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인천 수봉공원에 있는 인천예총 소강당에서 한글날 기념 인천 시민 글짓기 대회 시상식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아동문학가 이정길 선생님을 뵙고 몇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 내 차로 선생님을 뒤풀이 장소까지 모셨다.
일찌기 이정길 선생님이 서라벌예대 출신이신 건 알았지만 故 이문구 선생님과 동창이란 사실은 몰랐다. 얼마 전, 각별한 사람에게 선물하려고 영풍문고에 들러 이문구 선생님 저서를 고르던 중에 흑백사진 하나을 봤는데 김동리 선생님을 중앙에 모시고 이문구 선생님과 이정길 선생님이 서 계신 게 아닌가? 이정길 선생님은 오래 전부터 인천문단에서 활동하시는 내가 잘 아는 아동문학가이시다. 그래 언제 이정길 선생님을 뵙게 되면 이문구 선생님에 대해 여쭤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둔 터였다.
음식점으로 향하는 길에 이문구 선생님 존함자를 꺼내자 이정길 선생님은 고무된 표정으로 음성을 높이셨다. 그러면서 안타까워하시는 것이다.
"문구가 나와 아주 막역했었지. 더 오래 살았어야 하는 사람인데..."
그러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해주셨다.
이문구 선생님은 평소 말씀이 없는 편이셨단다. 가끔 어두운 미소가 안색을 스치곤 했는데 슬픈 가족사에 관한 부분은 남한테 얘기하지 않으셨는 것이다. 그러다가 한 번은 서울 외곽 -이정길 선생님은 지명이 생각나지 않는다시며 '숲이 우거진 곳'이라셨다. 내가 '수목원 아닌가요?'하자 '글쎄? 암튼 기억이 정확하지 않아'하시며 화두를 돌리셨다- 으로 소풍을 갔다가 둘이 함께 걸어오게 되었단다. 아주 먼길을 도란도란 얘기하며 오는 길에 이문구 선생님은 처음으로 가족사에 대해 말씀하시더란다.
"그 친구가 슬픈 어조로 가족사에 대해 들려줬어. 나는 말없이 듣고만 있었지. 당시 친구가 누나네 집에서 학교를 다녔거든."
이정길 선생님은 서울로 오는 길이 멀었다고 회상하시며 그러나 그 길이 전혀 멀다는 느낌이 들지 않더라셨다. 얘기가 좀 더 길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들으셨다는 것이다.
이정길 선생님은 아동문학을 하시는 분이라서인지 심성이 여리고 표정이 밝으시다. 뵐 때마다 인사 드리면 매번 활짝 웃으시며 손을 내밀곤 하신다. 부디 선생님만이라도 오래 사시길 빈다. 오래도록 이 땅의 푸른 새싹들에게 문학의 향기를 전해주시길... 우리나라가 쑥쑥 커갈 수 있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