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고향 생각

콩굴대회

펜과잉크 2007. 10. 16. 11:40

[수필]

 

 

 

 


시골 대목은 양 명절이다. 구정과 추석 때만 되면 텅 비었던 고을에 사람들이 붐비고 온 산천이 시끌시끌하다. 그들은 거반 객지에 있다가 온 신분들로 한때는 고을에서 비비적거리던 목숨들이다. 천생 농업에만 주력하다가 그들의 말대로 '좆도 아닌 농사' 때려치우고 일취월장 객지로 진출해있는 몸들인 것이다.

남자들은 구로공단이나 서울 변두리 목공단지에 있는 신분들이 많았고, 일부 잡화점을 운영하거나 식당 배달부로 일하는 사람도 있었다. 여자들은 수공업 가발공장 종업원으로서 영등포에서 실패 검사하는 수준이었고… 그러나 그런 모습이면 어떤가? 내 누님이 한 시절, 대전의 부잣집에서 식모살이를 했다고 부끄러울 수는 없는 것이다.


산골의 명절이 다가오면 으레 콩굴대회를 열었다. 초입 정자 혹은 회관 광장(마당)에 가설무대를 짓고 예선과 본선으로 나뉘어 성대히 치러졌다. 주최측은 바로 부락 청년회원들이었다. 협찬과 찬조는 은산면엽연초조합, 부여군수리조합, 대동경운기은산영업소, 류인신동물인공수정소, 은산양조장, 형제식당, 사거리정육점, 신신양복점, 바르게살기부여군지회은산면분회 등 다양하게 나뉘었다.

“올해 대회는 예년과 다를 거여.”

“뭐가 다르쥬?”

“최우수자헌티는 순금 한 냥을 준댜.”

“기부금 제일로 많이 낸 사람헌티 자동으로 가는 거 아닌가요?”

“누가 듣는다, 놈아.”


무대는 대충 아무 데에서나 뽑아온 기둥을 사각으로 묻고 동아줄을 걸쳐 널빤지를 얹으면 끝이었다. 무대 뒤편은 멍석을 펼쳐 달아놓은 다음 이장님과 협조하여 동네 복판 전봇대 전기를 끌어와 백열등을 설치하면 되었다.

한편 청년들은 대회 수일 전부터 2인 1조로 자전거를 비비고 다니면서 이 곳 저 곳 안내 벽보를 붙인다. 악사는 기타 잘 뜯기로 이름난 읍내 전파사 사장이 모셔져 오고……. 그는 열 두 줄짜리 기타를 이용복 못지않게 잘 다뤘다. 아무리 화음 악기라지만 기타 한 대 가지고는 부족하니 하모니카 실력 좋은 사람도 여벌로 앉혀놓고 전주와 반주를 주도한다. 요즘처럼 64화음 노래방 악기가 대중화된 사회에서는 한심한 규모이지만 한때 시골에서는 이 정도 가지고도 온 마을 주민들을 무대 앞으로 집결시키기에 충분하였다.

 

밤이 깊으면서 무대 앞은 아랫마을, 중뜸, 윗마을에서 온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타동네 처녀 총각들도 보였다. 월남에서 온 상사 계급장의 야전잠바 차림 김 씨 아저씨부터 윤복희 닮은 날렵한 미니스커트도 서넛 있었다. 방주연처럼 두 볼이 나온 아가씨, 김세레나처럼 눈이 큰 처녀, 조미미를 닮은 합죽이, 박노식 흉내를 내는 가죽잠바, 허장강처럼 건들거리는 검은장갑, 트위스트 김의 작은 체구, 4인조 블루벨즈 청바지를 입은 떼거리, 메를 든 산적풍의 머슴, 거지, 쪽바리, 노총각, 아이…….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큰누나, 둘째누나, 사촌누나, 육촌누나, 팔촌 여동생, 병우 형과 그의 두 번째 마누라…….


콩굴대회는 객지로 흩어진 사람들의 상봉장이기도 하였다.

“얼라? 거기 아랫말 봉만이 동생 아니었어?”

“아, 예. 성님은 제 동창 춘자 오빠 되시쥬?”

“그려. 내가 춘자 오빠지. 그 애는 시집가서 애가 크드막혀.”

“그류? 걔가 언제 시집가서 애가 크드막혀졌대유? 여기서 왔다갔다 허던 때가 엊그저끼 같은디.”

“이 사람아. 만날 청춘인줄 아나?”

“하우스 방울토마토도 여전허시쥬?”

“전국이 방울토마토라 차들이 엉키고 설켜 여기까장 올 새가 없다는구먼.”

그러면서 인사를 주고받기도 하였다.

저 옆 불빛 흐릿한 어둠속에서도 웬 남녀가 회포를 풀고 있었다.

“이뻐졌구먼. 판타롱 바지가 진짜루 어울려. 신발은 양화점 꺼여?”

“오빠는 아직 장가도 안가시구 뭐 하셔요?”

“장가는 혼자 가는 것인감. 이번이 서울 가면 한 번 소개혀 봐.”

“지가 잔업 없는 날 직접 편지 써도 되겄유?”

