 '색소폰'이란 옥동자가 탯줄을 끊고 복식호흡 크게 하곤 Long Tone을 불어재꼈다.

색소폰이라는 악기의 가족은 최초로 제작된 Bass 색소폰을 필두로 Contra Bass, Baritone, Tenor, Alto, Soprano 및 Sopranino 등의 다양한 음역과 음색을 자랑하는 식구들로 구성된다. 일반 동호인들은 Soprano, Alto, Tenor를 주로 사용하며, 처음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Alto가 가장 무난하다는 평이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자.  

처음에는 색소폰의 음색이 너무 관능적이라는 이유로 반대론자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치기도 했지만, 몇 년간의 투쟁과 저항을 견디면서 우리의 연인 ‘색소폰’은 드디어 1846년 3월에 프랑스정부의 공식 특허를 받으면서 본격적인 대중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한편, 유럽을 주 무대로 색소폰을 보급하던 Adolphe Sax는 점차 바다건너 큰 시장인 미국으로 눈길과 발길을 돌리게 된다. George Bundy(후에 Bundy Selmer를 만든 인물), E.A. Lefebre(유명 연주자이며 최초의 미국산 제조자)등 몇몇 거래선 들과 친분을 돈독히 하면서 본격적인 시장 확대를 주도하였다.  

미국에서는 색소폰이 1889년에 Indiana주의 Elkhart에 있는 악기공장인 CONN사에서 최초로 제작되었다. 이 공장의 제작주임이었던 Ferdinand 'Gus' Beurscher가 1895년에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흔히들 ‘부샤’라고 부르는 제품)를 설립하면서 이후의 King,Martin사 제품 그리고 1922년도부터 본격적으로 생산을 시작한 프랑스의 Selmer와 함께 전 세계의 색소폰 제작 시장은 군웅이 활거 하는 전국시대에 돌입하였다.  

지금의 LG전자가 있게 한 결정적인 계기가 박대통령 시절 ‘농촌에 라디오 보내기운동’에 힘입은 바가 크듯이, 미국에서의 색소폰 보급, 확대 또한 다소 정치적인 요인이 포함된다.

위에 언급한 CONN사의 설립자인 C.G CONN은 1892년에 미 의회에 진출했고, 이때를 놓칠 새라 미국육군에 연대단위로 Band를 두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 시켜서 CONN악기의 큰 Boom과 색소폰 보급 확산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비록 공인(특허)은 받았지만 여전히 냉담하던 유럽시장 보다는 화끈한 미국시장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색소폰은 최고의 대중악기의 반열에 오를 태세를 갖추게 된다.

색소폰은 보급의 증대와 함께 기계공학적인 Mechanism도 개량과 진화를 거듭하게 된다. 그리고 때맞추어 불어온 Jazz열풍에 어울리면서 남부 New Orleans에서의 Blues를 시작으로 Dixieland band, Swing을 넘나들며 전문 Jazz악기의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2. Selmer 제국(帝國)의 역사

 


앞에서 색소폰의 세계사를 중세의 춘추전국 편까지를 훑어 봤으니 오늘은 Selmer제국(帝國)의 화려한 역사 편을 살펴보자.  

먼저, 총괄 편!  
Selmer색소폰의 창업자인 Henri Selmer(악기 Logo에 이름이 적혀있는 바로 그 사람)와 그의 동생인 Alexander Selmer는 원래 프랑스에서도 알아주는 클라리넷 연주자였다. 악기연주로는 부족했는지 1900년대 초에 Henri는 부업으로 클라리넷 공방(工房)을 열었고, 사업에 점차 자신을 얻어 아예 직접 제작업에 뛰어 들었다.  

한편, Alexander는 자유의 땅, 신천지 미국으로 건너와 Boston symphony, Cincinnati symphony, NY philharmonic orchestra 등의 쟁쟁한 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아서 수석 클라리넷 연주자로 맹활약을 하였다. 그런 한편으로는 사업수완을 발휘해서 뉴욕시에 작은 소매점을 열고는 France에서 자사제품을 수입, 판매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하니까 운도 따랐다.  

1904년 미국 St. Louis에서 열린 '국제악기박람회'에서 Selmer의 클라리넷이 대망의 '금메달'을 획득! 세계적인 명품으로 Selmer의 이름을 드높이는 결정적인 계기를 맞게 된다. 이후, Alex.는 날로 커지는 Henri의 사업을 돕기 위해 1918년에 미국생활을 접고 Paris로 금의환향하였다.

