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날이라, 커서 훌훌 날아 가버린 텅 빈 집에서
둘이서 밥을 먹고, 컴에 계속 앉아 있으려니, 갑갑하고
눈이 피곤해서 작정을 하고 집을 나섰다. 10시 반에
썰물이라고 바다로 가보자는 심산이었다.
제민일보에 가끔 한 번씩 쓰는 제주어 이야기가 있는데
지난 번 삘기와 상동 따먹던 얘기를 써놓고 자료 사진이
없어 낭패를 본 터라, 이번에 쓸 보말(고둥)과 깅이(게)같은
해산물을 잡아다가 반찬해 먹은 이야기를 쓸 요량으로
갔는데, 조금에 가까운 때라 별로 물이 나가질 않는다.
아쉬운 대로 잡아서 찍고 돌아오는데, 찔레꽃이 곳곳에
이렇게 피었다. 생각해 보니, 오랫동안 별도봉에 가지
못했던 거다. 시간에 맞춰 생활을 하지 않다보니, 세월에
한참 뒤져서 따라가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다.
♧ 찔레꽃 사랑 - 양전형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으면
꽃을 피우지 못한다
풀과 나무는 물론 세상 무엇이든
누군가를 미치도록 사랑하지 않으면
꽃이 피어나지 않는다
사랑하는 마음 넘치고 넘쳐 마침내
찢어진 가슴 열며 상처투성이 꽃
왈칵왈칵 구구절절이 피워내는 것
그리고 아픔이 큰 꽃일수록
고웁고 향기 더 나는 것
사랑은 아프게 해야 한다
꽃이 아프게 피어나듯
가슴이 찢기도록 해야 한다
상처는 정녕코 아름다운 것이므로
아, 저 하늬 길목 갯도랑 찔레꽃
한겨울을 얼마나 아파했을까
온몸 가시에 뚫리는 고통 견디며
누굴 저리 활활 사랑했을까
♧ 찔레꽃 - 목필균
넘지 못할 담도 있었던가. 가시로 받쳐 든 잎새로 길을 열고, 설레이는 마음은 꽃잎으로 가린다.
출렁이는 가슴 안에 담을 쌓고, 찔레꽃 한 아름 피워 올려 다가갈 수 없는 세상 속으로 찌르르 향기 뿜어낸다.
네 안에 내가 가시로 박혀, 내 안에 네 향기가 가득하다.
♧ 찔레꽃 - 류종호
이 땅의 외지고 외진
산비탈 돌 틈을 비집고
하얀 소복차림으로
눈 익어 오는 것들
벌 나비 짝해 데불고
다디단 입맞춤으로 젖으며
보잘 것 없는 사랑의 시대
맑게 깨우치는 것들
세상엔 아직도
한 무리의 사랑이 저렇게 펄펄 살아서
짬도 없이 허리 굽힌 하루를
선들바람으로 토닥이는구나
사람아
사랑은 이렇게 가난한 자의 땅에도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오나니
내 사랑을 익히지 않고는
저렇게 펄펄 살아보지 않고는
떠나지 못하겠구나, 죽지 못하겠구나.
♧ 찔레꽃 받아들던 날 - 김용택
오월의 숲에 갔었네
나뭇잎과 나뭇잎 사이로
숲속을 찾아드는 햇살은
아기 단풍잎에 떨어져 빛나고
새들은 이 나무 저 가지로 날며 울었네
바람이 불어 나뭇가지들이
천천히 흔들리고
우리도 따라 나무처럼 흔들리며
마음이 스치곤 했네
아주 작은 자갈돌들이 뒹구는
숲속의 하얀 오솔길
길섶의 보드라운 풀잎들이
우리들을 건드리며 간지럽히고
나는
난생 처음 사랑의 감미로움에 젖었다네
새로 피어나는 나뭇잎처럼 옷깃이 스치고
풀잎처럼 어깨가 닿고
꽃잎처럼 손길이 닿을 때
우리는 우리도 몰래 손이 잡히었다네
아,
숨이 뚝 멎고
빙그르르 세상이 돌 때
다람쥐 한 마리가 얼른 길을 질러가네
따사롭게 젖어 퍼지는 세상의 온기여
새로 열리는 숲이여 새로 태어나는 사랑이여
서로 섞이는 숨결이여
여기는 어디인가
숲은 끝이 없고
길 또한 아름다워라
우리들의 사랑 또한 그러하리
걷다가, 처음 손잡고 걷다가
한 무더기 하얀 꽃 앞에서
당신은 나에게 꽃 따주며 웃었네 하얀 찔레꽃
오월의 숲에 갔었네
그 숲에 가서
나는 숲 가득 퍼지는 사랑의 빛으로
내 가슴 가득 채웠다네
찔레꽃 받아든 날의 사랑이여
이 세상 끝없는 사랑의 날들이여!
바람 불고 눈 내려도
우리들의 숲엔 잎 지는 날 없으리.
♧ 찔레꽃 향기에 쌓인 그리움 - 하영순
모퉁이 돌아돌아
산길 어귀
찔레꽃 향기 초여름 햇살 젖어든 오월
세상에 태어나서
탯줄 떨어진 자리
채 마르기도 전에
하얀 꽃가마 타고 가신 님
그때는
서러움도 그리움도 미처 몰랐습니다
날이 가고
달이 가고
찔레꽃 향기 가슴을 적시면
심장에서 치미는 그리움
목젖을 막아도
그립다. 말 못하고
찔레순 꺾어 씹어 삼키며 참아온 세월
서산에 산 까치 지저귀는데
찔레꽃향기 고개를 넘어
아카시아 꽃잎으로 피리를 봅니다
그리워 그리워서
피리를 붑니다
찔레꽃 하얀 계절에!
♧ 찔레꽃 내 고향 - 槿岩 유응교
멀고 먼 나라로
고향을 떠나
살아 보신 적이 있나요
가난하게 살아도 고향이 좋고
지위가 낮아도 내 부모가 좋고
남루한 옷을 입어도 내 형제가 좋아요.
고향을 떠나 살아본 사람만이
제 심정을 아실 거 에요.
그러나
그리운 고향에 찾아 왔건만
부모 형제 이미 떠나시고
형제는 찾아 볼 수도 없이
고향집이 잡초에 묻혀 있다면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 갈 수 있겠어요.
고향산천 골짜기 마다 개울가 마다
제가 소복을 입고 외롭게
울고 있는 이유를 이제야 아셨죠
부모 형제 애타게 그리며
목 놓아 부르는 제 외침이
애잔한 향기로
바람결에 산천을 헤매는 까닭을
이제야 아셨죠
고향은
외로운 마음의 안식처라고 하지만
흙먼지 속에 엎드려 울고 있는
저를 안아 주세요
전 지금 너무 외로워요.
부디 고향에 오시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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