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나는 한 편의 영화에 매료됐다.『브로크백 마운틴』이었다. 브로크백 마운틴을 배경으로 한 두 남자의 동성애를 다룬 영화는 동성애라는 다소 낯선 이미지를 빼곤 보는 이의 마음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캐나다의 아름다운 자연 배경이 시선을 압도했고, 말을 타고 양떼를 모는 젊은이들의 삶이 내 생에 있어 막연히 동경했던 지난날을 떠올리게 하여 정신을 모으고 본 영화이다.
스크린이 잠영(潛影)되고 영화관 밖으로 나왔지만 영화 속의 배경과 그들의 대화는 한동안 환영으로 의식을 지배했다. 특히 '에니스'로 분한 히스 레저(Heath Ledger)의 연기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상대역인 제이크 질렌홀과 둘만의 연기를 펼쳐 화제를 모았던 그…. 지그시 찡그린 채 주시하는 눈빛, 우수에 잠긴 듯한 표정, 적은 말만 하려고 생긴 듯한 입, 이따금씩 보여주는 따뜻한 미소, 소박한 옷차림 같은 것들이 내 뇌(腦)에 각설탕처럼 결정되어 남았다. 그러니까 그것은 생각만으로 달콤하고 포근했다.
평소 ebay 사이트를 애용해온 나는 주인공 에니스 델마가 입었던 가죽 자켓이 정통 진(Jean) 브랜드로 유명한 'Lee'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Lee leather jacket' 혹은 'Lee leather parka' 로 끊임없이 조회하여 구제품 한 벌을 $27에 낙찰 받았으나 셀러(Seller)의 변심으로 수중에 넣는 건 실패했다. 하지만 에니스가 다른 장면에서 걸쳤던 'Lee denim jacket'이 1960년대 미국의 젊은이들이 입었던 모델임을 확인한 것만도 소득이었다. 왜냐하면 그 후 ebay를 통해 이 자켓을 여러 번 싸게 구입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호주 출신의 에니스, 아니 히스 레저(Heath Ledger 28세)가 어제 뉴욕 맨하튼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한다. 수면제 과다 복용의 약물 중독이 의심된단다. 내게는 충격이었고 정말 사실인가 싶어 몇 번이나 기사를 반복해 읽었다. 곧 경북 점촌의 처가에 있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석아, 우리가 브로크백 마운틴을 본 게 언제였지?"
"재작년입니다."
"응, 거기서 에니스로 나온 배우 알지? 히스 레저 말이야."
"나중에 죽는 남자인가요?"
"아니…. Lee 자켓에 가죽장갑 입고 말 타고 양떼 몰던 카우보이!"
"예, 기억해요. 딸이 있는 사람이잖아요."
"그 배우가 죽었단다. 스물 여덟이래."
"예?"
아들 역시 깜짝 놀라는 투였다.
영화『브로크백 마운틴』의 한 장면 : 총을 든 배우가 히스 레저
세월이 흘러 먼 훗날에도 나는 한 편의 영화를 기억하리. 히스 레저를 잊지 못할 것이다. 밥 딜런의 생(生)을 조명한 영화가 개봉된다 하여 기다렸는데…. 비록 사람은 갔지만 또 한 번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려주길 기대해본다. 젊은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난 히스 레저! 그의 영혼이 천국에 머물기를 빈다.
* 2008. 01. 23. 1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