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1월 중순을 넘어가는 한겨울에 전역을 했습니다. 서울 동마장터미널에 도착하여 그녀에게 전화를 거니 반가운 목소리로 반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그녀와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아쉬운 작별을 했습니다.
“곧 연락할게.”
굳게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고향은 먼지만 날리는 척박함 뿐이었습니다. 고향집은 두 아우가 군에 입대하여 썰렁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공부를 계속 할까? 어디 시험이나 볼까? 농사를 지을까? 공장에 가서 돈을 벌까? 운전면허증부터 딸까? 어디 가서 죽어버릴까?’
별의 별 잡념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그때 처음 자살을 생각하며 여름방학 때 백마강을 함께 도강하다가 죽은 친구 기찬이를 떠올렸습니다. 그러면서 밤중에 백제대교 난간 위에서 뛰어내리는 상상을 몇 번이나 했습니다.
연일 희망 없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에게 연락을 하려해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머리는 깎지 않았고 수염도 더부룩했습니다. 눈을 뜨면 몽롱한 눈으로 읽다 덮은 책을 펼쳤으며 끼니도 대충 때우는 식이었습니다. 군 시절부터 즐겨듣던 미니카세트를 하루 종일 틀어놓고 음악에 빠져 살았습니다. 정신 나간 놈처럼 끄적이는 시간들도 많았지요. 서울에선 동기 성욱이가 모든 걸 버리고 올라오라는 연락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사랑채 윗목에 놓인 책상 서랍을 뒤지게 되었습니다. 아우들의 흔적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런 저런 잡용품 속에 음악 테이프 몇 개가 보였습니다. 꺼내보니 놀랍게도 귀한 테이프들이었습니다. 나나 무스꾸리와 존 바에즈, 레오나드 코헨, 조르즈 무스타키 같은 사람들의 녹음테이프가 보였습니다. 책에서 읽어 아는 이름들이었지만, 사실 그들의 음악을 들은 게 그때 처음이었습니다. 레오나드 코헨의 테이프를 들으며 금세《Bird on A Wire》에 흠뻑 빠졌습니다. 몽환적 상상에 젖어 듣는 음악은 하루 종일 반복해도 실증이 없었어요. 영락없이 마약에 취한 놈 같았지요. 군대 간 두 아우가 그토록 그리울 수 없었습니다. 얼마 후, 집을 얻어주고 공부를 시켜주겠다는 집을 찾아 고향을 떠났지요.
이번 추석에 고향집 가서 별채방 서재를 훑어보다가 CD 음반 꽂힌 곳으로 눈길을 가져갔습니다. 놀랍게도 거기엔 레오나드 코헨의 음반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음반엔 전역 후에 열병처럼 들었던 바로 그 곡《Bird on A Wire》가 실려 있었습니다.
어젯밤,
밤늦게 아내 차에 동승하고 인천으로 올라오면서 레오나드 코헨의 음반을 틀었습니다. 차가 유구를 지날 무렵《Bird on A Wire》가 흘러나왔습니다. 볼륨을 조금 올리고 아내에게 첫사랑에 대해 조용히 말했습니다.
“당신은 언제부터 사랑을 했어?”
아내는 여고2학년 때부터라고 대답하더군요. 당시 공군 헌병이었던 애인이 학교 교문까지 찾아와 책가방을 들어주며 우산을 받쳐줘 사랑의 감정이 싹텄다고 합니다.
아내에게 첫사랑에 대해 다시 천천히 말해주었습니다. 아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주었습니다.
“만일 그때 내가 자존심 버리고 어떻게든 그녀에게 연락해서 서울로 올라갔으면 우리 둘의 사랑이 이루어졌을지도 몰라. 셋방살이라도 하면서 살았으면 말이야. 난 그녀의 모든 것을 감싸줄 자신이 있었는데 문제는 그녀 앞에 선 내 모습이 자신 없을 것 같았어.”
아내는 동정 어린 말투로 짧게 말했습니다.
“인연이 안 되려고 그랬을 거야.”
오늘 아침,
아들 녀석이 제 삼촌과 인천 CGV에 간다기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차 안에서 레오나드 코헨의 그 음악《Bird on A Wire》
하늘만 빤한 고을에서 오손도손 자란 형제들은 그날 이후 헤어져 두 번 다시 한 집에 모여 살기 어려운 처지가 되었답니다. 그토록 아름답던 첫사랑도 말입니다.
이 시간, 먼 옛날을 생각하며 캐나다 태생 싱어 송 라이터 레오나드 코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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