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지리에 안터라는 고을이 있습니다. 안터엔 권영돈 임병열 강현봉 상희복 송민희 동창들이 살았지요. 초등학교 5-6학년 시절 영돈이 따라 안터에 갔던 기억이 납니다. 안터엔 돌로 예쁘게 지은 이층집이 있었는데 영돈이가 그 앞을 지나면서 서울서 내려온 부자가 집을 짓고 산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영돈네 집은 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집이었는데 부친이 연로했어요. 영돈이가 막내였습니다. 영돈이 아버지께서 담뱃대를 무시고 저희들을 물끄러미 보시곤 했지요. 집안은 왠지 썰렁했으며 형수님이 계시다고 들었는데 저희가 갔던 2-3번 모두 부친만 계셨습니다. 영돈이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다고 들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권영돈 별명이 '마시'였습니다. '마시'의 뜻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지금도 그는 이름 대신 '마시' 혹은 '권마시'라는 별명으로 더 알려져 있습니다. 이 마시 친구는 시골말로 별중맞은 데가 있어서 각대리 이양현이랑 하루가 멀다하고 싸웠습니다. 참고로 이양현 별명은 원래 '쭈구리 양재기'였는데 줄임말로 간편하게 '쭈구리'라 부릅니다. 뒤통수가 찌그러졌다는 데에서 생긴 별명이랍니다.
1972년 초등학교 5학년 시절의 어느 날, 한 번은 영돈이가 등교를 하자마자 친구들 앞에서 자랑을 늘어놓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형님 중에 월남에 간 군인 형님이 휴가를 나왔는데, 형님이 자는 틈에 몰래 워커(군화)를 신고 왔다면서, 바로 양현이와 싸우기 위해 군화를 신고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양현이 너 이놈 오늘 내 군화에 맞아 죽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친구들은 그 날 싸움이 보통 궁금한 게 아니었습니다. 드디어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도시락을 까먹고 교실 옆 공터로 모였습니다. 과연 영돈이는 엄청 큰 군화를 신고 있더군요. 그 날 따라 양현이가 빈약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두 친구는 약 2미터 간격을 두고 대련자세로 마주섰습니다. 곧 친구들이 일제히 '요이… 땅~'을 외쳤지요. 두 친구는 슬금슬금 눈치를 보면서 상대의 틈을 노리기 시작했습니다. 저희들은 침이 말랐습니다. 영돈이 군화에 제대로 맞는 날엔 양현이는 개구리처럼 뻗어버릴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영돈이, 그러니까 초등학교 5학년생 꼬마가 신은 군화는 어린 몸을 자꾸만 무겁게 했던 것입니다. 영돈이는 발차기 자세를 취하려고 하였으나 한 발 한 발 옮기는 일조차 힘들어했습니다. 일껏 걷어차는 시늉을 했지만 어림없었지요. 몸이 가벼운 양현이가 살짝살짝 피했습니다. 영돈이는 갈수록 숨차했습니다. 하지만 양현이도 함부로 접근을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군화를 실물로 처음 본 입장에선 말 그대로 군화코에 차이는 순간 온전하지 못할 거란 예감이 들었던 것입니다. 두 친구는 정탐만 하면서 점심시간을 다 보내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평소의 동작 한 번 취해보지 못하고 말았던 겁니다. 마치 세계참피온 알리와 레슬러 이노끼와의 대전과도 같다고나 할까요? 주먹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끝난 졸전이었습니다. 이튿날도 영돈이는 형님 몰래 군화를 신고 왔는데, 형님이 어디 외출하실 일이 생겼는지 점심 때 신발을 들고 학교까지 바꾸러 왔더군요. 그리하여 친구들의 궁금증도 그쯤에서 막을 내렸습니다. 광약 발라놓은 군화를 두 번씩이나 훔쳐 신은 영돈이가 형님한테 많이 혼났나 봐요. 영돈이는 무척 순수하고 착했는데 반면 시간개념이 흐려서 점심시간에 친구들에게 안터 과수원으로 자두 서리를 가자 해놓고, 주인한테 들킬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돌아오는 코스를 망심산 중턱으로 하여 함적골로 정해 오뉴월 초하(初夏)에 일행들을 산 속에서 헤매도록 하여 녹초로 만들었으며, 오후 수업이 시작되어 30분쯤 경과되었을 때에야 학교에 도착하게 함으로써 선생님으로부터 단체기합과 몽둥이 세례를 받게 한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시간개념은 곧 신용과도 연결되어 지금 이 나이에도 영돈이는 '와야 오는 몸이고 가야 가는 몸'입니다. 전화도 받아야 받는 겁니다. '내일 다시 통화해'하는 말을 믿으면 낭패를 보기 십상입니다. '내일'이 와서 전화를 걸면 휴대폰은 대부분 불통입니다. 이 친구가 또 어떠냐 하면, 동창회엔 꼭 전대(錢帶)를 차고 나와요. 허리춤에 불룩하게 달고 나옵니다. 한 번은 여자 동창에게 아무렇게 말을 하여 여자 동창이 경우고 체면이고 내팽개치고 '야, 너 이 새끼는 만날 나더러 공부 못했다고 지랄 떠는데 넌 얼매나 잘 했길래 만날 개지랄이냐?'라는 원성을 들은 적도 있지요. 영돈이가 무심히 '너는 원래 공부를 못해서 허구헌 날 선생님한테 얻어맞더니 지금도 그렇게 머리가 안 돌아가냐?'라고 해버린 결과였습니다. 참고로 그 여자동창은 각대리 출신으로 현재 딸이 이화여대 재학중입니다. 영돈이는 또 술에 취하면 여자 친구 옆만 찾아다닙니다. 그래서 저희 19회 동창회 사진을 보면 영돈이 사진이 유독 많아요. 안 끼는 데가 없으니 카메라에도 그만큼 많이 포착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그 친구가 다른 마음이 있는 게 아닙니다. 무지게 순수하고 꾸밈이 없답니다. 술 마셨을 땐 나이도 고무줄이 되어 보통 두 살 가량은 소주 세 잔 정도에 언제든지 늘어납니다. 어젯밤, 아무튼 순박하고 소탈한 영돈이가 신용 하나만 좋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굳이 부평 백마장 입구 한누리 병원에 확인할 필요가 있을까요? 친구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면 빨리 완쾌되길 바랍니다. 교통사고 당해 병원에 누워 있다는 친구가 술은 어디서 그리 마시고 혀가 꼬부라진 건지... 동창회에 차고 나오는 전대는 온전한지... 재미있는 우리들 19회 친구 권영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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