餘談/음악의 세계

웰빙시대의 색소폰(3) - 인천소리고을

펜과잉크 2007. 6. 3. 13:49

 

 

[색소폰OO 기고문]

 

 

 

현재 전국적으로 색소폰 동호회가 수 십 개로 추정되고, 앞으로도 그 수는 고무적으로 증가할 것이 유력합니다. 동호회 회원들도 각양각색이지요. 다양한 분들이 단지 색소폰이라는 매개를 통해 통일된 형태로 나타납니다. 때로 정기 모임을 갖고 야외 연주회를 여는가 하면 관공서에서 개최하는 행사에 초청되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색소폰나라 지역게시판은 '서울·경기' 지역을 애용합니다만 수도권에도 적지 않은 동호회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인천도 마찬가지이지요. 인천엔 '인천소리고을'과 '미추홀'이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습니다. 오프라인에서 활동하는 노인 위주의 실버악단도 있는데 여기선 변론으로 하겠습니다.

인천소리고을은 2001년경에 발족되었습니다. 얼마 전 회장으로 선출된 이송의 님이 제6대 직(職)을 맡았으니 어언 6년이 흘렀으나, 초대 조주현 회장께서 1년 넘게 직(職)을 수행한 점으로 햇수로 7년이 되었습니다.

인천소리고을의 회원은 색소폰을 좋아하는 분들로 구성되어 있으나 음악을 전공하신 분 혹은 전문 연주자도 여럿 계십니다. 제4대 이일하 회장께서 기악(클라리넷)을 전공하셨고, 제3대 이종헌 회장님도 오랫동안 외길을 걸어오신 분입니다. 제5대 박경수 회장님도 예외는 아니지요. 순서가 바뀌었습니다만 초대 조주현 회장 같은 경우는 소프라노 색소폰을 통해 민요를 구성지게 뽑아내는 특이한 주법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전자의 분들은 프로 연주자들이시고, 제3대 회장이었던 저와 현 제6대 회장 이송의 님은 순수 아마추어입니다.

색소폰에 있어서 개인적으로 프로와 아마의 구분을 지으라면 연주 실력을 들고 싶습니다. 최소한 '대중 앞에서 505 반주기의 도움 없이 자유 자재로 주법을 구사할 정도의 실력'이라면 프로라 稱해도 큰 흠결(欠缺)이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대중 앞에 서서 악보 없이 연주할 수준이라면 어느 정도 경지에 도달했다고 봐도 지나치니 않을 테니까요. 반면 아마추어는 아직 그 정도에 도달하지 못한 셈이지요. 저 역시도 혼자 연습할 땐 악보 없이 가능한테 대중 앞에선 아직 한번도 반주기 없이 연주해본 적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선을 넘기가 대단히 어렵더군요. 저의 위와 같은 진단은 총론(總論)의 정의가 아닌 각론(各論)적 측면을 담고 있으니 확대해석을 금합니다.

과거 안중근 색소폰 교실에서 함께 배웠던 강 아무개 님이 들려주신 경험담입니다만 어느 직장 송년회에 초대되어 연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 일찍부터 3곡을 달달 외우다시피 연습을 했다고 해요. 한데 막상 무대에 나가 연주하려하니 눈앞이 캄캄하여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더랍니다. 끝내 양해를 구하고 대기실로 가서 반주기를 들고 나와 설치한 후 연주를 마감 지었다고 합니다.

방향이 빗나갔습니다만, 인천소리고을은 한때 인천을 연고로 한 프로야구 SK구단에서 문학야구장 1층에 연습실을 내어줄 정도로 파격적인 지원을 받으며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SK구단 측에서 경기 전 '승리 기원 연주'를 제공받는 조건(?)으로 공간을 내어준 것이지요. 하지만 매번 이 약속을 지키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회원들이 각자의 연습실을 따로 갖고 있는 마당에 야구장 1층 연습실을 이용한다는 게 쉽지가 않았습니다. 밤중에 거기까지 차를 몰고 가는 것도 일이려니와 과거 그 터가 공동묘지였다는 설이 파다해지면서 야간엔 음산해지기까지 해지는 외진 연습실을 찾는 발길이 뜸해졌습니다. 결국 제가 회장을 맡으면서 SK구단과 결별하다시피 하여 오늘날 연습실을 철수하는 결과로 이어졌지요.

