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고향 생각

雨期

펜과잉크 2007. 7. 1. 12:13

 

 



비가 내린다. 오후에 인천시청 앞 미래광장서 색소폰 연주회가 있는데 지금 상황으로는 개최 여부가 불투명하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연습실에 가 봐야겠다.


유월.

이슬비가 내린다. 창 밖 석류나무의 젖은 풍경을 바라보자니 고향에서의 추억들이 떠오른다. 지금처럼 비가 오는 둥 하는 사이로 집 앞 병태네 앵두나무 밑에 가서 앵두 몇 개를 따 먹든가, 아니면 텃밭의 가지나무에서 가지 하나를 뚝 따서 으적으적 먹곤 했던 추억들이 생각난다. 지금은 지용이네 밭이 된 인복이네 집터 마당가 살구나무 아래에서도 노랗게 익어가는 살구를 주워 올 수 있었다.


비는 인간의 내면에 조금은 염세적인 분위기도 풍기는 것 같다. 비 오는 날, 앞산을 바라보면 문득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가 떠오르고, 혼자 묻고 혼자서 답을 마련하곤 했던 기억들이 되짚어진다. 훗날 무엇이 되어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끝없는 의문과 불안 같은 것들이 비 오는 날엔 더욱 현실적인 문제로 부각되었던 것 같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의 반을 넘은 듯한 이 시점에서 돌아보면 ‘삶은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연속’이란 귀결로 맺음 될 것 같다. 눈을 감으면 내가 스쳐온 사람들과 나를 스쳐간 사람들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곤 한다. 처음부터 있어온 사람은 하나 없고 언젠가부터 있어온 사람들이 간간이 있다가 가곤 하며 또 낯선 누군가와 만나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인연이란 내게 모두 맞는 대상은 없으며 조금씩 모자라는 것들을 서로 채워주고 양보하는 가운데 생성되는 진정한 배려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눈을 들어 창문에 맺힌 빗방울을 바라본다. 작은 물방울 하나에 거대한 우주가 담긴 듯 하다. 맑고 영롱하며 푸른빛이다. 처음 우리가 세상에 나올 적의 마음들도 저 물방울만큼이나 푸르렀으리라. 끝없는 투영의 내면에 세상의 질곡들이 얽히고설키어 오늘의 우리로 남게 된 것일 뿐.


고향집에서처럼 모든 주위의 소음으로부터 벗어나 울 밖이나 숲에 서서 듣는 빗소리는 마치 나에게 뭔가를 속삭이는 듯이 들리기도 한다.

‘힘드셨지요? 곧 나아질 거예요. 떠난 사람도 돌아올 거예요. 훗날 좋은 벗도 생길 거예요. 어려울 때마다 도움을 주는 은인도 있을 거예요. 누군가 그대를 사랑해줄 거예요. 그대의 마음에도 생명의 푸른 싹이 돋아날 겁니다.’


안개, 는개, 이슬비, 실비, 보슬비, 부슬비, 가랑비, 장대비, 소낙비, 억수비……. 십리 길 우산도 없이 걸으며 알 수 없는 뼈아픔에 훌쩍이던 소년 시절의 기억들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