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도끼질

펜과잉크 2013. 5. 31. 00:58

 

 

 

박수동 화백의 대표작 <고인돌>을 즐겨 읽던 시절, 주인공은 석기시대의 남녀였다. 아랫도리만 살짝 걸친 청춘남녀가 산야를 종횡무진 누비던 만화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으리라 믿는다. 김유정의 <봄봄>에 등장하는 쑥맥처럼 투박한 이미지의 남자 주인공과 언제나 머리에 꽃핀을 장식하고 등장하는 여주인공은 <고인돌>의 백미를 장식하는 인물들로, 이들은 곧잘 자루가 달린 돌도끼를 들고 다니며 사고를 쳤다. 돌도끼보다는 돌망치라 명명함이 정확할 것이지만 어쨌든 시대적 배경을 감안할 때 상당히 진보된 도구라 할 수 있겠다. 서두에 박수동 화백의 <고인돌>을 꺼내는 이유는 다름아닌 도끼를 화두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려는 의도에서다.

 

  

 

 

 

우표로 발행된 <고인돌>의 남녀 주인공. 이들도 훗날 귀촌하여 아들 딸 쑥쑥 낳고 행복하게 살았을까? 돌도끼가 인상적이다. 고인돌 남성의 상징으로 대변되는 트레이드 마크다.

 

                                    

 

 

 

 

 

출처 미상의 돌도끼. 마추픽추 보초병이 스페인 군대를 검문할 때 겁주던 무기가 아닐까 싶기도...

 

 

 

 

 

 

 

 

도끼질이라 말을 하면 천박하게 들릴까? '이간질' '싸움질' '노름질' '삿대질' '오입질' '서방질' '화냥질'처럼 말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 또한 아름다운 우리말이다. 천박하다고 할 게 아닌 것이다. '성기'라고 표현하는 것보다 '밑쑤시개'라는 표현이 얼마나 순수한가. 좆지갑... 이건 좀 거시기한가?

 

과거 미국의 카터 대통령 취미가 도끼로 나무찍기였다. 울창한 수림의 거목 아래서 간편한 옷차림으로 밑둥을 향해 날선 도끼를 힘 가진껏 찍는 기술이었다. 고도의 집중력과 숙련된 기술을 요하는 도끼질은 고목의 밑둥을 찍어 쓰러뜨리기에 그리 오랜 시간을 요하지 않았다. 찰스 브론슨의 구겨진 미간을 연상시키는 카터의 도끼질에 힘없이 거꾸러지던 육중한 거목이 생각난다.

 

시골에서 태어난 사람들에게 도끼질은 일상의 방편이었다. 도끼질을 사전적으로 풀이하라면 '통나무를 모탕에 괴어놓고 도끼를 내리찍어 화목을 확보하는 일련의 과정들'이라 할 수 있겠다. 장작감으로는 참나무, 소나무가 최고로 꼽힌다. 화력(火力)이 세어 아궁이에 몇 개비 집어넣으면 금세 혀를 내두르며 화룽화룽 타올랐다. 구들을 아주 그냥 싹 녹여 없애버리겠다는 기세로. 밤나무를 많이 심는 촌락에서는 밤나무 고목도 화목으로 쓴다는 말이 있으나 밤나무는 가스를 내뿜어 몸에 해롭다는 설이 전해진다.

 

 

 

 

                                                        고사목은 생나무보다 도낏날이 쉽게 먹히지 않는다.

        

 

 

 

 

 

한때, 휴가를 받아 외지로 향하면 차에 도끼를 싣고 이동했다. 산중 어디 말라 비틀어진 고사목을 골라 도끼질을 하려는 마음에서였다. 언뜻 보면 미친놈 지랄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개인적으로 도끼질은 엄연히 정당화된 행위로 인식된다. 내 눈엔 널따란 필드에서 쇠몽둥이를 휘두르는 '골퍼'라는 사람들이 오히려 이상하다. 실내 마루바닥에서 타이트한 차림으로 딱딱한 공을 둘두르르 굴려 타켓을 쓰러뜨리는 볼링 회원들도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니 도끼질하는 사람을 낯설게 보지 마라.

