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산길

펜과잉크 2005. 7. 7. 10:24

 

"어디 가셔유?"

"어디좀 가유."

"개도 가네유?"

"노상 함께유."

충청 내륙의 인사법이다. 아침 먹고 나선 길엔 개도 따라붙는다. 생긴 건 쥐방울만해도 엄연히 개다. 주인이 가는 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동행한다. 뽕잎 멸구 튀는 풀섶을 지나 마늘 종다리 성근 길을 질러 물꼬와 돌을 뛰고 짚으며 가는 것이다. 길의 끝엔 김달진 옹(翁)이 시(詩)를 읊고 계실지도 모른다.

 

"아따, 산이 검으레하구먼."

짙은 암록색이다. 숲의 터진 틈으로 중천 볕발이 빗살쳐들어온다. 그 길을 간다. 어디쯤 가지에서 새가 운다. 비켜온 콩밭 주인은 이제 까마득한 거리에 있다. 송충이 오줌 같은 게 얼굴에 묻는다. 이슬 젖은 옷을 말려주며 산은 다시 한 번 역동의 기지개를 편다. 안개...

 

세상 천지 눈 뜨면서 씨부랄 개불알 해도 가을이 오면 여느해처럼 산천엔 굵은 열매들로 가득할 것이다. 고향 산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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