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자동차회사 크라이슬러에서 나무로 자동차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물론 프레임 같은 중추적인 부품이야 나무를 지향했을 리 없지만 아무튼 하나의 완벽한 자동차임에는 틀림없었다. 보존 상태가 좋은 그 차는 경매 시장에서 거액의 낙찰가를 예고하고 있다.
한상렬 님이「아날로그와 디지털」에서 논했듯이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디지털시대에 비해 아날로그는 조금 부족한 듯 싶지만 실상 그 부족함이 인간의 내면을 더욱 인간답게 하지 않나 싶다. 가령 지척의 거리를 차로 이동하는 것보다 도보로 이동하며 이런저런 상념에 잠긴다면 마음의 여유도 있을 듯 하고….
음정과 톤 칼라를 중시하는 악기는 신품보다 오래된 빈티지가 훨씬 높게 거래된다. 피스톤의 마모 여부가 논해지는 트럼펫은 덜하지만 색소폰 같은 악기는 오래된 악기 값이 신품의 몇 배를 능가하는 예가 허다하다. 매니아들의 주장은 기계로 찍어내는 요즘 악기보다 장인이 직접 손으로 만든 악기가 진정한 색소폰 소리를 낸다고 주장한다. 바이올린과 첼로 같은 현악기도 장인의 손에서 빚어진 빈티지가 높은 대우를 받는다.
미국은 국가를 위해 희생한 군인들을 영웅으로 숭배한다. 몇 년 전 이라크에서 납치됐다가 풀려난 여군의 경우도 본국으로 돌아가 영웅 대접을 받지 않았던가. 각종 매스컴에 출현하고 도서 출간 제의가 들어오는 등 관심이 지대했었다. 적군에 납치되어 어떤 일을 겪었는지에 대해선 불문하고 오직 영웅 만들기에만 치중하는 미국 사회를 보면서 부러운 마음도 없지 않았다. 사실 미국이나 일본은 군역(軍役)을 모병제로 하기 때문에 대우 면에서 징병제인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안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군대와 관계되는 군납업체는 일단 값이 싼 제품을 들이미는 업체가 유리한 고지를 점하지만 미국에서는 가격을 따지지 않고 오직 제품의 질을 중시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군부대에 납품되는 맥주도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업체가 선정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PX 술맛은 어떤가? 말하지 않아도 경험한 분이 있으리라 믿는다. 필자가 군 생활했던 1980년대 초 PX 양주는 고작 나폴레온 정도였으나 그 맛도 사제품과는 분명 떨어지는 향을 내고 있었다.
요즘 의류점에서 100% 면으로 제조된 옷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상표엔 100% 면이란 표기를 하지만 폴리에스텔 같은 혼방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아날로그 시절의 면 섬유는 말 그대로 100% 순면이다. 그리하여 거기 붙은 상표에 '면 100%'란 표기가 있으면 그대로 믿어도 되는 것이다.
얼마 전, 밀리터리 쪽에 관심이 많은 내게 흥미로운 일이 생겼다. 1950년대 미 육군 야전병원에서 침대 커버로 썼던 천을 입수하게 된 것이다. 네이비(navy) 칼라와 사지(sage) 칼라를 혼합한 듯한 색상이었다. 전장에서 부상당한 '영웅'들에게 지급된 야전병원 침대 커버의 품질을 달리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옷감에 대하여 문외한인 사람의 눈으로도 결코 범상치 않았던 것이다. 나는 이 감으로 옷을 맞추기로 하고 인천의 양복점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중구 신흥동의 '선미양복점'이 35년 동안 한 자리서 영업했음을 알게 되었다.
옷감을 가지고 양복점에 들리자 충청도(당진) 말씨의 주인이 대뜸 '요즘은 구할 수 없는 재질이네요'한다. 대자로 재어보더니 '긴소매랑 반 팔 하나씩 나오겠습니다'하는 것이다. 수선비만 10만원이었다. 그 자리서 선뜻 체촌(體忖)에 들어갔다. 옷에 관한 한 수개월만의 지출이니 망설일 게 없었다.
오늘 자「인천일보」7면엔 인천갤러리 개관 초대전과 관련하여 커다란 박스 기사가 실렸다. 인천예총 지회장 선거에 출마했던 김재열 님과 전(前) 인천문협 회장 김학균 님 사진도 나오고 말이다. 기사 본문 중 필자의 시선을 잡아 끈 그림 한 점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김재열 님의 작품「작신산은행앞길」이었다. 그곳은 지금의 어디일까? 내 추정엔 아마도 외환은행사거리에서 인천우체국으로 통하는 대로변이 아닐까 한다. 왜냐하면 왼편의 중화요리집 간판이 '鮮興閣'으로 표기된 바, 그곳은 인천문협 김윤식 회장께서 말씀하신 유구한 역사의 '新新屋' 자리가 아닐까 해서다. 눈을 잡아끄는 어린 학동의 모습…. 반 팔 상의에 반바지를 입고 길 건너를 보고 있는 학동은 지금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내 안에 잠재된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오랜 잠에서 깨어 편린처럼 쿡쿡 가슴을 찌르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맞춤형으로 돌아가는 디지털시대에 왜 나는 과거적 소재들로부터 눈을 뗄 수가 없는가? 부족한 것 같지만 전혀 부족하지 않았던 삶의 추억들…. 그 안엔 먼 옛날의 내 모습과 우리 집과 내 형제들과 이웃집 순이, 숙자, 용이 향기까지도 배어있다. 놓치고 싶지 않은 향기들이다. 소중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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