이때 Selmer는 미국에서의 독점판매권을 Alex.가 그의 제자이자 극장 Musician이었던 George Bundy에게(헐값에) 넘겼다. Bundy는 한 마디로 땡! 잡은 거다.(후에 Bundy는 Selmer USA company를 설립하여 France selmer의 부품을 수입, 그 유명한 American selmer 제품을 조립 생산함과 동시에 자체 Brand인 Bundy selmer를 만들게 된다)  

1910년~1920년 사이에 Selmer는 주 종목인 클라리넷에다가  Oboe와 Bassoon을 추가하여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그간 주문품만을 간간히 생산하던 색소폰의 가치와 향후의 시장성을 정확히 예측하여 1922년에 마침내 최초의 공식Series제품인 'Model 22'를 탄생시켰다.

날로 커가던 Selmer사의 색소폰 사업은 1928년에는 Adolphe sax의 색소폰 공장을 인수하여 본격적인 대량 생산체제를 갖추었다.

1941년에 Henri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인 Maurice가 가업을 승계하여 새로운 전환기를 맞은 Selmer는 2차 대전의 혹심한 불황기를 어렵사리 잘 넘기고는, 근대 색소폰 Mechanism의 표준이라 할 'Balanced Action' Series가 본격적으로 판매(1936년부터 생산)되면서 세계최고제품의 확고한 기반을 잡게 된다.  

드디어 1954년에 역사적인 명품 'Mark vi'가 나오자 전 세계의 연주자들은 이 악기의 우수성에 경악을 금치 못하였고, 50년이 넘게 정상의 권좌에서 군림하면서 오늘날 동방의 조그마한 나라, 어느 이름 없는 동호인 하나가 이글을 쓰기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3. Selmer의 악기 군단(軍團)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이름이 잘 알려진 전문연주가들 중에서도 자신이 애용하는 악기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경우가 무척이나 많다. 물론, 비행기 기장(機長)이 비행의 공학적인 원리나 복잡한 기계, 전자 System을 알아야 하고, Golf선수가 Golf Club의 탄성(彈性)이나 물리학적 원리를 꿰뚫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안다면 더 좋은 것 아닌가?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 글을 쓰는 본인이 절대로 맹목적인 Selmer 추종자는 절대로 아니고, 더더구나 Mark vi 이외에는 악기도 아니라는 논리는 더더욱 아니라는 점이다.

고전명품은 당연히 소리가 좋고 잘 길들여지긴 했어도, 음정이 불안 할 수도 있고 운지(運指)가 불편한 단점도 있다. 그리고 당연히 악기의 질도 천차만별로서 신제품보다 실패할 위험부담도 그만큼 크다는 것도 정확히 직시(直視)해야 한다.

그렇지만 확실한 현실은 Modern Jazz의 본고장인 미국과 일본의 전문연주가 상당수(약 80%라함)가 사용하고 있는 악기가 바로 Mark vi 이며, 지금 이 시간에도 동호인들 사이에서 가장 활발하게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고, 또 뜨겁게 논쟁의 주제가 되고 있는 유일한 악기도 바로 Mark vi 라는 것이다.  

1) Selmer의 제품 개발기
Selmer가 색소폰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04년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여러 실험 과정과 전시용, 홍보용, 주문제작용 등을 약18년 정도(Serial no. 1~749)만든 다음에 최초의 공식 Series 제품을 만든 것이 1922년에서 1925년 사이에 만든 Model22 (1922~1925,S#750~4450)이다.

이 모델은 Henri selmer의 자필사인과 각종 문양 등 아주예술적인 조각과 세공기술을 자랑했으며, 색소폰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한 고급 소비자를 현혹하기에 충분하였다. 이어서 Model26(1926~1929 S#4451~11950)이 본격적인 대량 생산 되었고, 26은 22에 비해 다소 무거운 소리가 나게 해서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에 발을 맞추었다.  

Selmer의 좋은 악기 만들기에 대한 도전은 이다음의 세 종류(Cigar cutter/Super sax 1930~1933 S#11951~18700, Radio improved 1934~1935 S#18701~21750)에서 집중된다.

이들 제품들이 Selmer가 1920년대에 색소폰제품 시장에서 업계의 Leader가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어서 1936년부터 역사에 남을 획기적인 제품들이 출현하게 된다.  


2) Selmer의 전성기
1936년에 개발된 Balanced Action(1936~1947 S#21,751~35,800)과 Super Balanced Action(1948~1953 S#35,801~55,200)은 Selmer의 전성기의 서막을 연 제품이다.  

