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태평가'를 들으며

펜과잉크 2007. 5. 13. 11:36

 

어제 경부고속도로는 그야말로 주차장이나 다름 없었다. 지방에 일이 있어 13시경 강남 반포에서 출발했으나 고속도로가 꽉 막혀 오도가도 못하는 형편이었다. 기흥휴게소까지 한 시간 넘게 가면서 졸음이 쏟아져 광장에서 10분 가량 자고 다시 출발하여 오산 못미친 지점까지 가니 17:00가 넘어 있었다. 도로 전광판엔 정체 구간이 수시로 표시되었다. 몸도 마음도 녹초가 되어 고속도로를 빠져 나왔다. 고속도로 사용요금 2,400원...

 

오산에서 천안 가는 국도로 향하다가 송탄에서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핸들을 서해안고속도로로 향했다. 천북 톨게이트로 진입하니 이번엔 상행선이 꽉 막혀 있었다. 고속도로가 사람 약 올리는 것 같아 은근히 부화가 났다. 화성휴게소에서 주린 배를 채우노라니 누가 어깨를 툭 친다. 직원들이다. 나도 웃고 직원들도 웃었다.

 

몇 년 전,

충남 홍성인가 서산인가에서 전국노래자랑이 열릴 때였다. 키가 자그마한 30대 초반 처녀 하나가 무대에 나와 민요 '태평가'를 부르는데 어찌나 구성지게 부르는지 관중들은 물론이요 시청자였던 나도 시선을 집중하고 들었다. 노래를 부르면서 그녀는 무대 위를 자유롭게 다니며 춤을 췄다. 얼굴도 예쁘고, 몸대도 예뻤다. 옷도 아주 예쁘게 입었던 기억이 난다.

 

노래가 끝나고 사회자 송해 어른이 그녀를 붙잡았다. 알고 보니 그녀는 어렸을 때 교통사고를 당해 두 다리를 절단한 장애자였다. 두 다리를 의족으로 사는 그녀는 사법고시 준비생이라고 밝힌 후 '인생사, 짜증을 내어 무엇하고 성화를 내어 무엇합니까? 나름대로 준비하면 기회가 주어질 겁니다.'라고 생기 발랄한 톤으로 말을 하여 객석으로부터 무수한 박수를 받았다. 그녀는 그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나? 성화를 내어서 무엇하나?'

어차피 때가 되면 뜻한 바 이루어지게 되어 있는데 마음만 급하게 먹어 대수인가?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느긋하게 살다보면 기회가 오기 마련...

 

대전 서구 탄방동 한가람 아파트 맞은편에서 색소폰 연습장을 크게 운영하는 김주남 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시서 '어디쯤이세요?' 물으셔서 '고속도로 때문에 성질 나서 다시 올라가는 중입니다'라고 했더니 특유의 여유로 '하하하' 웃으시며 '다음에 오세요'하신다. 

'그럼요. 다음에 가야지요. 꼭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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