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Pen 혹은 文學

전쟁과 만년필

펜과잉크 2009. 11. 5. 17:28

 

 

 

 

 

 

 

아끼는 책 중에 <LIFE AT WAR>가 있다. 1977년 5월 (주)한국일보타-임라이프에서 발간한 이 책은 304 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전쟁 사진첩이다. 1936년 스페인 내란서부터 1973년 이스라엘과 아랍의 전쟁에 이르기까지의 전쟁 참상을 사진으로 엮었다. 사진의 대부분은 종군기자들에 의해 찍힌 것들이다.

 

이 책엔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 사진도 다수 실렸는바,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장면은 바로 참호 속의 병사 사진이었다. 멀리 오른편 산기슭 와지선으로 포탄에 의한 화재로 추정되는 연기가 피어나는 가운데 전우가 졸고 있다. 잠시 고향 생각에 젖은 것일까? 생각하건대 전장은 양구군 해안면 일대, 즉 펀치볼이 아닌가 추정된다. 아측의 진지에서 내려다 보이는 광활한 분지가 펀치볼과 같다. 병사들의 진지는 아래 사진의 오른쪽 어디쯤 될 것이다. 펀치볼은 마린 먼로가 야구 선수 출신 남편과 함께 공연을 다녀갈 정도로 미국의 중요한 요충지(要衝地)였다. 훗날 김일성이 이곳을 빼앗기고 사흘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김일성이 배가 아파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말은 다른 데서도 연관지어져 들리므로 신빙성에 관한 확신은 할 수 없지만 아무튼 저곳이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점인 것만은 사실이다. 북한 땅굴이 발견된 곳 중 하나도 펀치볼이다.  

 

 

 펀치볼

 

 

 

졸음에 겨운 병사는 왼손에 대검을 쥐고 있다. 병사의 왼손을 잘 보면 환지와 중지 사이 대검을 총구에 착검하도록 부착된 장치가 보인다. 그 아래 컵이 있어 언뜻 국자로 보일지 모르나 대검이다. 컵엔 총탄에 의한 것인지 구멍이 뚫렸다. 벙커 모래주머니 위엔 쌍안경이 놓여졌고 실탄 낱개도 몇 개 가지런히 보인다. 총은 모두 네 자루... 두 명의 병사는 잠시 호를 비운 것 같다. 아니 두 명이 총 네 자루를 맡았는지도 모른다. 전방 개활지(開豁地)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중요한 진지이니 총 네 자루도 있을만 하다. 두 자루의 총에 탄창이 없는 점이 그걸 가능케 한다. 지정된 총만으로는 총열이 달궈지는 현상으로, 두 자루를 번갈아 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둔 추측이다.

 

사진의 하단엔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 미8군과 북괴군과의 전투는 치열한 것이었다. 또한 중공군의 공격으로 한때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8군은 완강하게 버티어 전황은 언제나 일진일퇴를 거듭하고 있었다. 지난 밤만 해도 중공군은 이 방어선 바로 20미터 앞까지 아우성치면서 필사적으로 육박해 왔다. 그러나 미8군 병사들의 수류탄 공격으로 15명의 전사자를 내고 도망갔다. 격전의 밤이 새고 진지에서 쉬고 있는 제19연대 병사 2명. 1951년 6월. 마이켈 루제-

 

마이켈 루제는 종군기자 이름이다. 전우가 탄약 박스 옆에 쪼그리고 졸고 있는 가운데 병사가 만년필로 뭔가를 쓰고 있다. 그의 왼편 벙커 모래자루 틈엔 수류탄이 보인다. 병사는 지금 무얼 쓰고 있을까? 파커로 추정되는 만년필이 눈길을 끈다. 뚜껑과 몸통과 중간 이음새 링을 보면 파카일 가능성이 짙다. 저 시대에 나온 저런 형식의 만년필은 파커가 유일하다.

