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이 싫어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남자들의 군대이야기입니다.
남자인 제 입장에서도 정말 더럽게 듣기 싫을 때가 있어요.
하지만 군대이야기도 덤덤히 풀어쓰면 읽을만합니다.
군복무 경험담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한층 고무시켜
거룩하고 영광스럽게 보이려는 과시욕만 아니면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습니다.
구룡령* 얘기를 해야겠습니다.
구룡령은 천리행군을 하면서 넘었습니다.
절기상 사월이었으나 비가 내려 쌀쌀한 기온이었습니다.
다들 흠뻑 젖은 채 월정사와 상원사를 지나 오대산 정상 비로봉을 넘었습니다.
와지선에서 간단히 석식을 해결한 후 바로 구룡령 길에 올랐지요.
구룡령 정상으로 향하면서 눈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대략 8부 능선부터는 설원이었습니다.
젖은 몸이 오그라들어 일부 탈수증을 보이는 전우가 생겨났고,
그래 다들 걷는 건지 자는 건지 혼미한 의식으로 앞의 전우 군화발만 열심히 보고 따를 뿐이었습니다.
구룡령 아래 협곡 촌락에 도착한 건 새벽이었습니다.
조그만 학교 운동장에 집결 했는데 갈천분교라 하더군요.
교실이 달랑 두 칸 뿐이었습니다.
숙직자에게 사정하여 교실로 들어가 침낭을 깔고 세 시간 가량 몸을 녹인 후 전부 기상을 했습니다.
아이들 등교시간이 임박한 때문이었지요.
학교를 나와 곧장 건너편 산속에 비트를 팠습니다.
다른 중대와 귀대 일정을 맞추기 위해 갈천리에서 이틀을 머문다는 얘기였어요.
저는 비트 안에서 오후 내내 자다가
저녁 무렵
배낭에 넣어간 책 -오혜령 님의 수필집으로 기억함- 을 들고 갈천분교 교정으로 들어섰습니다.
운동장 모퉁이 고령의 벚나무 아래 콘크리트 벤치가 있음을 기억해둔 때문이었지요.
얼마쯤 읽었을까요?
햇살이 다소 쌀쌀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거긴 아직 봄이 완연하지 않은 산곡이었습니다.
저는 몸을 추스르고 밴치에서 일어섰습니다.
그러면서 누군가 저는 바라보는 느낌에 시선을 돌렸습니다.
아아, 교무실인지 양호실인지
조그만 교사 창가에 여선생 한 분이 서서 제 쪽을 빤히 바라는 게 아닙니까?
저는 순간 무엇에 들킨 사람처럼 몸둘 바를 몰랐습니다.
여선생님의 눈엔 푸른 제복의 군인이 벤치에서 책을 읽는 모습이 색다르게 보일 수도 있는 노릇이었지요.
전역을 하고,
세월이 흘러 극장에서 <닥터 봉>이라는 영화를 감상할 때였습니다.
주인공 한석규와 김혜수가 강원도로 여행을 떠났다가
차가 고장나서 인근 분교로 들어가
하룻밤을 동침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교정이 어디서 분명히 본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곧 무릎을 쳤습니다.
그 옛날, 천리행군을 하면서 몸을 녹인 갈천분교 바로 그 교사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침낭을 깔고 잤던 교실에서 영화의 크라이막스가 전개되고 있었던 거지요.
'아아...'
저는 눈가를 훔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세월이 더 흘러 아들과 함께 찾았을 땐
분교가 폐교되어 강원북부교직원연수원으로 활용되고 있었습니다.
근무자가 나와 따뜻한 어조로 이방인을 맞아주었습니다.
그 분께 지난 일화를 들려주고 꼭 다시 오겠다 말씀드렸지요.
돌아서 오는 길엔 자욱한 안개 미립자들이 수시로 전방을 가로막았습니다.
뇌리엔 책을 읽는 제복의 군인과 창문 틈으로 훔쳐보는 여선생님의 수줍은 모습이 크로즙됐습니다.
양양에 닿을 때까지 온통 그 생각뿐이었습니다.
* 구룡령(九龍嶺) : 홍천군 내면과 양양군 서면의 분수령으로 해발 1,013m
구룡령 정상에서 바라본 양양쪽 전경으로 멀리 영덕호(湖)가 보입니다.
1900년대 일제가 임산물과 광물을 수탈하기 위해 산을 깎고 길을 냈다고 합니다.
지금도 철광석을 날랐던 삭도와 콘크리트 잔해, 녹슨 강철케이블이 남아있습니다.
당시 철광석을 캐느라 홍천과 양양의 젊은이들이 많이 다치거나 죽었다고 합니다.
1984년 4월, 갈천리에 체류하면서 팀원끼리 루트를 개척할 적에도 본 기억이 납니다.
갈천분교입니다.
사진엔 나오지 않지만 왼쪽으로 고령의 벚나무가 있었고 그 아래 벤치가 있었죠.
교사(校舍)의 건축양식으로 보아 아마도 일제시대에 지어진 분교 아닐까 추측됩니다.
그 이유로 갈천리 위쪽 구룡령쪽에 철광석을 캐던 광산이 있었던 때문입니다.
도로 오른쪽 학교가 끝나는 지점에 양양에서 들어오는 시내버스 종점 주막이 있었습니다.
막차가 들어오면 운전기사와 안내양이 주막집에서 일박을 하고 아침 일찍 첫차로 출발했습니다.
전우들은 운전기사와 안내양이 각기 다른 방에서 자느냐, 한 방에서 자느냐를 두고 내기를 걸기도 했지요.
일본식 건물의 갈천분교. 영화 <닥터 봉>의 촬영장으로도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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