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커피타임

펜과잉크 2007. 6. 24. 13:32

 

창 밖 대기가 우중충하다. 1960년대 초 한국 여성으로 처음 독일로 유학을 떠났던 고(故) 전혜린은 우기 깃든 대기를 ‘횟횟한 잿빛 하늘’로 즐겨 표현하곤 했는데, 정말이지 하늘을 보니 잿빛임이 분명하다. 잿빛은 앞서 언급한대로 우중충한 이미지와 결부된다. 그리하여 내면도 명상보다는 우울 쪽으로 치우치게 된다.

 

며칠 전,

홍주가 올린 글에 다양한 댓글이 달리는 걸 보았다. 나도 오늘은 그런 형식의 글을 하나 올리기로 한다.

 

나의 지론, 굳이 인생철학 측면에서 하나를 말하라면 가장 어려운 여자를 꼽으라면 ‘처남댁’과 ‘아내의 친구’들이다. 이들과는 길게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고 개인적인 자리도 공유하고 싶지 않다. 정말 어렵고 낯선 대상들이다.

 

주변 사람들 중엔 처남댁과도 수스럼 없이 어울리고 배우자의 동창 모임에 불려나가 함께 끌어안고 브루스 같은 춤을 추는 경우도 있는데 내 입장에선 선뜻 행할 수 없는 영역이다. 아니 그런 예를 떠올리기에 앞서 나로선 처남댁이나 아내의 친구들과 가까이 하고 싶지 않다.

 

위와 같은 이유로는 상호 수스럼 없이 대하다 보면 상대를 쉽게 보는 경향이 한국인들의 속성 중 하나여서 나중엔 아무렇게나 대해도 되는 것처럼 이상한 농담도 주고받는데, 내 입장에선 바로 그런 것들이 질서 없이 아무렇게나 이루어져선 안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얼마 전에 연수동 셋째 처남집에 시골 사시는 장모님이 오셨다기에 갔더니 나보다 두 살 많은 둘째처남댁이 공무원들의 불친절 사례를 말하다가 장모님(그녀로선 시어머니) 앞에서 ‘씨발놈들’ 어쩌고 하길래 속으로 ‘뭐 저런 년이 다 있나?’하는 생각과 함께 앞으로 상면을 자제해야겠다는 다짐을 굳히기에 이르렀다. 그 소리는 나를 들으라는 소리로 밖에 풀이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말이 나온 김에 우리 처갓집이 김해 김씨 후손인데 조선 후기 양반사회가 붕괴될 당시 돈 주고 양반문서를 사서 편입을 한 하류 집안 출신인지 성분들이 썩 좋지가 않다. 장인어른의 형제들이 3형제이신데 장인어른과 자손들만 온전할 뿐 둘째어른은 칠십 평생 잡범 행세(예를 들어 남의 인삼밭을 뒤져 뿌리를 캐어 팔다가 걸려 절도범으로 구속)로 결혼조차 못한 채 감방만 드나들었고, -최근엔 처갓집에서 시골 부지에 집을 지어줘서 기거하는데 정부에서 독신 노인에게 지급하는 월 37만원의 생활보조금을 3-4만에 탕진하고 담배 사 달라 조른다 함- 옆구리에 대형 녹음기만 있으면 세상 걱정 없는 사람처럼 사는가 하면, 그 아래 막내어른은 평생 이혼만 다섯 번인가를 한 난봉꾼 같은 분이라, 나로선 당최 이 집안이 제대로 되어 먹은 집안인가 의아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닌 것이다.

 

예를 들어 그 집안이 양반인가 상놈인가를 보기 위해선 족보의 서열도 좋지만 조상님들의 배우자 성씨를 보면 간단하다. 좋은 예로 우리 전주 류가 집안(청양과 은산에 한정)처럼 배우자 성씨들이 파평 윤씨, 전주 이씨(할머니), 광산 김씨, 함평 이씨(어머니), 경주 김씨, 한산 이씨(큰어머니), 성주 이씨, 청송 심씨, 양천 허씨 같은 경우라면 크게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겠다.

 

여기서 한 가지 언급할 게 있다. 원래 천민은 성씨가 없이 개똥이 돌쇠 떡쇠 삼월이 등 이름으로만 불리다가, 1909년 일제의 민적법 시행으로 양반성씨로 위장할 수 있었던 종놈들이 일제의 민족분열정책에 편승하여 자신들의 입지를 보전하기에 이르렀다는 설이 있다. 그러니까 조금만 추적해 들어가면 양반인지 여부를 파악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웃기는 일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60년대까지도 호적 없는 집안이 수두룩했다고 한다.

 

아무튼 리더도 없고 정통성으로 믿어지는 특별한 근거도 없는 집안은 한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다음 글을 쓰기 위하여 이만 줄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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