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필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살면서 감동적인 사연을 들은 적도 적지 않다. 어느 경찰서장님에 관한 일화다. 그 분은 젊은날 한때 당진경찰서 경무계장으로 근무하셨다. 근무연수가 종료되어 서울로 발령이 났을 때 경찰서 기능직 여직원이 찾아와 조그만 선물을 내밀더란다. 여직원이 준비한 선물은 다름아닌 만년필이었다. 기능직 여직원이 만년필을... 명품은 아니었지만 상의 포켓에 넣고 다니며 꾸준히 애용하셨단다.
십삼년 후, 그 분은 서장이 되어 옛날의 당진경찰서로 내려가게 되었다. 기능직 여직원도 변함없이 재직중이었다. 하루는 그녀를 만나 생각나는 게 있어 포켓의 만년필을 꺼내 보여줬단다. 그러면서 십삼년 전 자신에게 선물로 준 만년필을 기억하느냐 묻자 여직원이 말없이 눈물을 흘리더라고... 만년필에 관해 들려주시는 서장님은 수식과 억양의 고저가 없는 덤덤한 어투였다. 전별의 아쉬움을 만년필로 대신한 여직원의 발상이나 만년필을 십삼년동안 간직하신 서장님의 단아한 성품이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만년필을 화두로 내심 훈훈해지는 마음이었다.
'雜記 > Pen 혹은 文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구장 (0) | 2011.04.15 |
---|---|
펜의 힘 (0) | 2011.03.30 |
만년필에 관한 끝없는 발상 (0) | 2011.02.18 |
코발트 블루(Cobalt Blue) (0) | 2011.02.06 |
설 명절과 만년필 (0) | 2011.0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