 

SK구단도 돌이켜볼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습실 내어줬다고 가끔씩 찾는 회원들을 무시하는 투의 눈빛이나 경솔한 발언은 적절치 못했다는 판단입니다. 회원들이 오갈 데가 없어 거길 찾은 게 아니거든요. 그때나 지금이나 다들 개인적으로 소속된 동호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저처럼 따로 연습실을 운영하거나, 학원에 예속되거나, 기업체 관현악단 소속이거나…. 그렇더라도 SK구단의 지원이 있기까지 기여하신 우수창 고문님의 주공(主功)은 긍정적으로 평가될 부분입니다.  

모든 동호회가 그렇지만 인천소리고을도 보완할 부분이 없는 건 아닙니다. 가장 절실한 것은 무엇보다 회원들간의 결속입니다. 회원간의 화목이 없이 다음 단계로의 변화나 진보는 기대하기 어렵지요. 항상 그게 문제입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적시한 바와 같이 '인간은 인간 그 개인의 모습으로 아름다운 뿐, 막상 사람과 사람이라는 복수개념으로 돌입하면 수많은 문제점이 돌출' 되고야 맙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질투·시기·아집·편견 따위들을 '마귀'라 하여, 이른바 '사람과 사람 사이엔 마귀가 존재한다'라고 했는데 어느 집단이든 사람과 사람 사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불협화음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딱히 해결될 수 없는 영원한 과제가 아닐까 짐작됩니다.

A와 B가 만나면 C를 음해 합니다. A와 C가 만나면 B를 음해 합니다. A, B, C가 만나면 D를 음해하지요.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씹고 뜯는 게 인간의 입(口)입니다. 과거 어느 직장 술자리에선 자리에 없는 사람만을 골라 험담하는 통에 아무도 화장실에도 못 가고 끝까지 자리를 고수하며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과거 시골집 마실방에서도 꼭 없는 사람만 골라 험담을 하는 통에 가기 싫어도 자리 지키러 마실 다녔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정작 알고 보면 상호 별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물고 뜯더군요. 결국 쓸데없는 자존심의 싸움이 아닌가 사료됩니다.
"별 것도 아닌 게 까불고 있어."
그런 식이지요. 정작 그 자신도 별 것도 아닌 마당에 말입니다.  

어느 날, 직장에서 조용히 퇴근을 하고 연습실에 가자마자 남 험담하는 소리나 듣는다면 그 또한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당사자는 좀 들어달라는 입장이지만 도통 나와 관계없는 사람들끼리의 감정문제를 청취하는 일도 10-20분만 지나면 스트레스입니다.

세광음악학원에서 2년 간 클래식기타를 수강한 적이 있는데요. 그곳 원장이신 오창원 님은 손가락에 실가락지 하나 끼우지 못하게 하십니다. 물론 그 분 나름의 철학이겠지만 반지 낀 손가락으로 코드를 하면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시며 '미안한데 반지 좀 뺄 수 없을까?' 하세요.

색소폰 연주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연주하는 분의 손가락에 사관생도 임관 기념 링만큼 굵은 반지를 끼우고, 와이셔스 단추를 두 개 정도 풀어 가슴팍 털을 거무튀튀하게 보이도록 하며, 20돈쭝 가량의 금목걸이, 다시 10돈쭝 가량의 금팔찌로 무장하고 연주하는 자세는 순수 동호회 연주에서 지양되어야 할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인천소리고을이 한동안의 침묵에서 깨어나 발군의 실력자들로 재구성되어 과거의 명성(?)을 되찾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회원들간의 잡음이 일소되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만 가급적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자세를 고양(高揚)해나가길 바랍니다. 인천소리고을 뿐만이 아닙니다. 전국의 모든 색소폰 동호회가 좀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해나갈 수 있기를 소망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