 

1951년 6월이면 전쟁이 발발한지 일년이 흐른 시점이다. 고지의 날씨가 쌀쌀해서인지 병사는 담요를 덮고 있다. 만년필로 뭘 적고 있는 병사의 야전잠바에도 후드가 장착되어 있다. 단추로 탈부착이 가능한 후드다.

 

 

졸고 있는 전우 곁에서 뭔가를 적고 있는 병사(클릭시 원본)

 

 

 

파카 만년필은 1888년 죠지 파카의 '사람들이 살 수 있는 더 좋은 무엇인가를 위해 만든다'는 신념에 의해 설립됐다고 한다. 1921년 유명한 듀오폴드 모델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1933년 화살표 모양의 클립을 개발했다. 1987년 파카 100주년을 기념하여 듀오폴드 모델을 한정 생산했고 1991년 다시 듀오폴드 오렌지 모델을 출시함으로써 파카 듀오폴드 명성을 굳건히 하기에 이르렀다. 파카 만년필은 1993년 질레트에 인수되어 현재에 이르지만 만년필에 관한 노하우만큼은 여전하다.

  

40-50년대에 유행했던 파카 바큐메틱 만년필 

 

 

 

파카 만년필을 사랑한 역사 속의 인물로는 푸치니가 오페라 <라보엠>을 작곡시 사용했다 하고, 죠지 버나드 쇼가 저서 <피그 말리온>을 저술할 때 사용했다고 한다. 코난 도일이 <셜록 호옴즈>를 집필할 때 썼다고도 전해진다.

 

 

 

 

 

 

 

 

 

 

 

군인으로는 아이젠하워를 비롯하여 맥아더 장군 등이 거론된다. 아래 첫번째 사진은 1944년 6월 5일 미(美) 제101공정사단 506연대 2대대 이지중대(Easy Company) 소속의 대원들을 격려하는 아이젠하워 장군의 모습이고, 두번째 사진은 전함에서 지휘하는 맥아더장군이다.

 

첫번째 사진의 경우만 해도 군복의 불편함 점들이 개선되기 전으로 보인다. 철모에 그물 형태의 위장망을 씌운 점 등이 그렇다. 그물식 위장망은 나뭇가지를 꺾어 꽂기엔 쉬울지 모르나 기도비닉이 요구되는 이동시 주변 장애물 등에 걸려 위치를 노출시킬 약점으로 꼽히는 부분이다. 훗날 이런 점을 개선하여 그물 대신 위장포를 씌웠고 군데군데 구멍을 내어 나뭇가지나 풀을 꽂기 편리하도록 했다.   

 

 

아이젠 하워

 

 

아래 사진은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하는 맥아더장군인바, 인천상륙작전이 있은 1950년 9월의 사진이다. 한국 전쟁은 재래의 전쟁과 마찬가지로 지상전이 중심이 됐고 전차와 비행기의 엄호를 받은 대부대가 한 치의 땅을 걸고 격전을 벌였다. 또한 개인의 독특한 전술이나 재능이 전국을 좌우할 수 있는 그런 식의 전쟁이었다. 맥아더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좋은 예이다.

 

 

맥아더장군

 

 

 

2006년 7월 26일자 <뉴시스>에 보도된 내용을 끝으로 글을 맺는다. 그 해 25일 상반기 경북 칠곡과 전북 정읍 등 4개 지역에서 발굴된 6.25 전사자 유해 64구 합동 봉안식에서 발굴된 유품들이 서울 국립현충원에 전시된 것이다. 여기서도 내 눈을 끄는 대목이 바로 만년필이었다. 전사자 유해와 함께 발굴된 만년필 사진을 보며 전장에 스러져 간 꽃다운 나이의 젊은이들을 생각해보았다. 병사들의 품에 꽂혀 총탄이 난무하는 전장을 누볐던 만년필들... 어쩌면 저 만년필 주인은 하늘나라에서 저 만년필을 통해 뭔가를 끊임없이 얘기하고 싶어할지도 모른다. 저 참호 속 병사처럼...

 

 

6.25 전쟁 발굴품 만년필, 2006년 7월 26일자 <뉴시스> 보도 사진 -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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