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참 좋다. 고향 욕골 쑥버덩 언덕이 들썩일 것 같은 날이다. 어제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더니 돈대위*에서 돋나물 뜯는 중이라신다. 저녁때 전화 드렸을 때에도 오후에 다시 나와 뜯는 중이라고... 돋나물 물김치는 봄철 식단의 빠질 수 없는 몫이었다. 그 옛날 사각 밥상에 둘러앉아 아버지와 나, 동생들... 이렇게 단촐한 반찬이나마 행복했던 시절을 회상해본다. 우리에게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고향에서의 삶이었다. 일철마다 논밭으로 불려다녔지만 마음은 늘 푸른 꿈에 충만해있었다.
도시에 살면서 내 몸에도 콘크리트 냄새가 짙게 배었다. 도시 생활은 늘 예기치 못한 변수가 기다리고 있다. 하루 업무가 실적으로 시작해서 실적으로 끝난다. 동료는 선의의 경쟁자가 아니라 응징할 수밖에 없는 적이다. 그를 이겨야 내가 산다. 늘 앞서 나가야 한다. 주위엔 곱지 못한 시선도 있다. 시기, 질투... 이런 생활에 회의를 느낀지 오래다. 그래 나는 늘 고향으로의 회귀를 꿈꾼다. 거기 자연과 벗하며 나귀 한 쌍에 방견 몇 마리 데리고 살까 한다. 나귀 타고 청양 장에 갈 때 약수터 다녀오는 용규가 차를 내려 악수를 청할지도 모르겠다.
차와 나귀가 서있는 광원(曠原) 길로 아지랑이는 피어오르고 멀리 서편 산자락의 뻐꾸기소리 뜬금없이 들려올 것이다.
본문 '돈대위' 설명 :
'돈대위'는 고향 지명의 하나다. 돈대(墩臺)는 경사면을 절토(切土)하거나 성토(盛土)하여 얻어진 계단 모양의 평탄지를 옹벽으로 받친 부분을 말하는데, 분수나 연못 혹은 화목(花木) 등이 조성되는 정원시설로서의 것과 성곽이나 변방의 요지에 구축하여 총구를 설치하고 봉수시설을 갖춘 방위시설로서의 것으로 구분된다. 내 고향 지명 돈대는 전자의 것으로 추정되고 군사적으로 구축된 돈대는 강화도의 것들을 연상하면 이해가 쉽다.
내 고향엔 백제와 관련된 지명들이 많다. 백제군병이 주둔했던 '둔터골'이란 지명이 있고, 군사들의 말이 사육됐던 '양마장(養馬場)'이 있다. 옹기를 구웠던 '옹기점골', 사기를 구워냈던 '사기점골'... 장군의 말이 떨어져 죽었다는 언덕엔 거대한 마총(馬塚)이 있다. 백제수복 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됐던 시기에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함락된 후 3년- 병마들의 무기와 각종 장비를 만들었던 대장간 자리는 요즘도 큰물이 휩쓸고 갈 때마다 탄석 같은 속살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 위쪽 '용난골'이 부여읍을 내려다 보고 있어 일대가 군사적 요충지로 활용됐을 가능성이 높은데, 이곳을 넘어 청양군과 경계하는 '나령리(羅嶺里)'와 만난다. 나령리 뒷산의 험준한 배경으로 볼 때 백제 잔병들이 신라군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벌이지 않았을까 추정된다. 나령리라는 지명의 암시하는 바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나령리 넘어 청양을 지나 예산 임존성(任存城)과 닿는다. 임존성은 백제수복운동의 근거지로 평가받는 곳... 하지만 내분이 일어 쌍수중 맞수가 암살당하면서 백제부흥운동은 막을 내린다.
참고로, 과거 문교부의 왜곡된 역사를 통해 백제 멸망기 의자왕이 삼천의 여단(女團)을 거느리고 피폐한 말년을 보낸 걸로 묘사됐는바 이는 대단히 잘못된 역사관이다. 역사는 승리한 자의 몫이듯이 백제를 점령한 신라로서는 민심을 흡수하기 위해 의자왕을 깎아내릴 수 밖에 없는 처지였을 것이다. 삼천궁녀는 무슨 삼천궁녀냐? 의자왕 또한 아주 훌륭한 한 나라의 통치권자였다.
'餘談 > 음악의 세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Where have all the Flowers Gone - Peter, Paul and Mary (0) | 2011.04.10 |
---|---|
Peter Paul & Mary - Puff the Magic Dragon (0) | 2011.04.09 |
Hotel California - Eagles (0) | 2011.04.08 |
Jane Jane - Peter, Paul & Mary (0) | 2011.04.08 |
Man Of Constant Sorrow - Bob Dylan (0) | 2011.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