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신촌의 봄은 최루탄으로 가득했다. 신촌로터리를 시위대가 장악한 적도 있다. 경찰은 저지선 너머로 퇴각하고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외침이 거리를 뒤덮었다. 연세대, 서강대, 이대, 홍대생들이 경찰과 맞섰고 거리는 연일 최루탄 냄새로 가득찼다. 그즈음 그레이스 백화점이 준공되었다. 별로 잘 될 것 같지가 않았다.
신촌로터리에서 연세대 방향 홍익서점 뒷편은 숙박업소촌이었다. 7천원이면 괜찮은 방을 구할 수 있었다. 고작 3천원 내고 잔 적도 있지만, 그 정도 형편이면 심야다방을 찾는 게 훨씬 편했다. 신촌역 방향으로 가면서 몇 군데 유럽식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밤이면 주인 없이 심야다방으로 변하곤 했다. 거기서 학생들은 서로 몸을 의지한 채 잠이 들었다. 어떤 계집애는 남자애들한테 눌려서도 잘만 잤다. 나는 인사동 고옥촌, 허름한 하숙방이 집이었으나 형편에 따라 신촌에 눌러 있을 때가 많았다.
홍익서점 건너 신촌시장 입구를 지나 서교호텔 방향으로 빠지는 맞은편 심야다방 '크로바'엔 평소 아는 몇 몇 아이들이 남루한 꼴로 들앉아 있었다. 커피숍 주인이 배불뚝이 논산 출신이었던가? 지금은 환갑이 넘었으리라! 커피잔을 일본식으로 삶아 향이 특이했던 그 집 생각이 난다. 당시 그레이스 백화점 건너엔 '88스탠드바'가 있었는데 요즘도 그곳을 지나다 보면 여전히 건물이 살아 있음을 본다.
인사동 고옥촌까지 하염없이 걷던 87년의 봄, 6.29 선언이 있기 이틀 전엔 부산 서면로터리 군중속에 뒤섞였다. 동보서적 앞 지하도 입구, 그늘막이 지붕에까지 사람들이 올라가 끝내 지붕이 폭싹 내려 앉은 일을 지금도 기억한다. 대아호텔 앞에서 시위대를 뚫고 서면로터리 복판으로 걸어나오던 김영삼 씨를 연호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다시 서울로 올라와 서울역 앞의 거센 물결에 휩쓸렸다. 숭례문 방향으로 육교가 있던 기억이 난다. 그 위에서 백골단 아이들이 최루탄을 수류탄처럼 던졌다. 언젠가부터 육교가 없어졌다. 고가였던가? 아무튼 경찰과 시위대가 번갈아 점령하곤 했다.
아르바이트로 한 달 12만원을 벌던 추억과 방학 동안 가축을 사육하는 곳에서 친구랑 30만원씩 거금(?)을 받은 일들이 다 추억 속에 있다. 머지않은 곳으로 소주 마시러 가던 일, 홍대 교수촌이라 불리던 산동네, 종로서적, YMCA회관... 다 추억 속에 있다.
지금은 지명을 바라보는 몸이 되어 목구멍에 풀칠하기 바쁜 삶을 살아간다.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입 꾹 다문 바위가 되었다. 훗날 고향으로 돌아가면 편한 마음을 갖게 될까? 많은 얘기꽃을 피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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