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안을 놓고 '옳다' '그르다'는 식의 단정적인 즉답만 노린다면 그 또한 편견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천태만상의 세상에서, 그야말로 똑같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판에 개개인의 의견은 각기 그 나름의 고유한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상식과 통념에 미치지 못하거나 정도를 초월하는 파격적인 부류라면 달리 주목받을 수도 있겠지요.
흔히 기독교인들은 '하느님'을 '하나님'으로 부릅니다. '하느님 아버지'가 아닌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저는 '하느님 아버지'도 '하나님 아버지'도 없는 '고향집 아버지' 뿐이지만, 어쨌든 그것이 그들 세계에서 항용(恒用)되어 온 이상 새삼스레 '하느님 아버지라 하시오' 한들 그들이 순응을 할까요? '하느님은 없고 하나님만 있을 뿐이다'라고 주장할지도 모릅니다.
종교적인 영역을 논하자는 건 아닙니다만, 여의도 무슨 교회에 적을 둔 조 아무개 목사라는 분이 1980대 초반 다음과 같이 설파하셨다 합니다.
"하나님께셔 이 땅예 위대한 영도자를 내려 주셔셔…."
하지만, 오늘날 1980년대 초반 집권자를 '위대한 영도자'로 평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비록 그들만의 존경이지만- 그 역시도 세상을 바라보는 눈에 오류가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논할 필요가 있을까마는 당시 '조'씨를 추종했던 많은 신도들은 감복(感服)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아버지, 이 땅예 위대한 영도자를 내려 주셔셔 대단히 감샤합니다. 아멘' 했을 것 아닌가요?
며칠 전, 제가 올린 글로 말씀들이 많은 걸로 아는데, 어찌 보면 그럴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 글에 동조하는 분도 계시고 반대 의견을 피력하신 분도 계신데 어느 쪽이든 대등하게 다루어져야 할거라는 판단이 섭니다. 제 글에 반대 의견을 내주신 분도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이지요. 따라서 올려주신 글들을 빼놓지 않고 고루 정독했습니다.
새삼 부연하여 그 글을 정리하자면 '어지간히 갖춰진 실력으로 대중 앞에 나서자'는 뜻으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볼 땐 노인들 앞에서 색소폰 분다고 '봉사'니 '위로'니 강조하는 건 재고(再考)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것이 곧 '봉사'의 정의가 될 순 없기 때문입니다. 진정 노인들 봉사하기 위해 색소폰 불러 가십니까? 사과 상자라도 들고 가시는지요? 혹시 그곳 관계자들로부터 귀빈 대접받으며 무대에 올라 2-3곡 연주하고 내려오는 게 고작은 아닌가요? 그리고는 따로 2차로 모여 보신탕에 소주잔 기울이는 뒤풀이를 해보신 적은 없었는지…. 그렇다면 봉사가 아니고 동호회 임시 모임이나 정기 모임일 뿐이지요. 봉사를 빌미로 한 술자리 말입니다.
일전에 대전의 동창과 통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녀는 수 차례 재활원 같은 곳으로 봉사를 다닌 전력이 있었습니다. 그 날 우연히 다음과 같은 질문을 건넸지요.
"봉사활동을 하면서 애로사항이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면 말해 줘."
그랬더니 다음과 같이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몇 시간 동안 청소하고 세탁하고 지체아들 목욕도 시킨다. 어느 지체아는 때를 밀어주는데 애절한 시선으로 아래를 가리켜서 보니 그것이 바짝 발기해 있더라."
그러면서 투철한 각오와 정신이 아니면 실천하기 힘든 일이라 했습니다. 물론 그녀만의 시각에서 나온 얘기지만, 진정한 봉사는 어느 정도 자기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고통이 따를 때도 있을 거란 짐작을 했습니다.
경험담 하나를 적겠습니다. 수 년 전의 일입니다. 제물포 역전 인천남중 근처 주택가에 거주하는 지인이 유명한 셀마-6를 구입하셨다하여 구경하러 갔습니다. 그 분이 불어보라 하시더군요. 불어봤습니다. 소리가 잘 났습니다. 이번엔 지인이 불었습니다. 역시 소리가 잘 났습니다. 저와 지인은 서로의 소리에 취해 뿡뿡대며 두 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누가 벨을 누르는 것이었습니다. 다름 아닌 이웃집 할아버지셨습니다. 언뜻 팔순쯤 되셨을까? 백발의 머리는 이리저리 뽑혀 겨우 잔재로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지인이 그 분을 반겼어요.
