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글을 보니 반갑소. 밖엔 비가 내리오. 가끔 천둥도 친다오. 플라타너스 나뭇잎이 비에 젖어 흐릅니다. 비는 아스팔트에 부딪히며 제 몸 부서지는 소리를 내오. 또 천둥이 치곤 하오. 고요한 가을의 횟횟한 구름 사이로 빗발이 무수히 흩어지고 있습니다.
어젠 공동묘지에 다녀왔소. 가끔 가는 곳이오. 차를 몰고 중간 봉우리 언덕까지 올라 아래를 다시 보니 정말 수많은 영령들이 누워 계시더군... 어디서 그리 많이들 오셨는지 말이오. 묘역 여기저기 지난 추석 때 성묘객이 남긴 음식을 찾는 고양이, 까치, 까마귀 같은 애들이 보였소. 재작년엔 노숙자가 과일을 차지하려 지척 고양이에게 돌팔매질을 하더군...
나는 상자 안에서 실버 킹(KING) 20 MASTER를 꺼냈소. 1920년 이전에 나온 핸드메이드로 3번 휭거훅도 없지만 마냥 소중한 놈이라오. 그걸 들고 왔다갔다 바람도 쐬고 입에 대고 불어 제끼니 오관의 찌든 것들이 확 날아가는 기분이었소. 폐부 깊이 맺힌 설움 같은 것 말이오. 맑고 투명한 소리가 가을 하늘 힘껏 날아가 그대가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소.
클릭
아래 사진을 보오. '쓰례기 봉토을 버리지 마시요'라는 페인트 낙서가 재미있지 않소? 한글맞춤법상 열 한 글자 중 네 글자가 틀렸다면 저건 다 틀린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낙서를 유심히 보면서 어쩌면 저 글의 장본인이 지능이 뛰어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소. 일부러 오타를 냈을 거란 추측 말이오. 그렇지 않고 저런 각(角)진 필체로 저 정도의 오타를 낼 수 있겠소? 하긴 뜻만 전달되면 됩니다.
2099. 10. 11 인천 남구 용현1동 주민자체센타 앞
공동묘지에 가면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신기하게도 복잡 미묘한 일상의 잡념들이 일시에 사라지는 기분을 맛보곤 한다오. 심중의 것들을 비워내고 혼자 좋을만큼 있다가 오는 거죠.
끝으로 <배따라기> 김동인이 사랑하는 김경애에게 보냈다는 육필 편지를 올립니다. 멋있지 않소? 내 마음도 저와 같아 이 가을날 짧은 편지 한 통 쓰고 싶은 심정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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