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생생리얼

인상 깊은 글

펜과잉크 2011. 8. 24. 22:50

 

 

 

색소폰 연습실과 가까운 수봉공원 산기슭에 <인하찹쌀순대>집이 있다. 몇 년 전부터 이 집에 들러 국밥으로 끼니를 해결하곤 한다. 6천원이지만 맛이 일품이다. 매번 잘 먹고 카운터 사장님께 돈을 지불한 후 정중히 인사드리는 걸 잊지 않았다.

"잘 먹었습니다!"

사장님과 나는 업주와 손님의 관계로 몇 년 동안 낯이 익은 사이가 됐다. 언제 먹어도 맛좋은 국밥이었다.

 

오늘 오전,

경상도 출신의 후배 직원이랑 근무하면서 국밥을 사주고 싶었다. 영주에서 올라와 총각으로 살고있는 후배에게 든든한 국밥을 사주면 내 마음 또한 뿌듯하리라. 그래 후배에게 국밥이 괜찮느냐 묻자 흔쾌히 좋단다. 나는 차를 몰아 수봉산 기슭 <인하찹쌀순대>집으로 향했다.

 

몇 년 동안 나 혼자 출입해온 식당에 처음으로 제복 차림으로 근무용 차량을 몰고 간 것이다. 예의 아무렇지 않게 국밥 두 그릇을 시켜 아주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식사 도중 서빙을 보는 아주머니가 사이다 한 병과 컵 두 개를 내려놓으며 그냥 마시란다. 그 분은 창밖의 사장님을 가리켰다. 사장님이 지시하신 모양이었다. 사장님은 지난 몇 년 간 얼굴만 익혀온 내 직업을 알고 뜻밖이라는 생각을 하셨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동안 매번 사복으로 깎듯이 인사하고 들어가 깎듯이 인사만 하고 나왔으니 말이다.

'아! 저 직업을 가진 분 중에도 저렇게 겸손하고 예의바른 사람이 있구나.'

앞으로도 나는 그런 말을 듣고 싶다.

 

식당을 나오면서 파라솔에 앉은 사장님께 고개 숙여 인사 드렸다.

"사장님, 음료수 잘 마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자 환갑이 훨씬 넘은 사장님이 의자에서 황급히 자세를 바꿔 정중히 인사를 받으신다.

 

아래 사진은 <인하찹쌀순대>집 벽에 붙어있는 문구를 찍은 것이다. 언제 읽어도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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