"웬일이세요? 할아버지…."
"응, 자꾸 뭔 소리가 들리는 거 같어서 왔어."
그러자 지인이 다시 말씀 드렸지요.
"아 예. 할아버지, 이거 섹스폰이라는 건데…. 혹시 이거 아세요?"
할아버지는 아무 말씀이 없다가 조용히 악기 쪽으로 가셔서 이리 저리 한참 살펴보시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전 할아버지가 범상치 않은 분이라 느껴졌지요. 그리하여 그 분이 하시는 대로 가만히 있었습니다. 지인도 마찬가지였어요. 우리는 다만 할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볼 따름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쇼파에 있는 목걸이를 거시고 색소폰을 입에 무셨습니다. 그리고 가늘게 떨리는 입술로 프랑크 시나트라의 명곡
훗날 지인을 통해 들은 바로는 할아버지는 수 십 년을 인천시립악단에 계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지인은 20년 넘게 이웃하며 살면서도 할아버지가 음악을 하시는 분이라는 걸 전혀 몰랐다고 해요. 그저 혼자 방에서 뿡뿡대고 연습만 해왔다는 얘기였습니다.
만일, 만약에 그 할아버지와 비슷한 전력의 양로원 어른이 제 지인 같은 사람을 보셨다면 다음과 같이 읊조렸을지도 모릅니다.
"음…. 모냥 좋고, 자세 좋고, 악기도 좋네. 그런디 어디 가서 좀 다듬고 오면 좋겄구먼. 처음부터 다듬어야 헐 소리여. 그러고 저 앞에 있는 것 좀 치웠으면 쓰겄구먼. 505인지 707인지 허는 거 말이여. 당최 저것 때문에 사람 얼굴을 볼 수가 있나…. 저거 없으면 연주를 못허는 모냥이지? 처음 나온 사람부터 지금까지 저 앞에만 달라붙어서 석불처럼 굳어 갖고 연주하는 폼이 죄다 똑같다 이 말이여. …저 사람은 부들부들 떨기까지 허네."
MBC FM 95.9MHZ 최유라 조영남의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에서 최유라 씨가 아래와 같이 말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마 이 세상 가수들이 연주자들만큼만 연습하면 출세하지 않을 가수가 없을 것입니다. 연주자, 그 분들을 보면 하루에 몇 시간씩 연습에만 몰두하지 않습니까? 진정 본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부단히 연습을 하여 어느 정도 갖춰진 실력이라면 30-40명 앉아 계신 노인정이든 소외계층 모자원이든 결코 시비 거리가 될 수 없겠지요. 바깥을 삼가고 안으로만 다니면서 과거 어느 집단의 캐치플레이어처럼 '우리는 陰地에서 陽地를 指向한다'는 식의 뉘앙스를 풍기는 사람들이 좀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인용과 예가 잦습니다만 경험담 하나만 더 하고 글을 맺겠습니다. 오래 전에 목욕탕에 갔을 때, 연세가 지긋하신 시각장애자(장님) 두 분이 대화를 나누더군요. 해외여행지를 놓고 행복한(?) 설전을 벌이고 계셨습니다.
한참 대화를 나누다가 한 분이
"중국보다는 하와이가 훨씬 나아. 하와이로 가자구. 하와이 훌라춤이라는 소리도 있잖여."
그러자 한 분이 응수하시더군요.
"하와이? 하와이에 볼 게 뭐 있다고 하와이소리를 혀쌌는 거여?"
그렇습니다. 우리를 모를 것 같은 이 세상엔 의외로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한국에선 3.5명만 거치면 다 아는 사람들이라는 말이 있는데, 본 취지와는 좀 다르다 치더라도 어느 정도는 갖춰서 '물건다운 물건'을 내놓자구요. 평생 505 반주기 앞에 납작 붙어서 시종일관 굳은 자세로 '연주'할 건 아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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