이후부터 현재까지 Selmer가 만들고 있는 명품들의 표준모델이 된 것도 바로 이 Balanced Action(BA)이다.  

1950년대에 들어서 Buffet(Dynaction)나 SML(Rev.C)등의 제품들이 경쟁에 뛰어 들 때까지 BA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으며 특히 화려한 문양(紋樣)이 멋진 지금도 귀하게 여겨지는 Vintage 명품이다.  이어서 1954년에 이 글의 주인공 Mark 

 

 

3)  Selmer의 안정기
이후 vi의 후속모델인 Mark vii(1974~1980 S#220,801~315,500)이 개발되었으나, 너무나 화려했던 조상 탓에(?) 크게 빛을 못보고 생을 마감했다 

1981년도부터는 너무나 치열해진 국제적인 경쟁(특히 일본의 YAMAHA)을 감안, Super80 Series1,2,3(2,3는 현재까지 생산, S#315,501~ )를 생산, 판매하기 시작하였다.  

Super80 Series도 역시 Mark vi의 복원 모델로서 개발되었으며 그래도 vi에는 못 미친다고 판단한 Selmer사는 2000년에 Balanced Action 과 Mark vi의 순수 복원품인 테너용 Reference 36과 54를 새롭게 개발하여 시판을 개시하였고, 몇 년 전부터는 앨토용도 제작을 시작했다.  

 

 


4. 최고의 명품 Mark vi(이하 '6')  


1) '6' 의 특징(Serial no./제작년도/모델구분) 
     55,201~220,800  1954~1974   (Alto & Tenor) 
     55,201~365,000  1954~1981   (Soprano,Bariton & Bass) 
     55,201~378,000  1954~1985   (Sopranino)  

위의 자료에서 보듯이 '6'는 1974년에 생산이 끝나고 Mark vii으로 명함을 바꾸었지만, Alto와 Tenor이외의 모델들은 Super Acion 80 모델로 바뀔 때 까지 '6'의 명패를 그대로 달고 다녔다.  

이전의 모델인 Super Balanced Action 에서 각종 Key의 모양과 조작 Mechanism을 훨씬 부드럽고 편리하게 개량하여 한 단계 Upgrade 시켜 탄생된 것이 바로 '6' 이다. 

'6'는 색소폰 시장에 소개 되자마자 프로연주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게 되고, 이후 3선, 4선 개헌을 거쳐서 장기집권을 하게 된다.  

'6'의 특장(特長)은 여러 가지로 서술될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a.가장 효율적인 인체공학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근대 색소폰 형태의 표준 모델이 된 점(구조) b.가장 중요한 음색, 음질, 음향 등이 타의 추종을 불허 하는 점(성능) c.재질이 워낙 튼튼하고 좋아서 잘 손상되지 않을 뿐 아니라, 만일 심하게 상해를 입는다 해도 쉽게 수리가 가능 하다는 점(재질)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6'는 20년의 통치기간동안에 시대적인 요구와 자체적인 기술개발에 따라 조금씩 제품의 질(質)을 변화 시켜 왔는데, 대체적으로 1965년을 분기점으로 한다.  

초기에는 예쁘고(약간은 어두운) 고른 소리, 즉 클래식 취향에 맞는 편이었지만 점차 미국시장을 겨냥한 밝고 Powerful한 소리의 Jazz적인 악기로 변화 되어 갔다.  

색소폰이란 악기는 500개에 달하는 부품의 결합과 3000번이나 되는 공정을 거쳐야 비로소 완성이 되는 것으로서, 최첨단 자동화 시대인 지금도 수공(手工)이 많이 가는 편이다. 그러니 그 옛날 '6'의 시대에는 더 더욱이나 사람의 손이 많이 필요했다. 게다가 주문 수제품이 많았기 때문에 악기마다 특징도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제품개발의 큰 흐름은 일관성이 있었는데, Serial no. 8만 번대(1958~1960)부터 Neck의 내경(內徑)이 약간씩 넓어지기 시작해서 클래식과 Jazz에 모두 효용이 있는 악기로 개선되어 간다.  

10만5천 번대(1963년대)에 오면서 Neck의 내경과 Ring의 디자인이 다시 작은 변화를 보였는데, 아주 밝고 약간은 거친 소리의 다양성을 갖게 된다.  

13만 번대가 되면서 다시 한 번 Neck의 내경이 조금 더 넓어져서 연주하기도 훨씬 더 쉽고 밝은 소리가 나게 되었는데, 13만 번 대에서 15만 번대(1965~1968년)의 제품들을 '6'중에서도 최고의 명기(名器)시대 라고 한다.  

