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아주 특별한 만년필 문화

펜과잉크 2006. 11. 9. 13:17


내게 세계3대 명품 만년필을 꼽으라면 몽블랑(montblanc), 쉐파(sheaffer), 워터맨(waterman)이다. 가격은 별론으로 한다. 만년필을 따지는데 있어 결코 가격이 우선시될 수 없기 때문이다. montblanc은 독일 수제품으로 -대개의 전통 깊은 외국 브랜드는 거의 수제품이다- 아무래도 유럽 쪽에서 인기가 높은 것 같다. 몽블랑산이 4개국에 걸쳐있는 광대한 산세라서 인지는 몰라도 'montblanc' 이라 하면 받아들이는 차원이 다른 것 같다. 여기선 오로지 만년필에 국한하여 논함을 분명히 한다. 참고로 montblanc mountain의 높이는 4810m인 바 montblanc 만년필 펜촉에 각인된 '4810'이란 바로 몽블랑산의 높이를 뜻한다.

 

* vintage montblanc from the 1950's-model 344

 

 

sheaffer와 waterman은 단연 미국 쪽이다. 이 두 브랜드의 역사 역시 상당히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오는 걸로 알고 있다. 국내엔 sheaffer보다 waterman이 많이 알려져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종로의 롯데 본점이나 광화문 교보문보장 혹은 압구정동의 현대백화점에 가면 sheaffer도 쉽게 볼 수 있다. 가격이 문제이겠지만 montblanc에 비하면 저렴하다 사실 montblanc의 단점(?)은 절대 세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같은 모델이라 해도 롯데 본점에서 보는 가격과 남대문 지하상가에서 만나는 가격은 현저하다. 이같은 현상을 두고 업자들은 A/S 같은 혜택에서 정품을 구입하는 게 유리하다 말하지만 국내 montblanc 수입업체인 강남의 '유로통상'에선 모든 몽블랑 제품을 차별 없이 대한다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만년필을 점검 받거나 수리하러 갈 경우 제품의 구입처를 확인하고 A/S에 임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montblanc의 트레이드마크인 만년설(萬年雪) 문양만 정확하면 균등히 접수하여 처리해준다. 하긴 만년필은 치명적인 결함만 아니라면 수리비가 그리 많지 않다.

 

* vintage sheaffer fountain pen

 

 

waterman의 경우도 sheaffer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소장한 waterman 중에서 가장 으뜸을 추천할 경우 에디슨 모델을 내놓고 싶다. 하지만 몸통의 굵기가 동양인 손아귀로선 다소 벅찬 느낌이 있어 오랜 시간 글을 쓸 경우 피로가 따른다는 약점이 있다. 물론 waterman중에도 몸통이 가느다란 제품이 있긴 하다. 하지만 montblanc이나 sheaffer에 비해 전체적으로 무겁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아주 가벼워도 경박한 느낌이 따르겠지만 무게감이 있어도 날렵하게 흘려 쓰는 필발에 제약이 됨을 유념해야 한다. 물론 원고용이 아닌 결재용(사인용) 만년필이라면 오히려 무게감이 있는 게 엄숙히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 Vintage Waterman Silver 452 1/2 Gothic Fountain Pen

                                   

 

 

 어제 모 사이트에서 아주 오래된 sheaffer 만년필을 볼 기회가 있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사람이 내놓은 만년필인데 모두 sheaffer 제품이었다. 두 제품의 펜촉 형태가 모두 내게 있는 모델들이지만 오래된 제품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마음이 끌렸다. 열 자루의 만년필을 모두 구입해도 100달러가 넘지 않는 것이었다. 국제 배송요금을 따져도 10자루라는 점을 감안하면 행운이나 다름없다. 언제 어떤 경로로 저런 만년필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말인가?

 

 

* 오래된 parker 만년필용 ink

 

 

모든 것이 디지털화 돼 가는 세상에 만년필만의 정서를 고집한다는 게 뒤떨어진 발상인지 몰라도 '만년필만의 필감(筆感)'을 난 잊을 수가 없다. 그리하여 고향으로 돌아가면 컴퓨터를 접고 오직 만년필만으로 글을 쓰는 자세를 고집하고 싶다. 더러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오랜 세월 만년필을 애용해온 나로선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는다. 수능과 진학을 앞둔 학생들에게 아담한 만년필 한 자루 선물하는 건 어떨까? 진정 만년필을 아끼고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