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記/이 생각 저 생각

[스크랩] 술버릇

펜과잉크 2008. 3. 25. 10:38

 

 

 

 

한때 못된 술버릇이 있었다. 밤에 혼자 거실에 앉아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마시는 술이었다. 대작 없이 마시는 술은 안주의 질과 관계 없이 오직 혼자만의 경지를 찾는 심안의 구도와도 같았다. 지나간 일들, 지나간 사람, 두고 온 고향... 그런 것들이 내 뇌에 뿌리박혀 밤마다 회상에 빠졌다. 봄이면 안개 피어오르는 고향의 저수지와 음습한 날의 고란사 종소리와 장항 앞바다에서 들려오던 뱃고동소리... 고향에 관한 것들은 죄다 값진 것 뿐이다. 그 땅에 펼쳐졌던 추억들은 또 어떤가? 사랑하는 사람과 끝없이 걷던 읍내 길, 부소산길, 아무 데에나 들어가 먹던 향토 음식들, 영화가 끝날 때까지 놓지 않았던 그녀의 손... 온갖 상념들이 술잔 속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정작 혼자 마시는 술이 무서운 줄 그땐 몰랐다. 어느 순간부터 통증이 와 인하대학병원에 가서 내시경을 찍어보니 위(胃)의 상부가 벌겋다. 그 날부터 술을 끊다시피 했지만 향수병이 치유되지 않는 한 알코올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단지 과거처럼 매일 혼자 밤늦게 집에서 마시는 술버릇은 없어졌다. 또한 한 달 전부터 수봉공원 입구 칡즙 장사로부터 강원도산 칡을 사다가 끓여 규칙적으로 마시고 있다. 칡즙을 마시니 대번에 효과가 나타났다. 소화가 잘되고 배변도 자유로웠다. 일부에선 고사리나 칡은 정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 정력이란 것도 인간 스스로 문제를 삼은 것이지, 정력 때문에 삶이 불행한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미친 새끼들...

 

봄이 오면 뭔가 기쁜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나에게 이 봄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못된 버릇을 고치고 나서 달라질 내 삶의 내일을 그려본다.

 

 

  

출처 : 내지리 시내버스
글쓴이 : 류삿갓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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