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삼을 찾는 사람들’
인터넷 까페 이름이다. 거기 올라온 자료 중엔 산삼을 캐러가는 ‘번개’부터 산삼을 캐왔다는 ‘심봤다 후기’가 심심찮게 올라온다. 산양삼(山養蔘)인지 장뇌삼(長腦參)인지 감정을 의뢰하는 글도 자주 올라온다. 게시판을 서핑하노라면 산삼이란 것이 결코 귀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산삼을 찾아 움직이는 이들도 많다. 그들이 주장하는 산삼의 최적지는 인삼밭이 머지않은 동남향 내지 서남향 산이라 한다. 인삼의 씨앗을 먹은 조류, 이를테면 인가 주변에 서식하는 까치 같은 새가 근처 산으로 날아가 배설하여 삼으로 자생하게 되는 원리를 좇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순간, ‘산삼’에 관련된 글을 쓰는 내가 누구냐. 원래 잡기에 능한 사람이 출세와는 거리가 멀다는 말과 같이 별의별 곳에 흥미를 갖다 보니 산삼과 장뇌삼에까지 관심 갖고 활동한 전력에 기초하여 쓰게 되는 것이다. 산삼은 본 적도 없다.
산삼 캐는 이들을 심마니라 부른다. 산삼 외 약초도 캐는 걸로 안다. 꾼에 따라 다르겠지만 강원도 첩첩 산의 지기(地氣)를 받아 자생하는 약초들을 그냥 둘리 만무다. 여기서 본론으로 들어간다.
강원도 인제군 북면 한계3리를 말하고자 한다. 이곳은 강원도 인제에서 원통을 지나 2.5킬로 가량 한계령 방향으로 진행했을 때 만나는 마을이다. 아스팔트 국도 삼거리 ‘한계휴게소’ 뒤편 마을이 바로 한계3리인 것이다. 삼거리에서 좌회전 하면 진부령(용대리, 미시령) 방향이고, 오른쪽 두 시방향 국도를 택하면 한계령으로 이어진다.
1980년대 초반만 해도 한계3리엔 적잖은 가옥들이 있었다. 일단 한계3리는 심마니 집성촌이라는 걸 밝혀둔다. 농업과는 거리가 먼 주민들로 산에서 산삼과 약초를 깨어 연명한다. 이들 중엔 그야말로 ‘심마니’의 전통을 답습하며 한평생 외길을 걷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야기의 초점이기도 하다.
심마니들은 일행과 함께 움직이며 한 번 입산하면 한 달까지도 산 속에 체류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물론 이것은 보편타당한 정립 이론은 아니며 그쪽에 살면서 듣고 본 바에 의해 전언하는 것이다. 산에 들어가는 날, 목욕을 하고 -전날 밤엔 마누라랑 섹스도 안하는 게 불문률이라고- 초입에 이르러 산신령께 제를 올린 심마니들은 본격적인 산삼 채집에 들어간다. 문제는 이들이 십 수 일 혹은 스무 날 넘게 면도를 안 하다 보니 언뜻 남파간첩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다.
심마니들은 산속에 체류하는 동안 외부인과의 접촉을 꺼리는 걸로도 유명하다. 그들로선 군인들도 기피 대상이다. 그래 산속에서 군인들을 만나면 몸을 숨기고 조용히 행군대열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군인들 입장에선 남루한 차림으로 숨어 눈만 반짝이며 이쪽을 주시하는 상대가 분명 ‘거동수상자’임에 틀림없다. 그래 그들과 접촉해야 하는데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아까 말한 것처럼 심마니들은 외부인과 대화 자체를 하려들지 않는다. 군인이 다가가면 이내 몸을 피한다.
심마니들에겐 민통선이란 개념이 없다. 하긴 공개된 중서부 전선과는 달리 중동부 전선의 민통선은 가령 예를 들어 어느 민가의 울타리가 민통선 경계인 경우도 있다. 말하자면 그 집 주인은 나무를 하거나 짐승을 매놓으러 수시로 민통선을 넘나드는 것이다. 참고로 위와 같은 독가촌엔 집집마다 케이블 전화가 설치되어 아침저녁으로 군부대에서 일일이 확인한다.
‘어젯밤도 조용했쥬?’
보안 점검이다.
한계3리 뒷산은 바로 설악산 주령으로 이어지고, 거기서 주봉까지 다시 수 시간을 올라야 한다. 또한 한계3리에서 용대리 백담사 입구 마을까지는 등산로가 없어 산삼이나 약초가 많을 걸로 추정된다. 그쪽에 지리 밝은 분이 있을 줄 믿고, 한계휴게소에서 좌회전하여 백담사 입구 만해시인학교까지는 큰 냇물이 경계지어 아예 등산로가 없거니와 민간인들은 접근조차 할 수없는 지형이다. 그야말로 낭 벽이라 하면 이해가 쉽다. 이곳을 심마니들은 간단한 생활도구만으로 종횡무진 활보한다.
심마니들은 산삼을 발견하면 ‘심봤다!’ 소리를 외쳐 인근에 있는 일행에게 알린다 한다. 그래 다 함께 모여 삼을 캐는 것이다. 산삼을 팔아 돈을 분배하는 과정도 공평히 이루어진다고 들었다. 일본말로 ‘와끼’라 하던가? 그들에게도 ‘와끼의 원칙’이 적용되는 셈이다.
산삼을 캐러 떠나는 건 어떨까? 숲에 깃들어 깨끗한 공기를 호흡하며 살아가는 삶 말이다. 산삼을 발견하여 팔자 고치는 일! 우리 같은 도시인에겐 만만치 않을 것이나 홍성대의 미적분학이나 로또복권 당첨 확률보다는 쉽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늘날 한계3리엔 심마니들이 많이 사라졌다 한다. 도시화 물결이 밀려들어 가능성이 희박한 쪽에 목숨 거는 사람들이 줄었고 -그만큼 삶의 질이 향상된 결과이겠지만- 막연한 희망보다는 눈앞의 이익에 먼저 수완이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문득 시커먼 몰골에 긴장된 시선으로 우리를 주시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어디서 ‘심봤다!’ 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다. 세상이 확 바뀌었으면 하는 요즈음이다.