15만 번대가 지나면서 '6'는 약간씩 재질(Metal)이 변화 되어서 이전보다 무게가 조금 가벼워 졌다. 이에 따라 소리 또한 밀도(密度)있고 간결했던 장점이 약화되어 소리는 커졌지만 음향의 짜임새는 조금 줄어들었다.  

따라서 요약을 한다면 대체로 15만 번대 이전의 전기 모델들이 좋은 점수를 받는다.

그렇지만 일부 연주자들은 오히려 소리의 파워가 좋은 후기(後期)에 생산된 '6'를 더 선호하기도 해서 18만8번대 에서 19만2천 번대(1971년)와 20만2천 번대(1972년)의 제품을 최고로 치기도 한다.  

이 문제는 연주자 본인이 선호하는 음색(音色)이나 추구하는 음악의 장르에 따라 판단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이견(異見)이 있다.  

일설에 의하면 '6'의 재질이 이렇게 뛰어난 이유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에서 쓰인 탄피와 총신, 포신 등을 섞어서 만들었기 때문이라서 그렇고, 더 이상 못 만든 것은 '6'생산용 기계(Mold)가 다 닳아서 그렇다고도 한다.  

결론적으로 '6'를 굳이 그 쓰임의 용도에 따라 평가해 본다면 다른 악기, 즉 Big band용으로는 Conn의 M 시리즈가 나을 수도 있고 순수 Jazz용은 King의 Super 20, 클래식용은 Buescher의 Aristocrat이 더 좋다 할 수도 있다.  

그러나 '6'는 각기 필요한 용도에 따라 고르게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말 그대로 종합 평가에서 최고의 악기이다. 

 

2)American selmer(A6)  

'6'편을 마무리 하면서 'American selmer(A6)'를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 

 

France제 Original Selmer의 부품을(때에 따라 반제품 상태로) 수입해서 조립, 생산한 미국시장용 Made in france selmer를 American selmer라 한다. 따라서 Mark vi인 경우에는 약칭으로 American vi, 더 줄여서 A6라고 부른다.  

앞에서 설명 했지만 Selmer는 미국 시장을 본격적으로 개발 하면서 보다 미국적인 악기, 즉 Jazz에 맞는 악기를 만들 필요를 느껴서 A.selmer를 제작하게 되었다. A.selmer는 Bundy가 독립적으로 미국 내에서 미국산 재료와 미국인들의 손으로 만든(지금도 만들고 있는)Selmer USA 제품과는 완전히 다르다.  
Selmer가 A.selmer를 처음 만들기 시작한 것은 Super Balanced Action 시대(1948~1953)다. 이때부터 알금알금 미국내 Bundy의 악기공장(Elkhart,Indiana)에 보내져서 양키들의 입맛을 맞추어온 Selmer는 '6'시대에 와서 본격적으로 A.selmer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후 F.selmer와 A.selmer는 각기 개성을 자랑하며 시장을 석권해 왔는데 소비자의 Needs에 따라 각기 선호하는 것이 다른데 우리나라에서는 대체적으로 A.selmer를 높이 평가한다.  

그런데 한 가지 어려운 문제는 악기의 외관을 보고서 A6 인지 F6 인지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A6가 F6에 비해서 색이 좀 더 짙고(Rose gold) 문양도 훨씬 화려한 편이다. A6는 Powerful한 소리가 장점이어서 Jazz의 본고장 미국인의 취향에 맞았다.  

A.selmer가 완성되는 과정을 보면, 프랑스에서 미국 Indiana주(州) Elkhart의 공장으로 보내진 물건은 도착 즉시 Bundy가 고용한 장인(匠人)들에 의해서 우선 완전히 분해된다. 그다음 복잡하고 철저한 검사과정을 거친 다음 문양도 조각하고 Lacquer칠도 새로 한 뒤 재결합 되어 완성품이 된다.  

완성된 악기는 하나하나 Test를 해서 가장 뛰어난 최고품은 Selmer의 후원을 받는 전문 연주자용으로 쓰이고, 그 다음 등급품은 NY이나 LA의 대형 점포용으로 판매가 되고, 그 나머지가 일반 Shop으로 공급 된다.  

이러한 역사를 가진 색소폰의 명품 '6'는 Selmer사를 아니 세계의 색소폰 시장을 대표하는 주전선수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이 시간에도 전 세계의 각종 색소폰 경매 Site와 악기점에서 또는 동호인들 간에 가장 따끈따끈하게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 글쓴이 대전윤민호재즈색소폰 재즈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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