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끝나고 다시 일상의 업무로 돌아왔습니다. 10월은 휘경동으로 출근해야 할 것 같네요. 아침 일찍 전철을 타고 2시간 가량 달려 회기역서 다시 10분 가량 버스를 이용해야 합니다. 거긴 창 밖으로 중랑천이 흐르지요. 재작년에도 그곳으로 한 달간 출·퇴근한 적이 있는데 어느 날, 멀리 험준한 산세에 하얀 눈이 내렸던 인상적인 기억이 납니다. 운동 삼아 회기역서 지름길로 뻗은 길을 속보로 걸으면 대략 15분 가량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그러니까 버스는 회경여고 쪽으로 돌아가는 셈이지요. 서울로 다니면서 동대문, 청계천, 종로 인사동, 낙원상가에 들렀던 기억이 나네요.
추석날 밤, 고향을 떠나면서 차창 밖으로 올려다 본 하늘은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구름 사이로 쟁반 같이 둥근 달이 온 세상을 환히 밝히고 있었습니다. 저는 갓골 앞 쭉 뻗은 한길 가운데에 차를 세우고 카메라로 열심히 보름달을 찍었습니다만 막상 인천에 와서 보니 게시판에 올릴 정도의 선명도가 아니네요.
먼 옛날, 깜깜한 밤에 절골쪽 모퉁이 길로 사라지던 규일이 모습을 갓골 앞 삼거리에서 바라보던 생각이 납니다. 달이 뜨거나 희끄무레한 잔설 위로 검은 그림자의 규일이 걸어가는 뒷모습이 권혁철 선배님 고향집 모퉁이로 사라지곤 했지요. '야, 환교네 집서 놀다 가자' 하면 '나 먼저 갈게' 하며 홀연히 밤길을 걸어가던 규일이였습니다. 그때 생각이 나서 보름달을 찍었지만 기대만큼 선명하질 않아 아쉽습니다.
가을의 길목에서 '길을 걸으며 불러보던 그 옛 노래는 아직도 내 마음을 설레게 하네'라는 이문세의 가요 말이 떠오릅니다.
지금 창 밖엔 비가 내려요. 김현승 시인의『가을의 기도』를 인용해봅니다.
가을의 기도
김 현 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謙虛)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한 시간(時間)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