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 TV를 켰다가 오래도록 잊지 못할 방송을 시청했습니다. KBS2-TV에서 방영된 '현장 르뽀 <동행> - 엄마, 보고 싶어'였습니다. 박봉관(19세), 박진관(17세), 박시온(10세) 형제에 관한 사연이었습니다. 얼마 전, 부친이 간경화로 돌아가시고 남은 삼형제가 의지하며 살아가는 일상을 담았는데 맏이 봉관이가 어찌나 솔직한지 일류 영화배우 뺨치더군요. 국민배우라는 안성기 씨도 봉관이처럼 진솔하진 못할 것입니다.
봉관이는 동생 둘을 데리고 살아갑니다. 그러면서 5년 전 아버지와 이혼하고 집을 나간 '엄마'를 찾으려 하죠. 일주일마다 관할 계양구청에 들러 '엄마'의 주민등록 전출 여부를 확인합니다. 그러던 중 드디어 '엄마'가 새로운 주소지로 주민등록을 이전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봉관이는 주소를 밟아 떠납니다. 하지만 주소지 일대는 허름한 산동네로 수 십 가구가 움집한 철거 대상지역입니다. 종일 일대를 헤맨 봉관이 앞에 '엄마'의 집으로 추정되는 허름한 가옥이 눈에 들어옵니다.
담당 PD가 '엄마의 집으로 믿는 이유가 뭐냐?'고 묻자 봉관이가 다음과 같이 대답하더군요.
"문에 엄마가 다니신 교회 딱지가 붙었어요. 다른 집은 다들 떠나고 없는데 이 집만은 문이 잠겨 있고 문틈 안에 가재도구가 있습니다. 옛날에 엄마가 말씀하신 교회랑 이름이 같아요......"
'엄마'의 주거지로 추정되는 집 앞에서 봉관이는 하염없이 기다립니다. 하지만 '엄마'는 나타나지 않지요. 새벽까지 있던 봉관이는 지친 몸을 끌고 집으로 향합니다.
이튿날, 배경은 밤 늦은 철거민촌 '엄마'의 집 앞으로 설정됩니다. 봉관이가 용기를 내어 알루미늄 샷시문을 두드립니다. 안에서 인기척이 들리며 문을 여는 사람이 있습니다. 열아홉 맏이 봉관이는 대번에 그 분이 '엄마'임을 알아봅니다. 그런데 '엄마'의 태도가 이상하더군요. 반가워하는 봉관이와는 달리 생뚱맞은 표정으로 '이게 누구야?'하면서 까맣게 잊고 살아온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봉관이가 '엄마, 나야. 나야'하고 말을 하자 그제사 마지못해 '그래.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하는 식이었습니다.
봉관이가 토라진 투로 다그칩니다.
"엄마, 보고 싶었어. 보고 싶어서 이렇게 왔어. 엄마는 내가 안 반가워? 5년 전 헤어진 아들이잖아."
'엄마'는 여전히 무심한 표정이었습니다. 저는 그 분을 보면서 어쩌면 지금 '엄마'는 스스로 냉정을 지키려 발버둥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더라도 5년만에 만난 자식을 대하는 태도가 못마땅했습니다. 자식 아닙니까?
"엄마는 너희에게 더 이상 아무 것도 아니야. 그만 돌아가렴. 다시 찾지마."
봉관이는 그런 엄마가 서운한 모양이었습니다.
"그래? 5년 만에 만난 아들에게 겨우 이런 식이야? 알았어. 두 번 다시 안 올게."
그러면서 핑 돌아서지요. 하지만 봉관이는 얼마 못 가 다시 걸음을 돌립니다. 어떻게 찾은 '엄마'인가요? 그말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봉관이가 아까 그곳으로 갔을 때 '엄마'는 추녀 밑 흐린 불빛 아래 망연히 서 있습니다.
"엄마, 날 이대로 그냥 보낼거야? 엄마의 자식이잖아."
"......"
"한 번만 안아줘."
봉관이는 떼를 씁니다. '엄마'는 여전히 냉랭할 뿐입니다.
"돌아가. 엄마를 찾지 마라. 어차피 이곳은 철거될 거야. 다시 오지마."
"엄마... 아빠 돌아가신 거 알아?"
"......"
"한 번만 안아 달랬잖아. 이렇게 부탁해도 안 들어줘?"
