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고향 생각

내 고향 무량천도교(無量天道敎)

펜과잉크 2007. 6. 27. 18:56


다릉다라 조화무궁 김씨네∼♬

 

저 소리는 내 고향의 무량천도교(無量天道敎) 신도들이 기도막에 모여 주문을 외울 적에 합창했던 주술인 바 내 나이 마흔 일곱이 되어 흐릿하게 기억하고 있는 경문(經文) 중 일부이다. 그러니까 저게 맞는지도 실은 잘 모르겠다.

 

아득한 옛날,
고향의 산언덕엔 외딴 기도막이 한 채 있었다. 마을 어른들 중 무량천도교(無量天道敎)를 신봉하는 신도들이 신성시하는 일종의 제막(祭幕)이었다. 거기선 주기적으로 기도가 이루어졌는데 주로 밤중에 행하였다. 제단(祭壇)도 갖춰져 있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마을 어른들이 석유램프에 불을 밝히고 일렬로 두런거리며 기도막으로 오르곤 했던 기억이 난다.

 

아아, 그곳은 그러니까 동현이 부모님, 지용이 부모님, 병태 부모님, 우리 부모님, 재식이 부모님, 종오 부모님, 병문이 부모님, 복순이 부모님이 한데 모여 경문을 외우면서 정신을 수양하는 곳이었다. 무량천도교(無量天道敎)의 본산은 신도안으로 요즘 시쳇말로 따지면 사이비 종교일 수도 있으나 종교라는 게 각자의 마음 속에 있다고 본다면 그것을 결코 사이비라 칭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무량천도교(無量天道敎)를 믿었던 분들은 그 종교만이 유일신이었을 것이다. 
 
무량천도교(無量天道敎)의 주신(主神)은 삼신(三神)으로 삼국지(三國志)에 나오는 삼대 인물로 곧 유비, 관우, 장비를 말한다. 그래 기도막 법당에 보면 유비, 관우, 장비가 꼿꼿이 서 있는 대형 불화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유비는 작품에서와 같이 덕(德)이 넘치는 인상이고, 관우는 갈기수염을 늘어뜨리고 있으며, 장비는 여전히 부리부리한 눈으로 양미간(兩眉間) 날을 세운 채 금새라도 그림 밖으로 뛰쳐나가 멧돼지를 포획할 듯한 표정이었다.

 

무량천도교(無量天道敎)의 신도안 본부 임원중 창용 선생이란 분이 계셨다. 그 분은 풍요로운 턱 수염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일 년이나 이 삼 년에 한 번 부여지부에 출장을 오셨다. 출장을 오시면 무량천도교 부여지부(無量天道敎 扶餘支部)에 거류(居留)하셨던 바 지부는 바로 지용이네 집이었다. 사랑채에 손님을 맞은 방이 따로 있어 마당 쪽으로 난 아궁지('아궁이'의 충청 일원 방언)에 불을 피워 구들을 따땃이('따뜻이'의 충청 일원 방언) 하여 상심하시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였다.

 

창용 선생(以下 '어르신'으로 호칭함)께서 부여지부에 머무시는 동안 신도들은 몸가짐과 행실에 유의하였고 아이들도 함부로 떠들지 못하도록 하였다. 창용 어르신은 가끔 턱수염을 날리며 부여지부 마당을 왔다갔다하셨는데 어쩌다 그 집 앞을 지나다 보면 담장 너머 바라보시어 인사를 아니할 수 없게 만드셨다.
"안녕하셔유?"
인사드리면,
"그려. 거기가 명산(明山)이네 자제여?"
그러셨다.
그럼 
"예에."하고 대답할 따름이었다.

 

일년에 한 번 혹은 이 년에 한 번, 부여지부 마당이 북적대도록 잔치를 벌일 때도 있었다. 그 날 부여지부에 가면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을 수 있었다. 송화 가루 묻힌 떡도 있었다. 그 떡이 어떤 떡인가? 부여지부에서만 먹을 수 있었던 맛있는 떡. 홍어 살점을 섞은 무침 요리도….

 

그 시절을 말하라면 이 밤 끝이 없을 것이나 오늘도 약속이 있으니 다음 기회가 되면 못 다한 여담을 풀기로 한다. 참고로 창용 어르신은 지금 고인이 되셨고, 병태 부모님도 재식이 아버지도 병문이 아버지도 천국으로 떠나셨다.

 

그분들은 아마도 먼저 저 하늘나라에서 창용 어르신을 모시고 무량천도교(無量天道敎) 재건(再建) 주력 하실까? 하늘나라에 가보지 않았으니 모를 일이다. 이 세상 소풍 끝나고 돌아간다는 그곳….
"다릉다라 조화무궁 김씨나∼."
다함께 무량천도교(無量天道敎) 경문(經文)을 합창하실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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