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한민족과 수달과 족제비

펜과잉크 2005. 7. 1. 10:25

 

수달의 난폭성은 정평이 나있다. 악어까지 공격해서 잡아 먹는다고 한다. TV에서 본 알레스카 수달의 둥지는 입구가 물속에 있었지만 보금자리는 수면보다 높은 땅속이었다. 그러니까 수달은 물속으로 잠수하여 경사진 통로를 따라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보금자리 입구에서 물기를 털어내고 새끼들 곁으로 다가서는 어미를 보며 참으로 영리한 동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고향에 용난골이라는 골짜기가 있다. 용이 승천했다는 지명인데 상수도 저수고(貯水庫)가 있을 적엔 소나 염소를 묶어놓지 못하게 했었다. 자연히 인적과 멀어지면서 숲이 울창했다. 용난골 개천을 따라 가재 사냥을 하다가 수달이 날것을 잡아 먹는 모습과 마주치곤 했는데 마치 사람이 뭘 씹어먹는 것처럼 익숙해보였다. 짐승이란 생각이 안 들었다.

 

근처에 숨을 곳이 많아서인지 어지간한 침입자 앞엔 끄떡도 안하는 눈치였다. 플로리다 동부 해안에 서식하는 수달이 수면에 떠서 배 위에 먹잇감을 올려놓고 식사하는 장면을 TV를 통해 보면서 감탄사를 연발했던 기억이 난다. 그 영악함......  한국의 수달은 야행성으로 알려져 있다.

용난골 수달이 얼마나 난폭했는가 하면 인근 토끼 농장을 공격하여 새끼들을 훔쳐가곤 했는데 대개의 경우 현지에서 죽여놓고 몸의 일부만 떼어가는 잔혹한 기질이었다. 어지간한 토끼들은 수달 앞에서 꼼짝을 못한다는 농장 주인의 푸념이었다. 토끼들 역시 밤에 활동적이니 수달로선 공격하기 좋은 상대이리라.

수달의 영역은 섬진강처럼 널따란 물이 최적이겠으나 내 고향처럼 비좁은 산골 개천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용난골 물줄기에서 서식 가능했던 이유는 아마도 지척의 저수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저수 상류 원천이 용난골이었다. 거리가 두 마장 정도 밖엔 안되는 곳이고 먹이 자원이 풍부해서 가능했으리라 여겨진다. 저수지에서 우렁, 방개를 사냥하는 수달들이 용난골 개천까지 오르내린 셈이다.

민물 개천을 중심으로 수달이 활개를 친다면 육지에선 족제비가 한 몫 단단히 한다. 털 색깔이 다를 뿐 외모나 성질이 수달과 흡사하다. 두 짐승 모두 다리가 짧고 몸통이 길며 꼬리가 비슷한 형태를 띤다. 두상부터 비슷하다. 다들 한 가닥 하는 성질이다.

족제비는 논두렁이나 야산 기슭을 다니며 주로 설치류(쥐, 두더쥐)를 사냥한다. 때에 따라 게를 잡아 뚜껑(등뼈, 外骨)을 열어놓고 만찬(?)을 즐길 때도 있다. 족제비의 식성 역시 수달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미꾸라지, 물방개 같은 것도 잘 먹는다. 족제비는 수달과 같이 난폭한 기질이라 야생 고양이를 만나도 즉각 피하지 않는다.

그뿐이 아니다. 족제비는 닭장을 기습하기도 한다. 주먹 하나 통과할 철망 틈으로 몸을 비집고 들어가 간살대 위에서 다리 한쪽으로 버티고 자는 닭을 훔친다. 한밤중 닭장에서 어수선한 소리가 들려 나가보면 어김없이 족제비가 한 탕 해먹은 후다. 족제비는 둥가리 알(卵)도 깨어 먹는다. 아마 내 고향에서 절도 전과 많은 순서를 따진다면 족제비를 능가할 대상이 없을 것이다.

식성이 뛰어나 축사(畜舍)의 사료 포대까지 갉아먹곤 한다. 족제비가 자기 몸의 몇 배를 도약하여 새끼줄에 매달아놓은 갈치 토막을 훔쳐가는 모습을 본 사람이 있는가? 한 번은 동네 폐가의 멍석말이 속에 새끼를 낳아 기르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어린 새끼가 무척 날쌘 동작이었다. 멍석 아래로 폴짝 뛰어 내렸다가 다시 멍석 속으로 가뿐히 뛰어 들어간다. 족제비도 현대인들처럼 낳는 일에 인색한 목숨이다. 절대로 다산(多産)하는 법이 없다.

눈이 온 날, 시골의 논두렁이나 개천 다리 밑을 홀로 걸어간 발자국은 대부분 족제비다. 언뜻 보면 청설모 발자국 같지만 청설모는 밤에 장거리를 쏘아 다니지 않는다. 무엇보다 청설모는 겨울잠을 자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곰, 오소리, 뱀, 개구리, 다람쥐처럼 말이다. 아무튼 족제비는 눈발 몰아치는 밤중에도 혼자 잘 다닌다.

 

무기름 심짓불 돋는 사랑채 부뚜막에 올라 여물 삼태미를 뒤지며 먹을거리를 찾는 족제비의 모습은 앙증맞기 짝이 없다. 노루귀 쫑긋대듯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피면서 열심히 뒤져 먹는다. 외양간 여물통 아래 흩어진 찌꺼기를 냄새 맡을 때도 있다. 얼어붙은 구정물통 주변을 서성이는 모습도 보인다. 어지간한 구멍은 술렁술렁 드나드는 족제비다.

족제비가 위협을 느낄 때 휘두르는 무기가 무엇인지 아는가? 노린내다. 족제비 노린내는 정말 역겹다. 남미 대륙의 스컹크 위력이 어떤지 모르지만 절대로 코리아의 족제비를 무시 못할 것이다. 어쩌면 족제비는 한민족의 근성을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수달과 연합하면 생태계를 호령할지도…….

한민족의 수달과 족제비가 힘을 합쳐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 놈들을 혼내줬으면 좋겠다.

'雜記 > 이 생각 저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디언 정신  (0) 2005.07.11
산길  (0) 2005.07.07
[스크랩] 밤의 플렛호옴 - 클라리넷 연주  (0) 2005.06.30
추억  (0) 2005.06.28
오디에 관한 회상  (0) 2005.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