성큼 추녀 아래 '엄마' 앞으로 다가섭니다. 그러면서 '엄마'를 와락 끌어안지요. '엄마'도 봉관이를 부둥켜 안습니다. 피를 짜는듯한 슬픈 울음을 토합니다.
"우리 아들이 이렇게 컸구나. 장하다. ...하지만 이제 돌아가렴. 동생들한텐 절대 엄마 만났다는 말을 하지 마라. ...잘 살아."
거기서 모자는 헤어집니다. 그래도 봉관이는 행복합니다. 그토록 보고싶은 '엄마'를 만났으니 말입니다.
집에선 열일곱 진관이와 열살 시온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진관이는 형이 하루종일 보이지 않은 점에 불만을 토해냅니다. 사실 진관이는 봉관이처럼 '엄마'에 대한 정이 애뜻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을 버리고 나간 '엄마'가 미울 뿐이지요.
화면은 다시 밝게 웃는 삼형제의 영상으로 바뀝니다. 셋이 손잡고 달려 나가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희망찬 미래를 암시하는 분위기입니다. 거기서 '엄마, 보고 싶어' 편은 종영이 되지요. 하지만 방송을 시청하며 홀로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봉관이의 꾸밈없는 대사가 가슴을 울렸습니다. 아마도 방송국 PD가 작성해준 대사를 외웠다면 그토록 진솔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침에 아내에게 들려주다가 또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내는 제 목소리가 가늘게 떠는 걸 알고는 재빨리 손수건을 건넸습니다. 맏이 봉관이... 봉관이의 애뜻한 몸짓을 생각하니 문득 저희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한적한 농촌인 제 고향은 오일장에 나가려면 외진 산허리 돌아 고개 넘고 다시 산기슭 신작로 따라 한참을 걸어야 합니다. 어머니는 파나 걷절이 채소를 다듬어 단으로 이고 멀리 장에 가시곤 했지요. 해가 서산을 바라볼 즈음 맏이 저는 코흘리개 동생들을 데리고 마을 초입 고개에서 먼 산기슭을 향해 하염없이 있었습니다. 장에 가신 엄마를 기다리기 위함이었지요. 어떤 동생은 꾸벅꾸벅 졸고, 어떤 동생은 칭얼대고, 어떤 동생은 무릎에 기대어 동그만 눈망울로 제 얼굴만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그때마다 장에 가신 엄마가 우리를 두고 영영 안 오시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에 떨곤 했지요.
'엄마, 빨리 와. 내일부턴 방 청소도 잘하고, 마당도 잘 쓸고, 물도 잘 긷고, 마루도 깨끗이 닦을게.'
속으로 다지고 또 다졌습니다.
방송을 보면서 한평생 동고동락하신 부모님이 그토록 고마울 수 없었습니다. 저희들을 이렇게 키워주신 부모님 말입니다.
다음 주 토요일 밤, KBS2-TV '르뽀 동행' 시간이 기다려집니다. 그 날 방송에선 금주에 방송된 봉관이 형제 사연이 방영될 것입니다. 저는 봉관이 어머니가 다시 자식들 곁으로 돌아오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자식들과 함께 여생을 사시는 거지요. 막내 아들 이름까지 '시온'으로 지은 걸 보면 독실한 기독교 신자 같은데 하나님의 사랑과 희생을 실천하시는 의미에서라도 꼭 집으로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비록 고인이 되신 분과는 이혼하셨다지만 아이들에겐 세상 하나뿐인 '엄마' 아닌가요? 어린 시온이가 눈에 밟히지도 않습니까? 그토록 잘 생기고 명석한 자식들을 두고 혼자 사신다는 게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용서하시지 않을 거예요. 많은 시청자들이 온정을 보내리라 믿습니다.
박봉관, 박진관, 박시온 형제에게 용기 잃지 말라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부친의 유언처럼 셋이 절대 떨어지지 말고, 늘 기쁘고 슬픈 일들을 함께 하길 바랍니다. 관할 계양구청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봉관이 형제들에게 최대한 베풀었으면 합니다. 예를 들면 봉관이나 진관이에게 직장을 마련해준다든가 말입니다. 다음 주, 11월 22일 01:30분을 기대하겠습니다. 꼭 넷이 재회하여 밝은 웃음으로 화면을 가득 꽃 피워주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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