 

 

 

                                                 오리지널 한국형 도끼(대장장이표 hand made)

                               

 

 

 

 


장작을 쪼갤 때 휘두르는 도끼는 재래식 대장간 수제품이 최고다. 생긴 게 뭉뚱그려진 형태의 도끼는 자루마저 어설퍼 보이지만 장작을 쪼개 날리는 데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 도끼라는 게 날에서 대가리쪽으로 각(角)이 험할수록 장작에 먹히는 힘이 세다. 그렇지 않은가! 독일 헬코사의 바리오 도끼처럼 값을 높이 부르는 외제 도끼는 두께가 얇아 아웃도어 게임(Outdoor Game)에서나 요긴한 것이다. 아웃도어 게임에서의 도끼질은 장작을 패는 쪽이 아니라 통나무를 가로 잘라 날려버리는 시합이니 '열어젖힐 開' 원리보다는 '끊을 斷' 개념에 가까운 것이다. 당연히 몸통이 날렵해야 한다. 

 

잘 생긴 도끼를 보면 거구의 육중한 힘발이 생각난다. 그리하여 나도 어느덧 도끼를 닮아지고 싶은 것이다. 생긴 건 같잖아도 그 안에서 내뿜는 괴력은 동한기 모탕의 통나무를 팍팍 날려버리지 않는가? 한 방 내리꽂을 때마다 허공으로 피융피융 튀어오르는 장작의 파편들은 묘한 카타르시스을 동반한다. 더께지어 응어리진 무엇이 팍팍 튀어 날아가는 듯한 짜릿함...


아까 잠깐 아웃도어 게임에 대하여 논했는데 캐나다, 미국, 뉴질랜드 같은 나라에선 오래 전부터 스포츠로 정착이 되었다고 한다. 미국에선 아웃도어 게임을 즐기는 인구가 수 천만명을 헤아린다 하니 놀라운 일이다. 단순히 도끼로 통나무를 찍어 날리는 종목만이 아니라 인듀런스(Endurance : 직경 1미터 가량의 통나무를 톱으로 써는 게임), 혹은 핫소(Hot Saw : 전기톱으로 직경 1미터 가량의 통나무를 잘라 3조각을 만드는 게임), 스피드 클라임(Speed Climb : 밧줄만으로 높이 20여미터의 나무 기둥을 오르는 게임)이 있다고 들었다. 

 

그 뿐 아니다. 물에 띄운 통나무 위를 달리는 붐런(Boom Run), 물에 띄운 통나무 위에서 상대를 떨어뜨리는 록로링(Log Rolling), 혹은 스피드 클라임처럼 기둥에 올라가 기둥 끝에 붙은 나무조각을 잘라내고 내려오는 트리토핑(Tree Topping)같은 것들이 있다. 전자에 언급한 스피드 클라임, 인듀런스, 핫소, 스프링 보드를 함께 치르는 팀 릴레이(Team Relay)까지 다양하다고 한다.

 

 

 

아래 도끼는 손도끼로써 야영할 때 화목을 확보하는데 좋을 것 같다. 특수부대 출신의 캠퍼가 텐트에서 홀로 잘 때 침낭 머리밭에 호신용으로 두고 자면 안성마춤이겠다. 멧돼지 혹은 예상치 못한 외부 침입자가 있을 때 호신용으로 휘둘러 멧돼지 혹은 침입자를 일격에 물리치는, 말하자면 군대용어로 인마살상용 도끼라고 보는 게 적당하리라.  

