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추석 시즌을 맞아 고향에 갔다가 밤을 줍는 과정에서 산모기의 맹습을 당한 경험이 있어 군 시절 모기가 뚫지 못하는 군복의 장점을 토대로 미군용 정비군복 한 벌을 구입한 바 있습니다. 그래 작년에 이 옷을 입고 밤나무 밭을 누비면서 혜택을 톡톡히 봤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굴과 목 부위를 지독한 산모기에 몇 방 당하긴 했습니다만 전년도에 비해 획기적인 혜택을 누릴 것만은 사실입니다.
금년 추석을 맞아 전 모든 형제들을 고향집으로 모이게 하여 연휴 동안 밤나무 밭에서 살 생각입니다. 밤농사를 지어본 분은 아시겠지만 밤나무 밑에서 밤을 줍는 일은 가혹한 노동이더군요. 허리가 끊어질 듯 하고, 땀이 비 오듯 쏟아져서 수시로 심각한 갈증에 시달리는 육체 노동이었습니다. 밤나무 그늘 밑엔 모기 뿐 아니라 한창 독이 오른 독사 같은 맹독성 생명체도 조심해야 합니다. 뱀 얘기를 왜 하느냐 하면 재작년 가을에 밤을 줍다가 평소 보기 힘든 살무사 한 마리를 보았는데 언뜻 봐도 한 방 물리면 온전치 못하겠더군요. 시골출신인 제가 뱀을 모르겠습니까? 순간 오싹했습니다.
며칠 간 고향집에서 농사일을 하고 오면 후유증 또한 따르리라 믿습니다. 제 경험으론 보통 고향집에서 며칠 간 밤을 줍고 오면 체중 2킬로그램 정도가 빠지더군요. 그럼에도 부모님 고생하시는 거 생각하면 그냥 말 수 없는 일입니다.
따라서 명절마다 인천 계양구 임학동에 사는 큰집 사촌동생 기훈(장손)이네 집에 가서 조상들께 차례 올리는 일을 금년엔 거르려 합니다. 추석 차례를 지내기 위해 3일을 허비해야 하는 점도 아깝거니와 어차피 조상님들 산소가 모두 고향에 있으니 간소한 음식을 준비하여 아버님 모시고 합수리 뒷산의 증조부모님 산소와 둔터골(두턱골의 바른 지명)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다녀오는 일로 도리를 갖출까 합니다. 그래놓고 곧장 미군용 정비복장으로 무장하고 밤나무 밭으로 향할 겁니다.
밤농사……. 사람마다 입장이 다르겠지만 저로선 정말 고문을 당하는 심정이더군요. 반나절 내내 엎드렸다 폈다 하는 허리운동은 견디기 힘든 고통을 수반하는 것이었습니다. 가령 TV에서 경기도 광주군 밤 줍기 행사 어쩌고 하는 이벤트성 행사를 보면서 속으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합니다. "밤 줍기를 낭만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한심하구나. 한 번 밤나무 밭에 들어가 밤을 주워나 봐라. 30분 정도는 재미있을 거다. 그러나 30분만 지나면 그대는 세상에 그렇게 힘든 노동도 드물 거란 인식을 떨치지 못할 거다. 잘 해 봐라." 라고요.
고향의 밤농사가 금년에도 풍작을 맞아 모든 집들이 윤택한 삶을 누릴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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