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선이 조업 중 폭풍우로 침몰 당해 선원 전원이 실종됐다. 인근 해경이 수색에 나섰지만 높은 파도 때문에 현장 접근이 어려워 구조에 어려움이 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오늘에 오기까지 우리나라의 선박 사고는 매번 ‘높은 파도 때문에 현장 접근이 어려워 구조에 어려움’이 있었다. 다른 레퍼토리가 없다. 그래 지금도 여전히 선박이 침몰하거나 조난 당하면 높은 파도 때문에 해경의 접근이 어려워 사상자가 발생한다. 세계 10위권 부국으로 진입한 단계에서도 -솔직히 내 삶은 예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다. 따라서 세계 10위권 소리도 거짓말 같다- 변하지 않았다. 핑계와 변명……. 초지일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발언으로밖엔 인식되지 않는다.
코흘리개 시절 어머니 손잡고 장에 가서 본 방역 차량은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지척에서 연기를 뿜으며 웅웅거리는 게 신기했다. 꽁무니에 붙어 뛰는 장터 아이들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차량은 가령 호박잎 떡잎 붙은 새마을모자 앞에서 급 정차하며 ‘경둔리 이장님 나오셨유?’ 어쩌고 하다가 뒤따르던 아이 마빡을 찧게도 했지만 흡사 고약 냄새 같은 연기를 쐬면 여름 내내 모기 한 방 물리지 않을 것 같은 기대감이 일었다. 그것은 트럭 짐짝에 사람이 앉아 영사기 만한 철제 끝 분사구로 열심히 하얀 연기를 날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위와 같은 방역 수준은 오늘에 와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트럭 짐짝에 사람이 붙어 철통 분사구로 연기만 쏘아댈 뿐이다.
“사람들 모인 데만 골라 다녔유. 열심히 뿌렸유. 장에 오신 면민들이 전부 목격허셨유. 그러면 된 거유.”
그럴지 모르지만 허공에 뿌린 연막 소독은 바람 불어 ‘휭’ 하면 끝이다. 모르겠다. 어느 날, 집 나온 궁중의 자제가 코흘리개 패에 섞여 놀다가 방역 차량 짐짝에 마빡을 다치는 통에 ‘좆선일보’ 같은 데 화두(話頭)가 되면 체계가 좀 바뀔지……. 그때까진 수도 중심부터 지방 2급수 하천 변 장터까지 트럭 짐짝에 사람이 앉아 연막을 쏘아대는 방식일 것이다.
“천치들아, 공중에 낭비하며 시각 효과만 꾀하지 말고, 하수도 뚜껑 열고 그 밑구멍에다 쏴 갈기란 말이여. 모기 유충 우글거리는 지하수나 우시장 공중화장실 같은 데 말이여.”
한 사람 정도 민원을 내어보지만 도루아미타불이다.
“니기미들, 우이동풍(牛耳東風)에 마이독경(馬耳讀經)이네.”
공무원은 실용성보다는 시각적인 효과를 중시한다. 늘 거국적인 측면을 지향한다. 대가리 우선의…….
국보 1호 숭례문이 전소됐다. SBS-TV 자막 속보를 통해 처음 알게 된 후 뉴스 전문 YTN으로 채널을 돌려 현장 생중계로 두 시간 넘게 시청했다. 처음 TV 화면에선 연기만 피어올랐다. 소방차 몇 대가 물을 살수하는 장면이었는데 화면을 통해 보는 현장은 별 위기의식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소방에 무식한 내 상식으로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었다. 소방차가 물을 쏘긴 하되 지붕에만 뿌려대고 있었던 것이다. 물은 기와 골을 타고 그대로 처마 밑으로 쏟아져 내렸다. 그러니까 폭우 몰아치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숭례문 지붕 위로 광우(狂雨)가 몰아친들 내부까지야 젖겠는가? 연기는 점차 검은 색으로 변해갔다. 채널을 잠시 SBS-TV로 돌렸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2층 누각이 무너졌다. 그걸로 끝이었다. 국보 1호 숭례문!
아나운서의 보도에 의하면 화재는 초기 중구소방서에서 진압하다가 지휘권이 서울소방본부로 넘어갔다고 했다. 하지만 달라진 게 없었다. 소방차 몇 대가 여전히 숭례문 주변에서 물만 뿌려대는 상황이었다. 이제 불길은 건물 2층을 완전히 장악한 듯 보였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소방 능력이 숭례문 불길 하나 잡지 못하고 그대로 당하는 꼴이었다. 소방본부 관계자는 일반 건물과 달라 진화가 힘들다고 둘러댔다. 그 사람은 허깨비네 사립의 담뱃불이나 쥐불깡통의 관솔불을 끄고도 똑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개소리’는 집어치우라는 얘기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대한민국 소방 실력이 고작 숭례문 불길 하나 잡지 못한단 말인가! 실망을 넘어 허탈과 분노가 인다.
숭례문은 최초 일제가 국가 보물로 정한 것을 그대로 이어받아 국보 1호로 지정했다 한다. 어쨌든 숭례문은 수도 서울의 랜드마크이자 국민 정서를 지배할 정도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임진왜란도 버텨냈다 하지 않던가. TV에서 현장 중계를 하던 문화재청 간부는 ‘대한민국이 무너지는 것 같다’고 했다. 정곡에 닿는 말이다.
일부에선 전기 합선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는데 내가 볼 땐 가능성이 희박하다. 2층 누각이 전소될 때까지 지면에 켜져 있던 전조등을 예로 들면 간단하다. 어차피 통일된 라인이었을 터이므로 숭례문 전선 구조에서 합선이나 누전이 발생했다면 지면의 전조등도 모두 꺼져야 옳다. 일반 가정집 전열(電列)에 이상이 생길 때 두꺼비집 버튼이 내려가는 이치와 같다. 건물 안에서 발화됐을 가능성도 낮다. 왜냐하면 이미 조명등 설치 기사의 진술이 있었고, 설령 내부에 전선을 배열했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애자(Insulator)를 이용했을 것이므로 합선 가능성이 낮다는 뜻이다.
소방 관계자들에게 실망이 크다. 불길을 향한 물줄기는 엉뚱한 곳으로 쏟아져 그야말로 효과 전무의 상황만 전개될 뿐이었다. 그게 어디 소방 호스에서 뿜어지는 물줄기냐? 불알 채인 마부의 오줌발처럼 사정거리에도 못 미치는 이 나라의 소방 시설이 한심할 따름이었다. 그러면서 달릴 땐 웬 비상 사이렌을 그리 울려 쌌는지……. 불길 하나 못 잡으면서, 뭐 그리 대단하다고. 도로를 주행하다가 소방차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예전처럼 비켜주긴 하되 한 마디쯤 저절로 튀어나올 것 같다.
“오늘도 하나 태우러 가는구나. 숭례문 때 보니 한숨만 나오더군. 장난 하냐? Show 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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