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남구 주안2동 새안의원(舊 삼일의원) 맞은편 코너 건물 2층엔 ‘박경수 색소폰 학원’ 간판이 붙어 있다. 그는 충남 장항 출신으로 색소폰을 배우기 위해 이웃 서천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밴드부에서 활동했다. 물론 색소폰을 맡았다. 그 후 지금까지 색소폰을 연주하며 산다. 한때는 학익고등학교 옆 ‘기차까페’에서 색소폰을 불었으나 곧 그만두고 색소폰 학원을 낸 뒤 본격적인 학원 운영의 길로 뛰어들었다.
그의 주법은 특이하다. 색소폰이 인간 감성에 호소하는 악기라면 그는 그것을 전제로 청중의 가슴을 녹인다. 가령 예를 들어 <My Way>를 연주한다고 가정하면 2절 옥타브 ‘라’ 음에서 애절한 하소로 최대한 끌어올리면서 극적인 서브 톤을 가미한다. 표정은 또 어떤가? 저음에선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수면을 나는 새처럼 하다가 절정에 이르면 기관총 난사하듯 ‘두두두두’ 애드립을 장식한다. 자기만의 절대음에 충실하다. 청중들은 그의 주법에 녹아든다. 그래 한 곡이 끝나면 객석에서 일시에 앙콜이 터진다.
부평 삼산사거리에서 부천 방향 백 여 미터 좌측 건물 5층엔 ‘소리엘 색소폰학원’이 있다. 덕적도 출신 조주현 씨가 운영하는 학원이다. 그는 소프라노 색소폰으로 우리 민요를 구성지고 멋들어지게 연주하는 걸로 유명하다. 민요 가락을 색소폰이란 목관악기로 매치시켜 듣는 이로 하여금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그가 연주하는 <갑돌이와갑순이>를 들어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뽀빠이 이상용 씨와 중국 내 조선족 자치주 릴레이 공연을 하며 높은 인기를 누린 바 있다.
그의 인기는 그만의 주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소프라노 색소폰으로 민요를 연주함에 있어 꼭 갓을 쓰고 도포를 걸친다. <망부석>의 김태곤 씨를 연상하면 이해가 빠르다. 그뿐 아니다. 조주현 씨는 자신이 연주할 차례가 되면 어디론가 사라진다. 전주가 흐르고 색소폰 선율이 울려 퍼져도 정작 연주자는 보이지 않는다. 청중들은 잠시 영문을 몰라 하지만 곧 객석 한가운데를 걸어 나오는 그를 발견하고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낸다. 어떨 땐 무대나 객석과는 전혀 상관없는 숲 속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색소폰 벨에 무선 마이크를 장착하여 가능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2004년에 인하대학교 후문 근처에 악기 연습실을 차렸다. 개인 부스와 녹음실, 음향장비, 에어컨, 정수기, 소파, 의자 등 필요한 소품을 구비했다. 남을 가르칠 실력까진 못되므로 단순히 뜻을 함께 하는 사람끼리 연습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현재 30명 가까운 회원들이 활동 중이다. 그들에게 강조하는 게 있다. 색소폰을 연주하는데 있어 표정 연기를 염두에 두라는 것이다. 고(故) 길옥윤 선생님처럼 곡의 흐름에 따라 발단-전개-위기-절정-대단원의 순(順)을 유념하라고 한다. 어차피 악기를 연주하는 건 같은 이치이므로, 청중에 전달되는 메시지의 차이가 연주자의 주법이라든가 표정에 있다 해도 과언 아니기 때문이다.
악기를 연주함에 있어 표정을 관리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정해진 교범이 없다. 따라서 연주자가 연주 흐름에 따라 모든 걸 적당히 믹서 시켜 연주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연주를 함에 있어 교만한 태도에 있다. 시종일관 무표정한 태도, 청중의 권역을 벗어나는 시선 따위들은 진지한 연주자의 자세와는 거리가 멀다. 청중을 무시하거나 얕잡아보는 불손한 태도로 간주할 수도 있겠다. 색소포니스트 세계에서 위와 같은 연주자는 한 마디로 ‘밥 맛 없는 스타일’로 인식되기 십상이다. 어디서든 겸손하지 못한 자는 냉대 받기 마련!
또 하나, 가(假) 포지션이라든가 서브톤, 칼톤, 비브라토, 애드립 같은 건 적당히 구사되어야 한다. 그것이 기교이다. 기교는 연주자 개인의 개성과도 연결된다. 사람의 독창성,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세계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러한 요소 역시 적당히 배합되어 구사될 때 그 멋이 있다. 재즈(Jazz)로 접어들지 않은 이상 악보를 무시하여 매 마디마다 기교를 부려댄다면 한낱 잔재주에 지나지 않는다. 대체 그에게 악보가 무슨 필요 있는가? 이것도 저것도 아닌 밤업소 ‘오브리’식의 연주 아닌가 말이다. 듣는 이에게 식상함만 더해줄 뿐이다.
어제 어느 행사장에서 색소폰을 희한하게 부는 사람을 봤다. 한 마디로 진실성이 없는 연주였다. 표정관리와 거리가 먼 그 사람은 기교엔 무슨 미련이 많은지 내내 피크를 장악하려는 자세였다. 그러나 앞서 적시한 대로 지나치면 모자란 만 못한 법! 그의 연주는 겸손하지 못한 자의 잔재주에 지나지 않을 뿐이었다. 혹평일지 몰라도 냉정히 말하는 것이다.
문학의 세계도, 음악의 세계도, 겸손한 바탕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과거 용현동 이경림 시인이 주선했던 부페에서 고(故) 이형기 선생님이 하신 말씀처럼 문학이든 음악이든 명실 공히 인격이 갖춰질 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앞으로 비인격적인 사람 좀 안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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