“직접 당사자 역할을 혀 보겄다는 거여?”

“피차 그게 쉽지 않겄남유?”

그리하여 가령 노총각과 노처녀가 기적처럼 만나 새로운 미래를 꿈꾸게 되는 콩굴대회였다.


“큰누나 잘 챙겨라.”

할아버지 말씀대로 큰 누나 근처에 있으면 금방 이발소 다녀온 놈처럼 생긴 청년이 얼씬거리기도 하였다.

“누나는 누가 좋아?”

“찐빵.”

“하숙생 부른 그 남자?”

“응.”

“난 어려도 김상진이랑 박이남이 좋은디…….”

“박이남은 목소리 좋긴 헌디 사고뭉치여. 선데이서울에 또 어떤 사람 면상을 후렸다고 나왔더라.”

“남진이랑 나훈아는 안 좋아?”

“남진 나훈아는 촌이서 인기이지, 누나 공부하는 도시서는 최희준, 딕훼밀리, 차중락, 진송남 같은 사람들을 최고로 쳐준다니께.”

“문주란의 파란 이별의 글씨라는 노래도 좋던디.”

“이제 중학생 놈이 순 그 쪽으로만 대가릴 굴리누만.”


무대에 불이 켜지고 잘 생긴 청년 하나가 사회를 본다. 사회자의 안내와 지시에 따라 하나씩 나와 노래를 부르게 되는 것이다. 박자 음정이야 틀리면 어떤가. 노래방 기계처럼 사람을 무시하고 저 혼자 가는 게 아니라 중간 중간 반주가 사람을 따라 다니며 박자를 맞춰주었다.


♬~ 낙도오옹강 가강바아라암이 치마포옥을 스치이이며언/ 구운인 가안 오라아버어어니이이이이 소오시이익이 오오오네에/ 크은 애기 사공이며언 누우가 뭐어라아나아/ 어어머니임 그 마알쓰메 수우줍어질 때에/ 에헤에야 데에헤야아 노오오를 저어어어라아/ 삿대에르을 저어어라아


시간이 흐르면서 무대는 뜨거워졌다. 무대 앞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온 동네 어른과 아이들로 시장통이나 다름없었다. 네 다리가 내 다리냐, 내 다리가 네 다리냐는 식으로 앉아 무대 쪽 광경에 넋이 빠졌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담뱃대을 들고 활짝 웃으시고, 할머니는 어머니랑 둘째누나 따라 함께 흥얼거리시고, 동생은 어머니 품에 그 새 잠  들고……. 큰 누나는 여전히 내 곁에 있고, 나는 또 식구들이 다 보이는 아까 그 자리에 여전하고…….


하루가 지나고 이틀, 다시 하루가 더 지나면 본선이었다. 그러나 최종 시상식의 최우수 대상은 여전히 찬조금을 제일 많이 낸 재중이 같은 청년이 차지하였다. 타동네 사람은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플라스틱 바가지나 빨래비누로 족하였다.

“에이, 씹팔! 동네가 뭐 이려? 사람 살 구석이 못되는 것 같구먼. 노래냐고 형편없이 부른 놈헌티 최우수상이라고?”

타동네 덩치가 한 마디 하면 어디선가 동네의 거구들이 슬슬 다가와 분위기를 제압하는 폼이었다.

“이보셔. 작년엔 끝물 수박 한 통씩이였어. 그 때랑 비교허면 천국인 거지. 플라스틱 바가지가 무슨 문제여. 등멱 감을 때 바가지 없어 봐. 소쿠리로 쓰겄어?”  

곧 잠잠해지고 시골 명절의 화려한 콩쿨대회는 막을 내린다. 날이 밝아 지난밤 시끌벅적했던 특설무대 관중석에 가 보면 가령 한 청년을 사모하는 처녀의 친필 편지가 떨어져 있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

학범 오빠, 달은 영롱하고 별은 초롱허네요. 오빠를 향한 제 마음도 반짝여져요. 다름 아니고, 이번 금요일은 새마을공장 잔업이 있으니께 못 만날 거여요. 담 주 토요일 날 봐요. 엄니한테 참빗이랑 고무장갑 사러 간다고 했어요. 지난번처럼 가루고개서 자전거 체인 벗겨지고 허당에 빠지지 말고 조심해서 살살 비비고 와요. 자전거는 다리에 걸어 놓구 앞차로 먼저 읍내 가셔요. 저는 뒤차로 따라가께유. 우체국 담벼락 오뎅 분식집서 만나요. 안 그러면 성요셉병원 골목 양지미용실 옆 전봇대 기울어진 입구 극장 광고지 붙여놓는 게시대 앞으로 오셔요. 거기가 거기니께요. 시간 맞춰서요. 그날은 이쁘게 꾸미고 갈게요. 오빠, 지 마음을 알지요?                

*


눈을 감으면 어린 시절 콩굴대회로 시끌벅적하던 고향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많은 청춘과 그 많은 동무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밤이 되면 온 하늘을 숨 가쁘게 수놓던 별들. 고을 산천에 와락 쏟아질 듯……. 그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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