 

 

 

 

도끼질에도 요령이 있으니 자칫 방심했다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도끼질이 숙달되지 않은 사람은 작업을 시작하기 전, 주위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도끼가 빗맞아 옆으로 날아갈 수가 있으니 말이다. 자신의 발등으로 튈 수도 있다. 그래 한 번을 내리찍더라도 마음을 가다듬어 일타(一打)에 절단낸다는 각오로 실행에 옮겨야 한다. 애들 장난하듯이 건성으로 했다가는 옆에서 꼬리치는 강아지 두상을 함몰시킬 수 있는 게 도끼질이다. 이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한국형 대장간표 핸드 메이드 도끼는 반드시 날이 서야한다는 논리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요는 도끼질하는 주인의 실력에 있는 것이다. 무딘 날의 도끼로도 참나무 장작을 처마 밑에 가득 쌓아놓는 고수들이 수두룩하다, 산골에 가서 보면.

                                     

 

 

 

 

 

문득 그 옛날, 마당가에서 땀 흘리며 도끼질을 하던 추억이 떠오른다. 눈이 오거나 바람 부는 날, 군불에 요긴한 참나무 토막을 모탕에 놓고 퍼렇게 날선 도끼를 뒤통수께로 넘겼다가 두 팔에 힘을 모아 냅다 타원으로 내리찍으면 괴어있던 장작이 두 쪽으로 '퍽' 쪼개졌다. 장작의 결은 처녀의 가슴처럼 눈부시다. 쪼개어진 화목을 주섬주섬 모아 허청 공간에 보기좋게 쌓아놓고 겨울에 대비하거나 즉석에서 부엌 아궁이 군불감으로 활용하면 된다. 아궁이로 들어간 장작은 용광로처럼 혀를 내두르며 씩씩하게 잘도 타올랐다. 가끔 불티를 톡톡 쏘아 날리기도 하면서...

 

"엇, 뜨거!"

소리 치면 부뚜막 일을 보던 어머니의 면박이 잇따랐다.

"이놈아, 잠바에 구멍 뚫린다."

그럼 또 그랬다.

"묵은 감자 없유?"

"감자는 다 타고 숯불에다 묻어야 허는 거여. 지금 넣으면 그게 어디 남아 나겄냐?"

"밥 먹고 묻었다가 오줌 마려울 때 나와서 먹으게유."

"잠들지나 말거라, 이눔아..."

 

 

 

월동준비에 바쁜 촌로.

 

 

 

 

겨울을 앞두고 처마 밑 가득 장작을 쌓아두면 일용할 양식을 쌓아놓은 것만큼이나 배가 부르다. 아랫목이 따뜻하면 배가 고파도 서럽지 않은 게 시골의 문화 아니던가.

                                           

 

 

 

 

 

도끼를 차에 싣고 다니다가 오해를 받은 적도 있다. 랭글러 지프에 소프트 탑을 씌워 몰고 다닐 적에 후미 트렁크에 도끼를 세워 실었더니 경찰관이 검문을 하는 것이었다.

"아저씨, 아저씨, 잠깐만 세워 봐요."

"왜 그려유?"

"잠깐만 세워 보셔요."

경찰관은 후미 짐칸을 가르켰다. 거기 하늘을 향해 서있는 도끼자루를 범죄용으로 의심한 모양이었다.

"절때루 그런 사람 아녀유. 도낏날을 보시먼 아시겄지먼 오직 나무 쓰러뜨릴 때에만 써먹는 거여유. 나무 찍을 때에만 꺼내유."

일껏 설명을 해줬다. 그랬더니 경찰관이 점잖게 이르는 것이었다.

"가만히 뉘어가지고 다니셔요. 바짝 세우면 타인에게 혐오감을 줄 수 있으니께요."

그래서 그 후로는 계속 뉘어가지고 다닌다. 꼭 필요한 물건처럼 써먹을 때만 세우려고...

 

휴가를 받아 고향에 가면 검산골 수림으로 들어가 웃통 벗고 아름드리 고사목 밑둥을 찍어 날려버리겠다. 세상 시름 다 잊고 도끼질에만 전념하리라. 그 순간 나는 로렌스 소설 <채털리부인의 사랑>에 나오는 클리포드가(家)의 산지기가 부럽지 않으리. 에잇, 조만간 도끼 싣고 떠나야겠다.

 

 

 

 

 

                        도끼에도 명품이 있다.

                             

 

 

 

 

 

 

 

                                                                             정선에 숙영지를 구축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