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고향 생각

[스크랩] 故鄕別曲

펜과잉크 2007. 6. 29. 15:16

 


초등학교 3학년 시절,
아버지 어머니 누나 나 동생 셋이 작은 집에 살 적에 한 번은 어머니께서 부르시며
"얘야, 편지 한 장 써 줄 테니 외가에 좀 다녀오너라."
나는 무슨 용건이 있나 싶어 공책 한 장을 뜯어 어머니께 드렸다. 그 종이 한쪽엔 3학년 국어 책에 실린 3. 1절 노랫말이 연필로 적혀 있었다. 새 공책 한 장도 뜯어내기 아까웠던 시절이었다.

 

3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보며
류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

 

어머니는 그쪽을 무시하고 다른 쪽에 뭐라고 긴 장문을 적으셨다. 그리고 고이 접어 내 품에 넣어주셨다.

 

나는 산을 넘고 들을 지나 한나절을 걸어 외가에 도착했다. 곧 외할아버지께 편지를 드렸다.  할아버지는 마루에 앉으셔서 예의 엄숙하신 표정으로 편지를 읽으시는 것이었다.
'3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 보며 류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 옥 속에 갇혔어도 만세 부르며….'

 

순간,
나는 당황한 나머지 가시 방석에 앉은 기분이 되고 말았다. 뭐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으나 무섭기만 한 외할아버지 앞에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외할아버지는 편지를 읽으시다 말고 뭔가를 생각하시는 눈치였다.
'푸른 하늘 그리며…. 음…."

 

나는 더 이상 머뭇거릴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 그쪽이 아니라 이쪽이에유."
그제야 외할아버지는 정황을 제대로 파악하신 것 같았다.

 

외할아버지는 대략 다음과 같이 읽으셨던 것 같다.
'아버지, 그동안 지체 여전하셨어요?
불초 여식이 찾아뵙지 못하여 송구할 따름입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얼마 전 또 시댁에서 논을 내놓아라 하여
집 앞의 다섯 마지기를 빼앗겼습니다.
시동생이 낫 들고 동네 초입에 서서 찍어 죽이겠다고
제 형을 향해 소리지르고….'
그쯤에서 외할아버지는 이를 갈았다.
"이놈의 류가 네 놈들…."

 

그러면서 계속 이어가셨다.
'날은 유월이라 곡간도 비었고,
밭은 아직 나올 것도 없고 하여 사정이 말이 아닙니다.
아버지,
불초 여식이 효도도 못하고 살면서
이런 글을 드려 죽을 심정이나
한 번만 더 굽어 살펴 주시면
그 은혜 영원히 가슴에 담고 살아가겠습니다.'
대략 그런 내용이었다.

 

외할아버지는 뭔가를 또 생각하시는 표정으로 긴 담뱃대에 불을 붙이셨다.
"에미더러 이번 장날 점심때 은산 사거리서 기다리라 혀라."

 

그렇게 하여 어머니는 또 우리가 먹을 양식을 구해 오시는 것이었다.
"비록 산골로 시집왔지만 내 자존심에 죽어도 끼니를 굶진 못하겄다."
비장한 말씀이셨다.

 

참고로,
외할아버지는 3남3녀의 장남이셨다. 열일곱 살 되어 부모님을 여의신 해에 막내 누이동생이 일곱 살이라 하셨다. 어려서부터 동생들을 키워 출가를 보내신 분이라 평소 아주 치밀한 분이셨다. 욕심도 많아 실제로 눈 두렁에서 이웃 논임자와 물꼬를 놓고 메다꽂이를 하신 적도 있었고, 법으로 갈 문제라면 강경까지 다니며 송사(訟事)에 임하셨다. 송사 좋아하여 득 될 게 없다고, 패소로 인한 피해도 적지 않았다고 들었다. 하더라도 그 고을에선 알려진 형편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일찍이 자수성가하신 분이라 가족에 대한 집착이 유별나셨던 것 같다. 한 번은 논산으로 시집 간 둘째 누이동생이 삼 년 만에 왔는데 모진 시집살이로 피골이 상접되다시피 했다는 것이다. 외할아버지는 곧장 누이동생을 앞세우고 논산으로 가서 곡괭이로 그 집의 안방 구들 몇 장을 찍어 엎었다고 한다. 그게 정상인의 상식으로 가능할까 모호하지만 어쨌든 그 후로 누이동생은 시댁에서 당당히 대우받으며 살게 되었다는 후문이다.

 

직사각 반상(飯床)에 아버지 나 아우 둘의 밥공기가 얹어지고, 다리 없는 쟁반에 어머니 누나 여동생의 밥그릇이 놓여져 끼니를 잇던 시절, 긴 겨울밤을 자고 일어나면 마루 요강자리에 오줌이 얼어붙어 있을 때도 있었다.

 

그렇게 버티고 살아온 질경이 같은 세월이 몇 해이던가? 부모님은 예나 다름없이 그 자리에 온전하시건만 형제들은 한 번 크니 다시 모이기가 힘드는구나. 불현듯 월명사(月明師)의『제망매가』 한 소절이 떠오른다.

 

어는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같은 나뭇가지에 나고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모르겠구나.

 

죽은 누이를 빌어 인간고(人間苦)의 종교적 승화를 노래한 『제망매가』이지만 '같은 부모한테 나고서도 가는 곳을 모르'는 형제들의 운명은 같지 않을까 짚어 보게 된다.

 

내 나이 마흔 일곱,
초등학교 3학년 시절이던 37년 전 외할아버지는 널따란 집의 마루에 앉아 외손자가 드린 편지를 읽으셨다.
'3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 보며 류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

 

 

 

 

출처 : 내지리 시내버스
글쓴이 : 류삿갓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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